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나이에 마침내 이뤘다. 만년 준우승일 것만 같았던 강민구(40∙블루원리조트)가 4전 5기 만에 드디어 프로당구(PBA) 정상에서 포효했다.
강민구는 24일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방송센터에서 열린 '웰컴저축은행 웰뱅 PBA-LPBA 챔피언십' 남자부 결승에서 응고 딘 나이(베트남∙SK렌터카)를 눌렀다. 세트 스코어 4 대 2(14:15, 15:6, 2:15, 15:7, 15:9, 15:5) 역전승으로 PBA 16번째 챔피언에 올랐다.
PBA 투어 4전 5기 만에 이룬 감격의 우승이다. 강민구는 PBA 초대 대회인 파나소닉 챔피언십부터 4번이나 PBA 결승에 올랐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팀 동료 다비드 사파타(스페인)와 함께 역대 최다 정규 투어 준우승의 비운에 시달렸다.
그나마 사파타는 우승 경험은 있었다. 사파타는 초대 왕중왕전 챔피언에 오른 데 이어 올 시즌 2차 투어인 하나카드 챔피언십에서 정규 투어 우승까지 차지했다. 그러나 강민구는 한번도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지 못했다.
불운이 쌓이자 자신감도 사라졌다. 강민구는 20-21시즌까지 결승에만 4번 올랐지만 이후 2021-2022시즌 휴온스 챔피언십에서 8강 1차례만 진출했을 뿐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5번째 기회는 놓치지 않았다. 강민구는 응고 딘 나이를 맞아 첫 세트를 내주는 등 4세트까지 2 대 2로 팽팽하게 맞섰다. 첫 우승을 노리는 응고 딘 나이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강민구는 승부처였던 5세트 장기인 뱅크샷을 앞세워 승기를 잡았다. 5이닝까지 2 대 9로 뒤졌지만 6이닝째 3연속 뱅크샷을 꽂으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고, 7이닝에서도 뱅크샷 2방 등으로 6점을 터뜨리며 승부를 뒤집었다.
여세를 몰아 6세트에도 강민구는 2번의 뱅크샷 등을 앞세워 우승을 확정했다. 이날 강민구는 무려 16개의 뱅크샷으로 결승전 전체 76점 중 42.1%인 32점을 몰아쳤다. 위닝샷이 성공하는 순간 강민구는 마침내 승리의 포효를 터뜨렸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강민구는 "소름이 돋는다. 우승이 이런 기분이구나. 할 만하다"고 후련한 소감을 밝혔다. 이어 "세리머니 하면서 소리를 질렀더니 목이 잠겼다"면서 "우승하는 순간 터져 나왔다, 등 뒤에서 올라오더라"고 우승 순간을 돌아봤다.
그만큼 응어리가 많았다. 강민구는 "악을 썼다. 소리만 질렀다"면서 "해냈다는 느낌, 가슴이 맺혀있는 걸 분출했다고 해야 하나?"라고 포효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준우승도 많기도 했고, 이후 2년 동안 성적을 못 내서 죄송하기도 했다"면서 "준우승 4번은 운도 좋지 않았고 잘 치는 사람과 결승에서 만나기도 해서 그럴 수도 있지 했지만 이후 2년 동안은 이것밖에 안 됐나 하는 생각에 내 자신도 용납을 못했지만 분출이 됐다"고 덧붙였다.
노력도 많이 했다. 강민구는 "그동안 믿음도 사라졌고, 멘털이 힘들었다"면서 "체중도 줄이고 장비도 교체하는 등 여러 가지 많은 변화를 줬다"고 회상했다. 85kg까지 나갔던 몸무게를 15kg이나 줄이는 등 혹독한 훈련을 소화했다.
그러자 차츰 효과가 나왔다. 강민구는 "너무 살쪄 체력도 달리고 해서 좋아 보이기도 하고 많이 뺐는데 공 움직임과 구질이 달라졌다"면서 "훈련을 거듭하면서 패턴을 찾고 감각도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던 운도 따랐다. 그동안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을 안겼던 강적들이 이번 대회에서는 운 좋게도(?) 대회 중간에 탈락했다. 통산 7회 우승의 최강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웰컴저축은행)과 '그리스 괴인' 필리포스 카스도코스타스(하나카드)다. 강민구는 "쿠드롱과 필리포스 등 결승에서 완벽하게 쳤던 난적들이 떨어졌다"면서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고 응고가 잘 쳤지만 끝까지 해보자 집중하니 우승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의혹은 있었지만 좌절하지 않았기에 마침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강민구는 "상대가 나만 만나면 잘 치나? 내가 덜 성숙됐나? 생각은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좌절은 아니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언젠가 나도 우승할 수 있겠지 했다"고 마음을 다잡은 비결을 귀띔했다.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강민구는 "목표를 우승으로 잡고 최고가 될 거야 이런 생각으로 당구를 하지 않는다"면서 "당구를 좋아해서 잘 치는 사람이 될 거야 하다 보니 이런 성적을 냈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많이 좋아졌지만 경제적으로 안 따라주니 목표가 성적, 돈으로 가는 환경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플레이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면서 "어린 친구들이 많고 내가 딱 중간인데 빨리 성적을 내기보다 언젠가 되겠지 훈련하면 좋은 성적 내지 않을까 한다"고 강조했다.
강민구는 이번 우승으로 상금 1억 원과 랭킹 포인트 10만 점을 얻어 단숨에 시즌 포인트 랭킹을 44위에서 7위로 끌어올렸다. 강민구는 "대회 전에는 왕중왕전 출전이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이제는 확정돼 당구만 칠 수 있는 환경이 됐고 개인전 우승도 했으니 일단 팀 리그에서 소속팀의 우승을 이끌고 싶다"고 다짐했다.
불혹의 나이에 의혹이 사라진 강민구. "남은 8차 정규 투어와 왕중왕전도 기회가 되면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홀가분한 바람을 드러낸 강민구는 이제 더 이상 비운의 사나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