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망언' 태영호, 한술 더떠 "종북좌파가 현대사 왜곡"

국민의힘 전당대회 레이스 속 등장한 '색깔론'
최고위원 출마 태영호 제주서 "4·3, 김일성 지시"
논란에도 아랑곳 없어…"北에서 와서 잘알아, 종북좌파가 역사 왜곡"
자유한국당 시절 '5·18 망언' 재소환…반복되는 막말 리스크

국민의힘 태영호 최고위원 후보. 윤창원 기자

국민의힘 3·8전당대회 레이스가 막이 오른 가운데, 첫 지역 합동연설회가 열렸던 제주에서 탈북자 출신으로 이번 최고위원 선거에 나선 태영호 의원이 느닷없이 "4·3 사건은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과거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시절 일부 의원들이 5·18 민주화운동 관련 망언을 쏟아내 당이 홍역을 치른 바 있는데, 또 전당대회라는 중요한 순간에 '막말 리스크'가 터지면서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나는 북한 대학생 시절부터 4·3사건을 유발한 장본인은 김일성이라고 배워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며 "해방 후 혼란기에 김일성은 유엔의 남북한 총선거 안을 반대하고 대한민국에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며 5·10 단독선거를 반대하기 위해 당시 남로당에 전 국민 봉기를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고위원 후보인 태영호 의원이 13일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아 추모비에 참배하고 있다. 태 의원은 '제주 4·3 사건'에 대해 "명백히 북한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연합뉴스

전날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아 "4·3 사건은 명백히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된 사건"이라고 발언한 것이 논란이 되자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재차 4·3사건이 김일성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한 셈이라 논란만 더욱 증폭시켰다.

당장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망언"이라며 규탄 목소리가 나왔다.

제주 4·3희생자 유족회와 제주 4·3연구소, 제주 4·3도민연대 등은 전날 성명을 통해 태 의원의 국민의힘 최고위원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통해 낡아빠진 색깔론으로 국민들을 현혹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며 "제주 4·3 희생자 유족들과 도민들에게 즉각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오영훈 제주지사. 연합뉴스

오영훈 제주지사는 이날 오전 입장문을 통해 "태 의원은 제주 4·3이 북한 김일성의 지시로 촉발됐다며 색깔론에 기댄 거짓 주장을 펼쳤다"며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부정하고 여야 합의로 제정된 4·3특별법의 취지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지지를 얻기 위해 4·3을 왜곡 및 폄훼하고 희생자와 유족의 아픈 상처를 후벼파는 망언을 한 태 의원은 본인의 발언에 책임져야 한다"며 "4·3의 치유와 명예 회복에 앞장서겠다고 한 국민의힘도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원내 정책수석부대표는 "망언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국회 윤리위에 제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비판에도 태 의원은 아랑곳 없이 본인의 주장을 이어갔다. 오히려 현대사가 종북좌파들에 의해 왜곡·편향돼 있다며 본인이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태영호 최고위원 후보. 윤창원 기자

태 의원은 이날 부산 합동연설회 무대에 올라 "어제 제주도에 있었던 4·3사건 관련 팩트를 하나 터뜨렸는데, 민주당이 저를 보고 최고위원 후보 경선에서 사퇴하라고 한다. 저보고 사과하라고 한다. 사과해야 할 사람은 김일성 손자 김정은인데, 김정은한테는 입 한번 뻥긋 못하고 저보고 사과하라고 하니 이게 말이 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제가 북한에서 와서 잘 안다"며 "종북 좌파에 의해 잘못 쓰여진 이 현대사를 제가 바로잡겠다. 왜곡·편향된 현대사를 바로잡아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리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인사들의 역사 관련 '망언'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9년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당시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들이 국회에서 5·18 민주화운동 관련 공청회를 열고 극우 인사인 지만원씨를 초청, 5·18 관련 망언을 쏟아냈다가 논란을 빚기도 했다.

당시 이종명 의원은 "논리적으로 5·18이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었다는 것을 밝혀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김순례 의원은 "종북 좌파들이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 집단을 만들어내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언급하는 등 막말을 쏟아낸 바 있다.

논란이 커지자 당시 지도부는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국회 윤리특위에 이들 의원들에 대한 징계안이 제출됐지만 제대로 된 징계로 이어지진 않았다.

특히 김진태 당시 의원은 '5·18 망언' 이력 때문에 작년 지방선거 강원도지사 경선에서 원천 배제됐다가, 공개 무릎 사과를 통해 경선을 통과하면서 결국 도지사로 당선되기도 했다.

보수 정당에서 이 같은 역사 관련 망언이 반복되는 데엔 '솜방망이 처벌'이 대표적 원인으로 꼽힌다. 또 일부 극우 세력의 표심을 자극하려다가 선을 넘은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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