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시절 특공대였다는 장호기 PD는 '가장 완벽한 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피지컬: 100'을 기획했다. 말 그대로 '피지컬'(신체)의 본질적 대결을 통해 최종 승자를 가려내는 서바이벌 방식을 도입했다. 웅장한 세트와 퀘스트 장치들은 마치 '오징어 게임'을 연상시킨다.
기존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피지컬: 100'은 각종 첨가물을 '최소화'했다. 흔히 이 같은 포맷에 등장하는 '빌런'(악인), 유독 카메라 노출이 잦은 출연자들의 서사나 배경 등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제작진은 큰 가이드만 가져갔고, 모든 드라마들은 출연자들이 스스로 써내길 바랐다.
프로그램에 재미를 더할 땐 자유보다 통제가 쉽고 편한 법이다. 그러나 장 PD는 고행길을 선택해 끝까지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물론, 비판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피지컬: 100'의 대결을 두고 체급, 성별 등에 구분이 없는 방식이 과연 공정한지 의문이 뒤따른다.
다만 몸의 본질을 찾길 게을리 하지 않고, 각 단계별 '퀘스트' 장치를 치열하게 고안해 또 하나의 글로벌 성공작이 탄생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음은 6일 서울 중구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장호기 PD 기자간담회 일문일답.
A '오징어 게임' 전에 기획했지만 어쨌든 나왔다. 이런 콘텐츠에 열광하는 사람들 앞엔 통렬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출연자들의 목숨을 빼앗고 싶었는데 그게 '몸'이다. 출연자들 몸을 2시간 동안 본을 떠서 만들고 스스로 깨는 연출이었다. 출연자들이 많이 고통스러워했고, 깨는 척만 하면 안되냐고 하기도 했지만 1개만 남고 모두 깨졌다.
Q 지금까지 시사교양 PD로 활동해 왔는데 넷플릭스 예능팀에 직접 기획안을 보냈다고
A 요즘은 장르 구분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모든 걸 다뤄보자는 꿈이 있었는데 이것도 인간에 대한 프로그램이고 특정 장르로 구별되지 않는 콘텐츠라고 생각했다. 플랫폼은 넷플릭스가 연출자의 가장 큰 무대라 도전한다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문을 두드려보고자 했다. 확실히 콘텐츠 측면에서 제작 기간도 길고 공을 많이 들일 수 있다. 당연히 요구하는 수준도 높다.
Q 본인 소속은 MBC다. 이런 협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A 지상파가 위기인 상황에서 저 역시 그 내부 조직원이기에 돌파구가 필요했다. MBC 제작이라고 해서 TV에만 나가야 하는 건 아니란 생각으로 도전했다. 제작자로서는 기회였다. MBC도 글로벌 미디어그룹을 지향하고 있고, 그런 의지가 있지만 제도나 지원은 아직 논의 단계에 있다. 제가 일단 처음으로 나선 거고, 내부에서 프로그램을 같이 할 수 있는 분들과 팀을 꾸려 진행했다. 당연히 많은 설득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도 OTT 프로그램을 통해 글로벌 콘텐츠 제작을 한다는 큰 방향성이 일치했다. 외부 제작을 해본 적은 없지만 수십년간 축적된 인재와 인프라가 있기 때문에 언제든 이런 콘텐츠를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 MBC의 장점 아닐까.
A 프로그램 자체가 거대한 서바이벌이다. 그래서 노하우가 필요했고, '스트릿 우먼 파이트' 제작 경험이 있는 제작사와 협업을 했다. 출연자들은 일단 1천명 조사를 해서 500명 미팅을 했다. 면접과 정신력, 신체 검사 등을 다 하고 최종 100명을 모시게 됐다. 첫 세트가 축구장 두 개 정도 되는 사이즈였다.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화장실 한 번 다녀오면 무릎이 나갈 정도였다. 촬영도 카메라가 150~200대 가까이 돌아갔고, 스태프도 200~300명 정도 됐다. 준비 기간은 길었는데 촬영은 지난해 6~7월 두 달 정도만 걸렸다. 출연자들이 바쁘고 대회 준비하는 분들이 많아서 촬영에 여유가 있진 않았다. 국가대표 선발 일정이 겹쳐서 못 나오신 분들도 있다.
Q 연출자가 생각한 '피지컬: 100'의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
A 일단 기존 봐왔던 콘텐츠와 완전히 달라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기존 서바이벌을 따라가면 '빌런'이 나오고, 서로 욕하고 이럴 수 있는데 그런 거 말고 공간에서 나오는 걸 자연스럽게 담아보자고 생각했다. 각 퀘스트마다 비밀을 엄수해서 출연자들의 반응이나 표정은 정말 100% 리얼이다. 출연자들 각각 특징이 보이도록 연출했고, 체급과 성별 차이가 있어 어느 정도는 고려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똑같이 간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진행했다.
Q 연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포인트는
A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고 싶었다. 드라마는 비현실의 영역이고 리얼리티는 현실의 영역이다. 굉장히 현실적인 주제와 사람들이지만 세트 구성은 '오징어 게임'이란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그런 시청각 경험을 하면서 '가장 완벽한 피지컬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한줄을 남기고 싶었다. 처음에는 출연자들이 정말 우승하러 왔다가 세상에 나 같은 몸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하는 열정이 늘어갔다. 나중에는 '내 몸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며 탈락하기 싫어했다. 결국 다양한 피지컬이 있고, 그렇기에 '완벽한 피지컬'이란 개념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A 저희도 나름대로 큰 기대와 예상이 있었다. '이 출연자가 어디까지 올라갈 것이고, 이런 양상이 펼쳐질 것이다' 같은. 하지만 그대로 되면 그게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출연자들이 꼭 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큰 가이드는 가져가지만 우리의 예상이 깨지길 바랐다. 그런데 점점 퀘스트가 진행되면서 맞출 수 없을 정도로 몸에 대한 편견이 많다는 걸 느꼈다. 사실 (특수부대 출신) 에이전트 H의 탈락도 아까웠다. 하지만 그의 탈락이 좋은 것들을 많이 보여줬다. 각본이 없고, 스토리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는 거다. 현장에서 만든 이야기가 역사를 썼다고 이야기한 분이 있었는데 그 말이 와 닿았다. 출연자들이 써가는 스토리를 왜곡 없이 담으면서 프로그램이 완성된다고 봤다.
Q 몸끼리 부딪히는 퀘스트도 있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 경기 운영 방식은 어땠는지
A 너무 불필요하게 많은 정보가 제공될 필요가 없을 것이라 생각해 디테일한 룰 설명은 없었지만 실제로 경기가 엄청나게 많이 중단됐다. 출연자들이 경고를 많이 받기도 했다. 코너별로 심판 역할을 하는 분들도 다 계셨는데 후반 작업을 통해 지웠다. 굉장히 제한을 두고 상황을 봐가면서 끊고 그랬다. 매끄럽게 룰도 없이 흘러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니었다.
Q 출연자 중 보디빌더 춘리와 박형근 격투기 선수 간 대결을 두고 체급 차이가 맞지 않는 '성대결'이었단 비판도 있었다. 공개 이후 춘리가 성희롱 악성 댓글 등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연출자로서의 입장은
A 프로그램 기획 의도 자체가 구분 없이 완벽한 '피지컬'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그 의도에 맞춰 전개가 됐다. 모든 분들에게 큰 개념에 대한 설명 후 동의를 받은 분에 한해서 출연을 한 거다. 사실 경기는 언제든 포기하거나 피할 수도 있었다. 춘리 선수가 개인 SNS에 올리신 입장 정도로 갈음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다만 우리 프로그램을 떠나서 젠더 갈등을 부추기거나, 최근에 있었던 신체 부위 관련 악플(악성 댓글)은 문제가 되지 않나 생각한다. 지금도 춘리 선수 목소리나 몸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자제 되어야 한다. 두 분이 최선을 다해서 참여하며 보여줬던 모습들, 그런 부분들을 봐주시고, '우리가 편견이 있었구나' 이렇게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Q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부문 10위 안에 드는 등 해외 인기가 뜨겁다. 포맷 수출 등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 있을 것 같다. 해외 시청자들을 위해 연출에 신경 쓴 지점과 특별히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A 자막 표현에 고민이 많았다. 정서적, 문화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피했고 각 출연자의 배경을 최대한 배제하고 직관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오히려 정말 '피지컬'만을 가지고 추측, 예상했기에 그 예상이 무너지면 리얼한 리액션들이 나왔던 것 같다. 국내 시청자들과 그런 차이가 있었다. 많은 시청자들이 봤을 때 내용을 따라가기 어려우면 안 된다고 생각도 했다. 기획자 입장에서는 대륙권이나 문화권별로 나중에 전세계 참가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왜 한국에서만 하느냐.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며 메일을 보내준 시청자들도 있다. 이건 별개로 자랑하면 안되는데 방탄소년단(BTS) 정국님이 '피지컬: 100' 시청 모습을 올려 주셔서 동시 접속자가 1천만명을 넘고 그랬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