외교부는 3.1절을 하루 앞둔 28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유족 약 40명을 상대로 지난 1월 발표한 이른바 '제3자 변제안'에 대해 설명하고 의견을 듣겠다며 설명회를 열었다. 다만 원고 측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측은 이날 설명했던 내용들이 그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취재진에게 설명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서민정 아시아태평양국장,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심규선 이사장 등은 28일 오후 3시쯤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을 찾아 2시간 정도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을 만났다. 다만 배상 확정 판결이 난 소송 가운데 나고야에서 일한 미쓰비시 여자 근로정신대 피해자 측은 정부의 '해결책'에 반발해 참석하지 않았다.
박 장관은 이날 설명회를 마치고 취재진에게 "윤석열 정부는 우리 피해자분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강제징용 관련 문제를 최대한 조속히 그리고 진정성을 가지고 해결해 나갔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며 "오늘 모임은 정부가 이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거나 또 도외시하지 않고 진정성 있게 해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고, 제가 이 자리에 직접 참석한 것도 그러한 의지의 표현이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 가족, 또 유족 분들을 직접 뵙고 오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고, 일제 하 강제징용의 고초를 겪으신 어르신들 유가족분들을 뵙고 그 고충을 청취하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며 "진정성 있는 소통을 바탕으로 해서 이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조속히 마련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 12일 국회 공개토론회에서 일제 강제동원 배상 문제와 관련한 일본 기업 및 정부의 사과와 배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제3자를 통해 배상 판결금을 우선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서민정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이 자리에서 강제동원 배상 문제는 순수하게 법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법정채권'인 만큼 일본 기업 대신 제3자가 변제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체적 법리로서 '제3자 대위변제'나 '중첩적(병존적) 채무인수' 방안 등을 논의했지만, 핵심은 '피해자들이 제3자를 통해서도 일단 판결금을 받아도 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판결금을 대신 지급할 제3자로 일제강제동원지원재단을 상정하고, 포스코 등 한일청구권협정 수혜기업의 기부금을 모을 수 있게 정관 개정 작업도 이미 마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원고들과 소송대리인단, 민족문제연구소 등 지원 시민단체들은 이 안이 실제 '해법'이라기보다, 일본 기업에 대하 강제집행이 이뤄질 경우 여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채권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쪽에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채권 소멸을 위해 두 가지를 준비하고 있는데, 하나는 원고의 합의를 얻어 채권 포기각서에 서명하게 만드는 '채권포기안', 그리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판결 채권에 해당하는 돈을 일방적으로 공탁하고 원고들이 진행하는 집행사건마다 채권이 소멸되었음을 주장하는 '일방적 공탁'이라는 설명이다.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는 이날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은 미쓰비시 손해배상 소송 원고의 자녀가 "한국 정부의 안은 구걸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오랜 시간 소송하는 걸 봐 왔고, 아버지가 결코 돈 때문에 이런 소송을 했다고 기억하고 있지 않다"며 "아버지는 자신의 피해뿐만 아니라 강제동원되시고 사망하시고 피해 입으셨던 많은 분들을 대표해서 이 소송을 하셨기 때문에, 단순히 돈으로 아버지의 판결을 없애려고 하는 이 절차를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40명 가까이 모였기 때문에 현재 한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판단하시는 분들부터, 당신들(한국 정부)부터 사과해야 하고, 지금 당신들이 해야 될 것은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어떻게 받을지에 대해서 우리와 같이 작전과 전략을 짜야 하는 것이지, 우리의 판결을 없애려고 하는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아주 호되게 비판하셨던 분들도 계셨다"고 현장 분위기를 설명했다. 각자 생각이 다르기에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는 설명이다.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외교부가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설명한 방안은 1월 12일 국회 공개토론회에서 설명한 제3자 변제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임 변호사는 서민정 아태국장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재단이 한국 기업의 재원을 중심으로 피해자들의 채권을 소멸시키는 안을 검토하고 있고, 여기에 일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와 일본의 사과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도의 내용을 설명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