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식저장시설에 고리 3·4호기 수명연장도 '진행'…지역민은 '패싱'

고리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 건설 이어 3·4호기도 '수명연장' 실무 돌입
다음 달부터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공람 시작…2호기와 동일한 방식
부산지역서 '일방 추진' 비판 잇따라…"실무 진행 전 주민 의견 수렴이 우선" 요구도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송호재 기자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고리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보관용 건식저장시설 건설안을 이사회에서 의결한 데 이어, 고리원전 3·4호기 수명연장을 위한 본격적인 실무 절차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에 큰 영향을 주는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면서, 지역민을 상대로 어떠한 의견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은 데 대한 거센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한수원 고리본부는 다음 달 고리원전 3·4호기 계속운전(수명연장) 사업을 위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 주민 공람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평가서 공람은 부산 10개 구·군과 울산 5개 구·군, 경남 양산시 등을 상대로 60일간 이뤄진다. 열람을 원하는 주민은 구·군청이나 행정복지센터를 직접 찾아가 비치된 평가서를 읽어야 한다. 이는 고리2호기 평가서 공람 과정과 같은 방식이다.
 
한수원은 지난해 7월 고리2호기 수명연장을 위해 이런 방식으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람을 진행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방대한 분량의 평가서를 비전문가인 주민이 직접 찾아가 읽고 의견을 제시하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당시 부산 10개 구·군 240만명 가운데 평가서 초안을 열람한 사람은 158명으로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수원은 평가서 초안에 대한 의견을 듣는다며 공청회를 강행해 환경단체의 거센 반발 속에 곳곳에서 파행을 빚기도 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고리 3·4호기 초안 공람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인 일정 등은 확정되지 않았으며, 공청회 개최 방식이나 일정 등도 결정된 건 없다"고 말했다.
 
7일 한수원 이사회가 열린 서울 중구 방사선보건원 앞에서 부산 기장군의회 의원들이 일방적인 건식저장시설 설치안 의결에 반대하고 있다. 부산 기장군의회 제공

이와 동시에 한수원은 고리원전 부지 내에 사용후핵연료 보관을 위한 건식저장시설 설치안을 7일 이사회에서 전격 의결했다. 한수원은 이 계획에 따라 2030년까지 고리원전 부지 안에 2880다발 규모의 저장 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다.

한수원 이사회의 이같은 결정에 고리원전이 위치한 기장군과 기장군의회는 즉각 반발했다.
 
기장군은 "국회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이 논의 중인 가운데, 주민동의를 구하는 절차나 의견수렴 없이 건설을 추진하려 한다"고 지적했고, 기장군의회는 "지역 주민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추진 중인 건설 계획 철회를 강력히 요청한다"고 한수원을 규탄했다.
 
부산지역 시민사회와 환경단체들은 한수원이 건식저장시설 건설과 고리 2~4호기 수명연장 추진 등 원전을 둘러싼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면서, 지역 의견을 외면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며 연일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부산 고리2호기 수명연장·핵폐기장 반대 범시민운동본부는 "윤석열 정부가 특별법을 논의 중인 국회까지 무시하고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하고 있다"며 "원전 수명연장과 건식저장시설 추진 등에 방사선비상계획구역 주민들의 주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국회 입법에서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탈핵부산시민연대 김현욱 집행위원은 "노후원전 수명연장이나 건식저장시설 모두 우선 경제성이나 안전성 등 전반적인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 정말 필요한지를 세세하게 따져보고, 주민들의 의견이 어떤지 충분히 물은 뒤에 실무 절차에 들어가는 게 순서에 맞다"며 "항상 실무 절차를 먼저 강행해놓고, 거기에 필요한 의견을 달라는 식으로 진행하는데 이는 순서가 뒤바뀐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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