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는 지금까지 모두 4차례 공식석상에 등장했다. 공통점은 김주애의 등장 무대가 모두 군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김주애의 첫 등장은 지난 해 11월 18일 ICBM 화성17형의 시험발사 현장이었다. 이어 11월 26일 아버지 김 위원장이 화성 17형 개발 공로자들과 기념 촬영을 할 때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올 1월 1일에는 김주애가 아버지 손을 잡고 화성12형 무기고를 둘러보는 영상을 조선중앙TV가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북한의 건군 75주년을 앞두고 군 고위급 장령(장성)들이 행사 참여를 위해 묵는 숙소에 7일 밤 등장한 것이다.
과거의 등장이 전략 무기와 관련된 것이었고 이날은 김 위원장이 군 장성들을 격려하는 기념 연회였다는 점이 작용하기는 했겠지만 의도적인 연출로 가장 화려한 등장이 이뤄졌다. 김주애는 흰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치마정장 차림에 화장까지 해서 지금까지의 등장 중 가장 어른스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노동신문이 8일 공개한 사진에는 김주애를 띄우려는 의도가 역력히 드러나 있다. 김 위원장이 기념연회의 레드 카펫을 밟아나갈 때 손을 잡은 것은 부인 리설주가 아니라 딸 김주애였다.
박수일 인민군 총참모장과 강순남 국방상, 정경택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군부 핵심은 물론 차수 계급의 원로 황병서까지 뒤편에 도열시킨 뒤 김정은과 리설주 사이 정 중앙에 앉아 있는 김주애의 모습은 단연 돋보이는 사진이었다.
김주애를 호칭하는 표현의 격도 변화했다. 지난해 11월 18일 처음 등장할 때만해도 '사랑하는 자제분'이라고 했는데, 이어 '제일로 사랑하는 자제분', '존귀하신 자제분', '존경하는 자제분'등으로 바뀌었다.
김 위원장이 둘째 딸을 이처럼 파격적으로 띄우는 연출로 인해 김주애가 1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 후계자로 내정된 것 아니냐는 논란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북한의 후계자 내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경력이 바로 군 관련 경력이다. 김정일의 2대 세습과 김정은의 3대 세습에서 가장 중요했던 계기는 역시 군대의 장악과 군 원로들의 지지였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군 관련 주요 행사에 딸을 대동함으로써 군부의 지지를 서서히 모아가는 작업을 시작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은이 군 장령들의 박수를 받으며 김주애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연회장에 들어서는 모습, 김정은과 리설주 사이 정중앙에 김주애가 들어가는 사진 등을 볼 때 김주애가 후계자로 내정된 것을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딸 보다는 아들을 내세우는 가부장적인 북한의 사회 체제, 김정은 장남의 존재, 북한이 당면한 복합위기 환경 등을 고려할 때 후계자 내정을 말하기는 너무 빠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후계자 내정에는 군 분야에서 어떤 실적을 쌓느냐가 가장 중요한데, 10대인 김주애에게 군 분야 성과를 말하는 것은 너무 빠르다"고 지적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 위원장이 4번이나 김주애를 군 관련 행사에 동반한 것은 후계자 문제보다 핵·미사일 능력 등 국방력이 북한 미래 세대의 안전을 담보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영수 서강대 명예교수는 "백두혈통의 권력승계가 김정은 자신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고, 다음의 권력 역시 백두혈통으로 간다는 것을 인민들에게 기정사실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후계자 내정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전반적으로 김일성 조선의 영속성을 강조하는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기념연회 연설에서 "개척도 위대했지만 계승 또한 위대하기에 우리 군대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군대라는 시대와 역사의 값 높은 부름을 쟁취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건군·건당·건국의 개척만이 아니라 제재와 방역 등 복합위기에 당면한 현 시점에서 혁명의 계승성이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정원은 지난 5일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김 위원장이 김주애와 동행하는 것은 세습정치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면서도, "김주애가 후계자가 된다는 판단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