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의 세터 이원정(23·176cm)의 이야기다. 이원정은 지난해 12월 27일 트레이드를 통해 GS칼텍스에서 흥국생명에 새 둥지를 틀었다.
팀에 처음 합류했을 당시에는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며 팀에 빠르게 녹아드는 데 집중했다.
5라운드부터는 선발 출전의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흥국생명 김대경 감독 대행이 시도한 변칙 전술의 중심에 섰다. 최근 두 경기 연속으로 선발 출전해 팀의 2연승을 이끌었다.
김 대행은 5라운드 첫 경기인 지난 3일 KGC인삼공사전부터 변칙 기용을 시도했다. '배구 여제' 김연경과 외국인 선수 옐레나를 전·후위에 나눠 대각으로 두고 공격 전개를 풀어갔다. 여기서 이원정은 김연경의 공격 점유율을 끌어올리면서 옐레나에 집중된 공격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성공적인 시도였다. 김연경은 양 팀 최다인 25점, 옐레나는 16점을 터뜨리며 팀의 세트 스코어 3 대 0 완승을 이끌었다. 여기에 직전 경기서 23.4%에 불과했던 김연경의 점유율을 37.7%로 올렸고, 옐레나의 점유율은 39.72%에서 36.07%로 떨어뜨렸다.
김 대행은 7일 선두 현대건설과 올 시즌 우승 경쟁의 판도를 가를 빅 매치에서도 같은 선택을 했다. 현대건설에 승점 3으로 뒤진 격차를 지우기 위해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경기 전 그는 "공격을 한 층 더 극대화할 수 있는 전술"이라고 자신 있게 설명했다.
이원정이 김 대행의 지시대로 경기를 진두지휘한 결과다. 김 대행은 "이원정이 김연경에게 준 공이 예쁘게 전달돼서 점수를 더 많이 올릴 수 있었다"면서 "준비했던 플레이가 잘 나왔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김 대행은 기존 주전 세터 김다솔이 있음에도 왜 이원정을 선택했을까. 김 대행은 "김다솔의 플레이는 라운드를 거듭하면서 분석이 많이 됐고, 이원정은 선발로 뛴 경기가 적어서 분석이 덜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원정이 김연경의 점유율이 끌어올려 공격 면에서 도움이 됐다"고 흡족해 했다.
이원정은 이날 블로킹에서도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팀 전체 블로킹 득점(7개)의 과반을 차지한 무려 4개를 성공시키며 높이를 뽐냈다. 이에 적장 현대건설 강성형 감독은 "낮은 높이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는데, 이원정이 낮은 블로킹을 맡아 뚫어내기 힘들었다"고 아쉬워했다.
흥국생명은 이날 이원정의 지휘 아래 현대건설을 세트 스코어 3 대 0으로 꺾었다. 승점 3을 수확하며 20승 6패 승점 60을 기록, 21승 5패인 현대건설에 승수에 밀려 여전히 2위지만 승점 동률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