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2시50분께,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빨래방으로 향하던 이항수(31)씨 눈에 남성 한 명이 들어왔다.
남성은 주차된 차의 조수석 문을 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수상하다고 생각한 이씨는 조용히 핸드폰으로 영상을 촬영하며 뒤를 밟았다.
남성은 차량을 옮겨가며 문 따기를 계속 시도했다.
차량털이범으로 확신한 이씨는 몸을 날려 남성을 붙잡았다. 남성은 한동안 저항했으나 "영상이 다 찍혔다"는 이씨의 말에 도주를 포기했다.
남성은 이씨의 신고를 받고 3분 만에 달려온 관악산지구대 소속 경찰들에게 인계됐고, 절도미수 혐의로 입건됐다.
그는 이전에도 유사한 범행으로 처벌받은 전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관악경찰서는 이른 새벽 시간 위험을 무릅쓰고 범인을 잡은 이씨에게 26일 감사장을 수여했다.
맹훈재 서장 등 경찰 관계자들은 이씨가 없었다면 범인을 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차량털이범이 CC(폐쇄회로)TV가 없는 사각지대에서 주로 범행했다"며 "영상을 처음부터 잘 찍어준 탓에 차량털이범도 범행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씨가 경찰서에서 감사장을 받은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2021년 9월에도 중고거래 사기범 검거를 도운 공로로 대구 달성경찰서에서 감사장을 받았다.
구매자 행세를 하던 사기범은 입금하고 물건을 받은 뒤 '보이스피싱에 당한 것 같다. 돈을 환수해야 한다'고 은행에 신고해 돈도 다시 돌려받는 수법을 썼다.
지인이 금팔찌를 팔려다 사기를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물건 판매자인 척 접근해 범인 검거에 일조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이씨는 경찰 공무원을 꿈꾸는 수험생이다. MBC의 TV 프로그램 '경찰청 사람들'에서 본 이대우 형사(현 동대문경찰서 수사1과장)가 평생의 롤모델이라고 한다.
시험에 연이어 떨어진 뒤 두 번이나 일반 회사에 취직했으나 끝내 꿈을 버리지 못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난해 6월 신림동 고시원에 다시 터를 잡았다.
이씨는 "길을 걸으면서도 누가 나쁜 짓을 하지는 않는지 살피는 게 재밌고 가슴이 뛴다"며 "꼭 훌륭한 형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