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상구의 유일한 장애아 전문 어린이집이 결국 폐쇄 절차를 밟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학부모들은 현 법인이 어린이집을 계속 운영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고, 해당 지자체도 학부모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다.
지난 3일 부산 사상구청에서 A장애아 전문 어린이집 폐쇄를 두고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A어린이집 학부모와 원장, 조병길 사상구청장과 부산시 관계자 등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대책을 고민했다.
학부모들은 횡령이라는 불법을 저지른 법인에 더는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며 가까운 장애아 통합 어린이집으로 전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애초 시설 기부채납이나 수탁 운영 등 법인이 유지되는 방향은 원한 적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학부모 B씨는 "우리 아이들이 장애아 전문 어린이집에서 보육을 받는 게 최우선이었지만 그렇다고 현재 어린이집을 계속 운영해달라고 고집하진 않았다"며 "해당 법인에서 어린이집을 계속 운영하는 것은 절대 반대하기 때문에 차라리 전원을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른 학부모 C씨도 "우리 때문에 법을 어겨달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정해진 절차를 밟으면서 아이들의 보육을 위한 대책을 원했고, 지금 상황에선 아이들이 전원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학부모들 주장에 어린이집 존치를 주장하던 조병길 구청장도 "학부모들이 찬성한다면 구에서도 장애아 통합 어린이집을 설득하는 등 전원하는 방향을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어린이집 폐원으로 의견을 모은 셈이다.
사상구청은 그동안 A어린이집을 폐쇄하지 않고 계속 운영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추진해왔다. 조 구청장은 폐쇄 시일 내 뚜렷한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면 폐쇄 명령 행정처분의 철회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회의에서도 구청은 법인으로부터 기부채납을 받아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운영을 지속하거나, 구립 어린이집으로 3년 동안 수탁 운영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부산시는 두 가지 안 모두 정해진 규정상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해왔다. 어린이집에 내려진 폐쇄 명령에 따라 법인이 해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부채납과 수탁 운영 모두 원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구청에서 수개월 동안 법인과 어린이집을 유지하는 방향으로만 대책을 찾다 보니, 다른 현실적인 방안들을 추진할 시간을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절차대로 어린이집 폐쇄를 빠르게 결정하고, 사상구에 새로운 장애아 전문 어린이집 신설을 추진해 보육 공백을 줄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폐쇄 명령이 내려진 지난해 6월 당시 사상구의 국공립 어린이집 4곳이 장애아 전문으로 전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고, 일부는 장애아 전문 어린이집 규정에 맞추기 위한 공사 견적까지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 김은미씨는 "구청에서 방안을 제시해도 시청과 입장이 다르다 보니 흐지부지 시간만 많이 흘렀다"며 "구청에서 법인 유지를 고수하지 않고 빠르게 결정했다면 다른 어린이집 공사를 시작해서 장애 전문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학부모와 구청이 의견을 모음에 따라, A어린이집 원생 32명은 장애아동과 일반아동을 함께 보육하는 장애아 통합 어린이집으로 전원할 예정이다. 다행히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보육사업안내 지침이 개정되면서 장애아 통합 어린이집의 장애아동 정원이 전체의 20%에서 30%로 늘어났다.
한편 A어린이집 대표는 국가보조금 3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최근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영유아보육법은 어린이집의 부정 수령 보조금이 1천만원을 넘을 경우 문을 닫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상구청은 이에 따라 오는 3월까지 시설을 폐쇄하라는 행정 처분을 내렸다. 어린이집 대표는 폐쇄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12월 패소했고, 현재 항소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