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지속에 경기침체 국면…韓 기준금리 정점은?

미 FOMC, 기준금리 0.25%p 인상하며 속도조절
제롬 파월 "인플레이션 둔화 과정 시작됐다"
국내 1월 소비자물가, 시장 예상치 뛰어넘은 5.2%
전기·가스·수도요금 인상 여파…교통요금 인상 영향도 반영될 듯
물가는 뛰는데 경기둔화 조짐에 통화정책도 한계
지난해 4분기 역성장…무역수지 11개월 적자 행진
23일 2월 금통위 앞두고 깊어지는 한은의 고민

1일(현지시간) 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고 있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연합뉴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그동안 급격하게 올랐던 정책금리 속도조절에 나섰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전기·가스·수도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여전히 5%대를 기록해 금융·통화당국의 고심은 갈수록 깊어지는 모양새다.

美 인플레이션 정점 찍고 둔화세 뚜렷

미 연준은 1월 31일~2월 1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목표범위를 연 4.25~4.50%에서 4.50~4.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지난해 사상초유의 4차례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75%포인트 인상) 이후 12월 '빅스텝'(0.5%포인트 인상)으로 속도조절을 예고했던 연준은 이날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으로 시장의 기대에 부응했다.

연준의 정책결정문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인플레이션은 다소 완화됐다(has eased somewhat)'는 표현이다.

이번 정책결정문에서 처음 등장한 문구로 물가상승률이 둔화세에 들어섰다고 보는 연준의 판단을 보여준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둔화 과정(Disinflationary process)이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파월 의장이 "현재 국면이 디스인플레 초기 국면이고 상품 물가가 하락하고 있지만 서비스 물가 하락세가 더딘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며 "올해에도 한 두번(a couple of)의 금리 인상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지만, 시장은 '인플레이션 완화' 표현에 더 주목했다.

연합뉴스

특히 지난해 정책결정문에서 등장한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된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높아진 음식료와 에너지 가격, 더 광범위한 가격 압박', '(우크라이나) 전쟁 이벤트가 인플레이션의 상방 압력을 높이고 세계 경제활동을 억압하고 있다'는 문구 역시 삭제되거나 대체됐다.

한국은행은 이날 이승헌 부총재 주재로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미 연준의 판단에 대해 "시장의 예상에 부합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연준과 시장 간 인플레이션과 정책 경로에 대한 인식 차이가 여전히 커 앞으로 기대가 조정되는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환율, 자본유출입 등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필요시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깊어지는 한은의 고민…고물가도 걱정, 경기둔화 신호도 걱정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언론회관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미국의 기준금리 속도조절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연말 국내 물가 상승률이 주춤했지만, 1월 소비자물가가 시장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0.11(2020년=100)로 전년동기 대비 5.2%나 상승했다. 전월 상승률(5.0%)보다 상승률이 0.2%포인트 확대된 것이다.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5월 5.4%, 6월 6.0%, 7월 6.3%로 정점을 찍은 뒤 점차 완만하게 둔화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난해 5월(5.4%)부터 9개월 연속 5% 이상의 고물가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전월 대비 1월 물가 상승률은 0.8%로 지난 2018년 9월(0.8%)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특히 전기·가스·수도 등 공공요금이 28.3%나 급등해 2010년 별도 통계가 작성된 이후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여기에 버스비와 택시비 등 교통비도 줄인상이 예고돼 2월 소비자물가 역시 살얼음판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기대인플레이션율도 3.9%로 집계돼 향후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소비자들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류영주 기자

물가 고공행진과는 반대로 경기 둔화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국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직전분기 대비·속보치)은 반도체 업황 부진에 따른 수출 감소로 마이너스(-0.4%) 역성장을 기록했다.

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코로나19 여파가 본격화했던 2020년 2분기(-3.0%) 이후 10분기 만에 처음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0%에서 1.7%로 낮췄다. IMF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0.2%포인트 올렸다는 걸 감안하면 그만큼 우리 상황이 상대적으로도 좋지 않다는 의미다.

특히 1월 무역수지가 126.9억 달러 적자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한 점도 부담이다.

무역수지는 11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는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5년 1월~1997년 5월 연속 적자 뒤 25년 만에 처음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해 4월 취임 직후 '고물가의 고착화'를 막겠다고 선언했지만, 2021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기준금리 인상폭은 3%포인트에 달한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달 사상 처음 일곱 차례 연속(2022년 4·5·7·8·10·11월, 2023년 1월) 금리를 올려 현재 기준금리는 3.50%에 달한다.

인플레이션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투자와 고용, 생산과 소비가 위축되면서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온 가운데, 한은 입장에서도 기준금리를 마냥 올릴 수만은 없는 처지다.

실제로 지난달 13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한 금통위원은 "국내 경기의 둔화 흐름이 지난해 4분기부터 본격화하고 있다. 수출 부진이 심화하고 민간소비 증가세도 실질구매력 감소와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 등으로 크게 약해지는데, 긴축적 금융 여건도 경기 하방 리스크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2월 금통위는 23일로 예정된 가운데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인상과 경기둔화에 대비하기 위한 금리동결을 놓고 한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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