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곽상도 전 국회의원 아들에게 준 퇴직금 명목의 50억원을 뇌물로 판단하지 않은 배경에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전문 진술'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형사소송법 원칙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이준철 부장판사)는 전날 선고한 곽 전 의원에 대한 판결문에서 이번 사건의 결정적 증거로 꼽히는 '정영학 녹음파일'과 관련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당 녹음 파일에서 김씨는 정 회계사에게 "병채 아버지(곽상도)는 돈 달라 하지, 병채 통해서. 며칠 전에도 2천만원"이라고 말한다.
이어 "그래서 '뭘? 아버지가 뭐 달라냐?'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주기로 했던 돈 어떻게 하실건지' 그래서 '야 인마, 한꺼번에 주면 어떻게 해? 그러면 양 전무보다 많으니까 한 서너 차례 잘라서 너를 통해서 줘야지 그렇게 주면 되냐'"라고 말한다.
김씨가 곽 전 의원 아들 병채씨와 나눈 대화를 정씨에게 전한 것으로, 이 대화 내용을 사실로 보면 곽 전 의원은 아들을 통해 김씨에게 수상한 돈을 요구한 것이 되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해 '김씨가 정씨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만 효력이 있을 뿐, '김씨가 곽 전 의원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했다'거나 '곽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해 돈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 쓰일 순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김만배의 (녹음 파일 속) 진술은 피고인이 아닌 자인 곽병채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진술로 전문진술"이라며 "그런데 곽병채는 공판에 출석해 증언했으므로 전문진술을 증거로 인정할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곽 전 의원의 아들인 병채씨가 직접 법정에서 증언한 만큼 병채씨가 한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 김씨의 말을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의미다.
김씨도 재판에서 정 회계사와의 대화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곽 전 의원의 아들 병채씨와 곽 전 의원이 돈을 요구한 일은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재판부는 곽 전 의원 아들이 퇴직금 등의 명목으로 받은 50억원이 이례적으로 큰 액수라고 인정했다. 다만 곽 전 의원이 돈을 직접 받았다고 평가할 수 없고 대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결국 뇌물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