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퇴직금 명목으로 대장동 개발업자들로부터 50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에게 법원이 8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뇌물로 볼 수 없다"라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번 재판 내내 곽 전 의원과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는 곽 전 의원 아들에게 지급된 돈은 곽 전 의원과 관련이 없는 돈이라고 혐의를 부인해 왔다.
특히 '곽 전 의원에게 돈을 줘야 한다'는 등의 말이 담겨 유일한 정황 증거이자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사건의 '스모킹 건'이라 불린,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도 인정받지 못했다. 2021년 9월 불거진 대장동 의혹 관련 사건의 첫 법원 판단에서 신빙성이 탄핵되면서 향후 다른 재판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법원 "제출된 증거만으론 범죄 증명 안 돼"…곽상도 무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이준철 부장판사)는 이날 뇌물 수수와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뇌물을 건넨 혐의로 함께 기소된 김만배 씨 역시 무죄를 받아냈다. 곽 전 의원은 다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벌금 800만 원을 선고받았다.검찰은 곽 전 의원이 지난 2015년, 김 씨가 주도한 '성남의뜰 컨소시엄'이 하나은행의 이탈로 와해될 위기를 맞자 곽 전 의원이 하나은행에 압력을 가했다고 봤다. 그에 대한 대가로 화천대유에서 근무한 곽 전 의원의 아들 병채 씨에게 퇴직금·성과급 명목으로 50억 원이 건네졌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곽상도)이 김 씨의 지시를 받은 정영학 회계사로부터 대장동 사업을 보고받은 이후로 대장동 사업에 관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또 김 씨가 성남의뜰 컨소시엄 유지를 위해 피고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거나, 피고인이 그 요청에 따라 실제로 하나은행 임직원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한 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이었던 곽 전 의원이 대장동 개발 과정에 도움을 줬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며 뇌물과의 직무관련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장동 도시 개발 사업과 관련된 발굴 조사는 일반적인 통상 절차에 따라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나 사정이 없었으므로 김 씨가 대장 문화재 해결을 위해서 피고인이 필요한 현안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라며 "피고인이 문화재청에 요청한 사항도 대장동 개발과 특별한 관련이 없기에 직무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봤다.
재판부는 곽 전 의원이 국민의힘 소속 부동산투기특별조사위원회로 활동한 부분은 대장동 개발 사업과 관련된 직무로 인정되지만 "아들 병채 씨가 받은 성과급 등을 피고인이 직접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할 수 없다"면서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대리인으로서 뇌물을 수수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사정들이 존재하지만 성인으로, 결혼을 해서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했고, 병채 씨의 급여 수령 계좌에 입금된 성과급의 일부라도 피고인에게 지급되거나, 피고인을 위해 사용됐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스모킹건'이라던 정영학 녹취록, 위력 없었다
검찰은 이번 재판에서 자신들의 공소 사실을 뒷받침할 증거로 '정영학 녹취록'을 앞세웠다.
정영학 회계사가 수년간 김만배 씨와의 대화를 녹음한 해당 녹취에서 김 씨는 "병채 아버지(곽상도)는 돈을 달라고 한다. 병채를 통해서" 등의 말을 한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병채 씨에게 지급된 돈은 곽 전 의원에게 건네진 뇌물이라고 봤다. 이른바 '50억 원 약속 그룹(50억 클럽)'의 정황도 정영학 녹취에 담긴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녹취에 담긴 자신의 말은 허언이었다'라고 맞섰다. 자신이 정 회계사, 남욱 변호사와 공통으로 부담하기로 한 돈(공통비)을 덜 내기 위해서 지출이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한 거짓말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정영학 녹취에 담긴 김 씨의 말을 사실로 볼 것인지, 아니면 김 씨의 허언 주장을 인정할 것인지가 이번 공판의 결정적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재판부는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김 씨의 허언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김 씨가 정영학 회계사, 남욱 변호사에게 피고인에게 50억 원을 줘야 한다는 말을 하고, 구체적 방안에 대해 논의한 상황은 인정된다"라면서도 "다만 김 씨는 정 회계사, 남 변호사와 공통비 분담에 관한 분쟁이 발생한 이후부터 피고인을 포함해 약속 그룹에 포함된 사람들에게 각 50억 원을 줘야 한다고 (말을) 구체화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에게 줘야 하는 50억 원의 명목에 대해서도 성남의뜰 와해 위기와 연결해서 말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녹취 속) 김 씨의 진술을 신빙하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관련 사건 첫 선고에서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이는 향후 다른 재판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또 정치와 법조계 고위 인사들이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피고인들에게 50억 원을 받았다는 '50억 원 약속 그룹(50억 클럽)'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는 검찰 수사에도 영향이 불가피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