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드람 2022~2023 V-리그' 개막 이후 줄곧 여자부 1위를 질주하고 있는 현대건설. 외인 주포가 빠진 가운데서도 국내 선수들만으로 2위 흥국생명의 추격을 뿌리치고 있다.
2일 GS칼텍스와 5라운드 경기는 현대건설이 왜 1위를 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날 현대건설은 안방인 경기도 수원체육관에서 GS칼텍스를 3 대 0(26-24 25-22 25-21)으로 완파했다.
완승이었지만 쉽지만은 않은 경기였다. 현대건설은 이날 1세트 후반 20 대 22로 끌려가 기선 제압을 당하는 듯했다. 1세트를 내준다면 자칫 올스타전 휴식기 전 연패가 3경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잖았다.
하지만 위기에서 집중력이 빛났다. 37살 베테랑 황연주가 노련한 페인트 공격을 성공시킨 데 이어 미들 블로커 이다현이 강소휘의 강타를 막아내며 상대 범실을 유도해 동점을 만들었다.
승부처에서는 이날 키 플레이어 정지윤이 활약했다. 정지윤은 23 대 23에서 상대 주포 모마의 스파이크를 블로킹했고, 24 대 24 듀스에서는 절묘한 밀어넣기로 세트 포인트를 만들었다. 그러자 주장 황민경이 모마의 공격을 블로킹하며 1세트를 따냈다.
사실상 이날 승패가 갈린 순간이었다. 리드를 잡았다가 첫 세트를 내준 GS칼텍스는 힘이 빠진 듯 2, 3세트에도 무너졌다. 현대건설은 2세트 양효진의 다이렉트 킬과 세터 김다인의 재치 있는 2단 공격까지 더해 승기를 잡은 끝에 완승을 거뒀다.
황연주가 양 팀 최다 17점으로 공격을 이끌며 이날도 야스민의 공백을 메웠다. 양효진도 양 팀 최다 3블로킹에 15점으로 중심을 잡아줬다.
특히 정지윤이 블로킹 2개 포함, 12점으로 알토란 활약을 펼쳤다. 이날 경기 전 현대건설 강성형 감독은 "공격적인 면에서 정지윤의 강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발 투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지윤은 같은 아웃사이드 히터 고예림보다 3cm 큰 180cm로 높이에서 우위에 있어 공격 성공률과 블로킹에서 앞서는데 이날 존재감을 뽐냈다. 정지윤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제 역할을 오늘 조금 한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지윤이 활약하기 어려웠다. 알려진 대로 정지윤은 리시브에 약점이 있다. 정지윤의 리시브 효율은 여자부 전체 19위(30.22%), 반면 고예림은 44.47%로 현대건설에서 가장 높은 전체 9위에 올라 있다.
이런 정지윤을 주장 황민경이 붙들어줬다. 정지윤은 "민경 언니가 많이 도와주고 가르쳐준다"면서 "경기 중 불안해 하면 '내가 받아줄 테니 구경만 하라'면서 안정을 시키준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날 정지윤은 팀에서 가장 많은 24번의 리시브를 시도했고, 10개가 정확하게 연결됐다. 정지윤은 "여전히 리시브 부담이 많이 되지만 이겨내려고 하다 보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이겨내는 재미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웃으며 반문했다.
"오늘 내게 몇 점을 주고 싶으냐"는 질문에 정지윤은 "80점을 주고 싶다"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에 함께 인터뷰에 나선 황연주가 "후하네"라고 짓궂은 농담을 던지자 옆에 있던 황민경까지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3명이 한바탕 웃은 뒤 정지윤은 "65점?"이라며 선배 눈치를 슬쩍 본 뒤 결국 70점으로 타협을 봤다. 현대건설의 화기애애한 팀 워크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주장 황민경은 "외인이 없을 때 상대방을 질리게, 수비에서 상대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으로 물고 늘어져 보자, 공격력으로 앞서지 못하니 저 팀이 치가 떨릴 만큼 버텨내 보도록 하자고 했다"면서 "상대방이 왜 죽을 것 같은데 안 죽냐면서 '형광 좀비'라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황민경은 이날 9개의 디그(상대 공격을 받아내는 수비)를 모두 성공시켰고, 전체 디그 1위 리베로 김연견도 13개 중 10개, 세터 김다인도 14개 중 12개가 성공했다.
현대건설은 야스민 없이 치른 11경기에서 7승 4패를 거뒀다. 올 시즌 워낙 상승세여서 그렇지 6할에 가까운 승률이다. 현대건설은 부상 회복이 길어지는 야스민을 대체할 새 외인을 물색하고 있지만 지금 같은 기세라면 그리 서두를 필요는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