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버스와 지하철 요금 인상 논의와 맞물려 연일 노령층 지하철 무임승차에 따른 적자 누적 문제를 토로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앙정부, 특히 기획재정부를 겨냥해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정치권이 그동안 눈치만 봤던 무임승차 제도가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
노년층 지하철 무임승차제도는 1980년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70세 이상 고령자에게 요금 50%를 할인해주는 것이 시초다. 이듬해인 1981년에는 노인복지법이 제정되면서 대상연령이 65세로 낮아졌고 결정적으로 1984년 ''경로사상을 고양하라"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노인복지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완전 무임승차 제도가 시행됐다. 그 이후로 40년 가까이 무임승차 제도가 이어져왔는데 당시에는 노령인구 비중도 낮고 지하철 노선도 몇 개 없어서 큰 부담이 안됐지만,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노령층 무임승차는 서울을 비롯해 각 지자체 도시철도의 적자 재정을 가중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서울시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노인 무임승차 제도가 중앙정부, 그중에서도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됐음에도 재정 지원은 없고 자치단체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며,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분을 정부 재정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요구를 이어오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달 3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8년 동안 요금 조정이 없었다"며 버스와 지하철 요금 300-400원 인상은 "고육지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요금인상 폭을) 조금이라도 낮추고 싶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가급적 요금인상 폭을 낮추고 싶은데 중앙정부의 손실보전이 무산되면서 어려움이 크다는 점을 애써 강조한 것.
오 시장은 "여야 양당 간에 거의 합의에 가까운 그런 입장을 정리를 해서 이른바 PSO(지방자치단체 손실 지원분), 즉 지하철 무임 수송 손실을 보전해주려는 노력을 했는데 기재부가 끝까지 반대를 했다"고 화살을 기재부로 돌렸다. 정치권에서 거의 양해가 있었던 사안을 기재부가 틀었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이제는 기재부가 나서야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시민의 교통비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이제라도 기재부가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나서야 한다"며 기재부를 작심 비판했다. 여당에서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같은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서울시와 기재부가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를 둘러싸고 서로 기싸움 중인데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책정한 버스 지하철 요금 인상폭은 300원-400원 수준이다. 현재 대중교통 일반요금은 교통카드 기준으로 지하철이 1250원, 시내버스가 1200원인데 400원 인상이면 30%가 넘는 대폭 인상이다. 급격한 물가 인상을 감안하더라도 서울과 수도권 시민 대부분이 대중교통망에 의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교통요금 인상은 가뜩이나 고물가 고금리로 쪼그라든 서민들의 가계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민선 자치단체장으로서 그리고 대선 잠룡으로서도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오 시장에게는 대폭 요금인상은 독배나 다름없다.
하지만 서울시의 수장으로서 서울교통공사의 재정난도 이제 덮고 갈 수 만은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서울교통공사는 2017년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가 합병한 이후 3년 연속 매년 5000억대의 적자를 냈고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2020년부터는 매년 1조원 가량의 적자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이 적자의 30% 정도가 무임승차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서울시는 추산하고 있다.
두가지 난제를 모두 해결하기 위해 오 시장으로서는 중앙정부의 지원에 사활을 걸어야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중앙재정 지원을 극구 반대하고 있는 기재부가 달가울리 없다. 오 시장은 "기재부가 입장을 선회해 준다면 그에 걸맞는 만큼 지금 논의되는 인상 요금을 조정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요금인상의 폭은 이제 기재부에 달려있다는 것. 요금인상이라는 독배를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오세훈의 기재부 집중 타격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앞으로 오 시장이 여당을 움직여 추경호 경제부총리와의 담판의 장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또 거기서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오세훈 시장의 협상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주요한 관전 포인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