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지난 4라운드부터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허수봉의 포지션을 기존 아포짓 스파이커에서 미들 블로커로 옮긴 것. 속공에 능한 그를 미들 블로커로 기용해 장점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올 시즌 허수봉이 처음 미들 블로커로 출전한 지난 달 26일 OK금융그룹전. 당시 최 감독은 "(허)수봉이가 스윙이 빨라 속공에 장점이 있고, 높이가 있어 (상대가) 블로킹하는 게 어렵다. 그 부분을 활용했다"면서 "허수봉의 미들 블로커 기용에 대해 설명했다.
허수봉이 미들 블로커 포지션을 준비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허수봉은 "2018-2019시즌에도 미들 블로커로 뛴 적이 있어서 어려움을 없었다"면서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5라운드에서 허수봉의 활약은 빛났다. 공격 성공률 1위(57.96%)에 올랐고, 득점(113점)과 서브(세트당 0.43개)에서도 국내 선수 중 최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아포짓 스파이커와 미들 블로커 포지션을 오가며 전천후 공격수로 활약, 팀의 선두 경쟁에 앞장섰다.
이 같은 활약에 힘입어 지난 24일 5라운드 남자부 MVP에 선정됐다. V리그 데뷔 후 첫 라운드 MVP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최 감독은 허수봉의 MVP 수상에 대해 "(허)수봉이는 착실하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잡은 것"이라고 축하를 건넸다.
허수봉은 같은 날 열린 우리카드와 6라운드 첫 경기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이어갔다. 양 팀 최다인 17점에 공격 성공률 62.50%로 활약, 팀의 세트 스코어 3 대 0(25-23, 25-21, 25-18) 완승을 이끌었다.
허수봉을 신인 시절부터 지켜봤던 최 감독은 어느덧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제자의 성장세에 뿌듯함을 드러냈다. 그는 "군대를 다녀온 후로 어린 허수봉에서 형이 됐다. 믿음직스럽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최 감독은 2015-2016시즌부터 현대캐피탈 지휘봉을 잡았다. 허수봉이 2016-2017시즌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로 대한항공의 지명을 받자마자 트레이드로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으면서 7년째 동행을 이어오고 있다.
데뷔 7년 차인 허수봉은 후배들 사이에서도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데뷔 첫 시즌부터 주전으로 도약한 신인 세터 이현승은 최근 허수봉의 잦은 포지션 변경에도 경기를 운영하는 데 문제가 없다며 찰떡 호흡을 자랑했다.
이현승은 허수봉에 대해 "(허)수봉이 형과 같이 훈련도 많이 하고, 영상도 같이 보면서 잘 맞아가고 있다"면서 "수봉이 형이 미들 블로커로 나와도 속공을 워낙 잘해주기 때문에 포지션 변경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장 친한 선배는 수봉이 형"이라며 친분을 과시했다.
허수봉은 특유의 쾌활한 성격으로 팀 분위기를 북돋기도 한다. 최 감독은 "평소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많지만 항상 웃는 모습을 보인다"면서 "이런 선수를 만나긴 힘든데 지도자로서 너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올 시즌 내내 2위를 달리던 현대캐피탈은 지난 21일 우리카드전 승리 후 처음으로 1위에 등극했다. 대한항공이 곧바로 다음 날(22일) OK금융그룹을 꺾고 1위를 탈환했지만, 현대캐피탈은 24일 우리카드를 잡고 다시 1위에 올라섰다.
이에 최 감독은 대한항공과 치열한 선두 경쟁을 영화 '고지전'을 비유하며 우승에 대한 각오를 드러냈다. 허수봉이 고지전의 선봉에 서서 현대캐피탈의 우승 염원을 풀어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