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시행예정인 대한항공의 마일리지(보너스 항공권) 제도 개편안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역시 일반 항공권처럼 거리를 기준으로 제도를 개편했고 복합결제(마일리지+현금)와 사용처 확대 등 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개편안을 내놓았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개악(改惡)'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당국이 개편안 소급 적용의 적성성에 대한 검토에 착수한 가운데 여당과 주무부처도 대한항공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여서 개편된 마일리지 제도가 안착할 수 있을지 시장 안팎의 눈과 귀가 쏠려있다.
장거리 발권시 필요 마일리지 늘어…대한항공 "중·단거리 이용자 혜택"
4월부터 개편되는 마일리지 제도의 골자는 거리 기준 마일리지 공제와 사용처 확대 등이다. 대한항공은 그동안 국내선은 편도 5천마일, 국제선은 동북아, 동남아, 서남아시아, 북미·유럽·중동 등 4개 지역으로 나눠 마일리지를 공제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실제 운항 거리별로 10구간으로 나눠 마일리지 공제 기준이 세분화된다.
예를 들어 3월 31일까지 인천~뉴욕 항공권(편도 기준)을 발권할때 필요한 마일리지는 이코노미석 3만5천마일, 프레스티지석 6만2500마일, 일등석 8만마일이었다. 하지만 4월 1일이후 발권시 필요하 마일리지는 각각 4만5천마일, 9만마일, 13만5천마일이다. 3월 31일까지 인천~하와이 항공권(편도 기준)을 발권하게 되면 필요한 마일리지는 이코노미석 3만5천마일, 프레스티지석 6만2500마일, 일등석 8만마일이지만 4월 1일 이후 발권시 필요한 마일리지는 각각 3만2500마일, 6만5천마일, 9만7500마일이다.
지금까지는 뉴욕과 하와이 모두 북미·유럽·중동 지역으로 묶였기 때문에 같은 마일리지 공제율이 적용됐는데 4월 1일 이후에는 거리와 좌석 등급 기준이 세분화되기때문에 뉴욕을 기준으로는 공제율이 올라가는 것이다.
마일리지 공제율이 줄어드는 구간도 있다. 인천~삿포로 노선은 이코노미 좌석은 현재 1만5천마일에서 4월 1일 이후 1만1250마일로, 인천~하노이 노선의 경우 2만마일에서 1만7500마일로 공제 마일리지가 줄어드는 등 중·단거리 노선은 공제율이 줄어들기도 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현행 마일리지 공제 기준으로 중장거리 국제선 왕복 보너스 항공권 구매가능한 마일리지를 보유하고 있는 회원은 열 명 중 한 명 비율이고 2019년 보너스 항공권을 이용한 회원의 24%만이 장거리 노선을 이용했다"며 "제도 개편으로 중단거리 마일리지 항공권을 이용하는 대다수의 회원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단거리 마일리지 공제율 인하는 대한항공의 고육지책이라는 비판에 무게가 실린다. 북미·유럽·중동 등 장거리 노선은 대한항공의 점유율이 과반 이상이고 조건부 합병이 승인된 아시아나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경쟁사가 없는 상황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의 합병을 승인하는 과정에서도 미주.유럽 등 장거리 노선은 두 회사의 점유율이 최고 100% 수준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반면 개편 이후 마일리지 공제율이 축소된다는 동남아, 일본 등 중·단거리 노선은 저비용 항공사(LCC) 등과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사실상 독점 노선인 구간의 공제율을 높이고 경쟁이 치열한 구간의 공제율을 낮춘 '개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한한공은 마일리지 공제율 변경 외에도 마일리지 사용처를 확대하고 항공권 발권시 마일리지와 현금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복합결제도 가능하게 관련 제도를 개편했다.
"마일리지 제도 개편할 수 있지만 소급 적용은 다른 문제"
대한항공 마일리지 제도 개편에 대한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는 마일리지 제도 전반을 살펴보는 모양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6월 코로나 등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처럼 항공편 이용이 불가능한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마일리지 유효기간을 연장해주는 조항을 약관에 담을 것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시정권고했다. '마일리지는 10년간 유효하며 기간 내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된다'는 항공 마일리지 유효기관 관련 약관을 수정하라는 것이다. 항공사들은 8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공정위에 계획서를 내지 않고 있지만 공정위와 항공사간 협의는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이와 함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마일리지 공제율 변경 부분도 살펴보고 있다. 대한항공이 지난 2019년 12월 제도 개편을 예고한 뒤 공정위에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안 관련 약관 심사 청구서'가 접수됐었다.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관련 약관을 변경하면서 기존에 적립된 마일리지까지 소급 적용한다고 했는데, 공정위는 앞선 심결례, 관련 판례 등을 참고해 약관의 공정성을 판단할 예정이다. 앞서 공정위는 다른 심사에서 관련 약관이 소급 적용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당국 관계자는 "약관은 변경할 수 있지만 소급 적용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변경된 마일리지 제도가) 소급되는 부분이 있어 관련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마일리지 개편안이 문제 있다는 판단에 이를 경우 공정위가 유효기간 연장처럼 시정 권고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당과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대한항공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안을 언급하며 "대기업 입장에서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부분"이라며 "국토부의 개입 여지는 없느냐"고 질의했다. 국토부 어명소 2차관은 "의원님 말씀에 공감한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 주무부처로서 공정위에 우려를 전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항공사가 카드사에 판 제휴마일리지 가치 일방적 강등 논란 소지"
마일리지 개편안 소급 적용과 관련해 대한항공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약관상 제도가 변경되는 경우 그 내용을 사전에 고지하고 12개월의 유예기간을 두는데 마일리지 제도 개편의 경우 코로나19상황을 거치면서 4월 1일까지 39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게 됐다"고 강조했다. 소급 적용 문제에 대해서는 "제도 변경 고지 이전과 이후 적립 마일리지를 구분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탑승일을 기준으로 고객들에게 마일리지 유효기간을 고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대한항공의 주장이 궁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항공권 이용에 따라 지급되는 마일리지 외에 신용카드 사용액에 따라 지급된 제휴마일리지의 가치를 항공사들이 일방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한공대학교 경영학과 윤문길 교수는 "마일리지는 항공사가 판촉 차원에서 제공하기 시작해서 제휴마일리지까지 확대된 것 인만큼 업계에서는 전적으로 사업자의 몫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어서 다른 나라에서도 일반 항공권과 달리 마일리지 제도에 대해서는 정부가 관련 내용을 관리하지 않는다"면서도 "소급 적용은 상식적이지 않을뿐 아니라 제도 개편 고지 전후로 공제률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변경된 공제률을 일괄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윤 교수는 특히 신용카드 사용액 등에 따라 지급된 제휴마일리지에 변경된 공제률을 일괄 적용하며 가치를 강등시키는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용카드 사용액 등을 기준으로 지급된 마일리지는 항공사가 신용카드사에 마일리지를 판매한 뒤 카드사가 이를 고객에게 다시 지급하는 구조인데 항공사가 돈을 받고 판매한 마일리지의 가치(공제율)를 일방적으로 조정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문제가 많다보니 미국 델타항공이나 국내 LCC인 제주항공의 경우 탑승권 가격의 몇 퍼센트를 마일리지로 적립하되 이를 즉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며 "대한항공 등이 이런 방식으로 마일리지 제도를 개편하게 되면 매출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절대 이런 방식으로 개편하지 않으려고 하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