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그룹이 2018년 12월 'N프로젝트'라는 명칭의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서 N은 'North Korea(북한)'의 약자다. 쌍방울은 N프로젝트 사업 제안서를 만들어 북측에 건넸고, 별도의 프리젠테이션(PPT) 자료까지 이용해 설명한 결과 북측과의 경협 합의를 이끌어 냈다. 그룹 내 고위 임원들이 대북 사업을 긴밀히 논의했던 단체 대화방의 이름 역시 N프로젝트다.
쌍방울 대북송금, 경기도 남북 협력 사업이 발단
지난 20일 구속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55)은 임직원 수십명을 동원해 '쪼개기 송금' 방식으로 북측 인사들에게 640만 달러를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전 회장은 국내로 송환되기 전 자신을 향해 제기된 많은 의혹 중 유일하게 대북송금에 대해서는 일부 사실을 인정하는 취지로 말했다.
쌍방울의 대북 송금 의혹은 2018년 10월 급물살을 탄 경기도와 북한의 남북 교류 협력 사업에서 출발했다. 당시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구속)는 방북 기자회견을 열고 △아시아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개최 △황해도 지역 농림복합형 농장(스마트팜) △남한 내 옥류관 지점 개설 △임진강 유역 공동관리 등 협력 사업 추진을 북측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실제 민간단체인 아태평화교류협회와 경기도는 한 달 뒤 2018년 11월 국제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행사에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선아태위) 리종혁 부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인사 5명이 참석했고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와 이화영 부지사, 민주당 이해찬 대표 등이 자리했다. 애초 경기도는 당시 행사 비용 1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의회 의결 등이 이뤄지지 않아 도지사 재량으로 동원할 수 있는 3억원만 지원했다. 나머지 돈을 우회 지원한 곳이 바로 쌍방울과 KH그룹이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해 8월 CBS노컷뉴스 단독 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N프로젝트 가동한 쌍방울…김성혜 앞에서 PPT까지
쌍방울이 이른바 N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한 시기도 그쯤부터였다. 복수의 쌍방울 관계자는 검찰 조사에서 "김성태 회장이 2018년 12월 31일 임직원들과 등산하고 회식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북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듬해 2019년 1월 1일에는 임직원들과 함께 해돋이를 보면서 바닷물에 입수해 대북 사업의 성공을 기원했다고 한다.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쌍방울은 2018년 12월 말 중국 단둥에서 김성혜 당시 북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겸 조선아태위 실장 등과 만나 대북 사업을 협의했다. 이를 위해 쌍방울은 N프로젝트 사업 제안서를 만들었고, 별도의 PPT 자료까지 준비해 김 실장 등을 상대로 사업 설명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룹 내에서 대북 사업을 총괄한 방 부회장과 그룹 총괄 CFO 장모씨, 미래전략실 대표 김모씨, 비서실장 엄모씨 등 고위 임원들은 N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메신저 단체 대화방을 만들고 그곳에서 대북 사업과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논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태협 안 회장이 2019년 1월 쌍방울 계열사 나노스(현 SBW생명과학) 사내이사로 영입된 것도 비슷한 시기다. 당시 쌍방울은 안 회장과 김형기 전 통일부 차관, 김영수 전 국회 대변인 등 북한 전문가를 연이어 영입했는데, N프로젝트 대화방에 "N활성화 부탁"이라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한 쌍방울 관계자는 최근 수원지법에서 열린 관련 재판에 출석해 "N활성화는 대북 사업의 활성화를 얘기하는 것이다"라며 "포털사이트 증권의 종목별 페이지에 북한 전문가 영입에 관해 우호적인 댓글을 올리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쌍방울 회삿돈이 북측에 건네진 것은 그로부터 한 달여 뒤인 2019년 1월이다. 당시 쌍방울은 북한 조선아태위와 중국 선양에서 만나 경제협력 관련 합의서를 작성했다. 김성태 회장과 방 부회장, 이화영 부지사, 신모 경기도 평화협력국장, 안부수 아태협 회장과 조선아태위 송명철 부실장 등이 그 자리에 있었다. 쌍방울은 계약금 명목으로 2019년 1월 200만달러, 2월에 300만달러 등 총 500만달러를 북측에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이 전 부지사는 "경기도가 해야할 일을 쌍방울이 (대신) 해줘서 고맙다"는 취지로도 말했다고 한다.
북측에 전달된 돈은 스마트팜 관련 지원 사업비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혜 실장은 2018년 12월 쌍방울 측에 "경기도가 스마트팜 지원을 약속했지만 지원하지 않았다"며 "쌍방울이 대신 비용 50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한 것이 발단이 됐다. 검찰은 이런 식으로 쌍방울이 북측에 건넨 돈이 총 640만달러에 이른다고 본다.
北 광물 개발까지 눈길…N프로젝트 목적은 주가부양?
이들은 2019년 5월 다시 중국에서 만나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와 경협 합의서를 작성했다. 나노스 등을 통해 북한의 지하자원개발 협력사업과 관광지 개발, 물류유통, 자연에너지, 철도건설, 농축수산 협력 등 사업에 우선적인 사업권을 확보하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쌍방울이 N프로젝트를 통해 나노스, 광림 등 계열사의 주가를 부양하려고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나노스는 그해 3~4월부터 대북 관련 테마주로 묶이며 주가가 급등했고 북한의 광물 사업권을 약정 받았다는 테마로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나노스 주가가 오른 덕은 쌍방울이 봤다. 2017년 2월 나노스의 전환사채(CB) 200억원을 인수한 쌍방울은 2019년 12월부터 최근까지 전환 청구권을 순차적으로 행사해 취득한 주식을 팔아 1500억여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쌍방울 대북사업 얼마나 관여했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시 도지사로서 경기도의 남북 협력 사업의 최종 결정권자였다. 하지만 이 대표는 "김성태 전 회장과 아는 사이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김 전 회장도 국내 송환을 앞두고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를 전혀 모른다"고 했다. 대북송금 혐의를 인정하는 취지로 말한 김 전 회장이 이 대표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자신의 범행과 이 대표 사이에 선을 그은 셈이다.
하지만 쌍방울의 대북 송금이 경기도의 '북한 스마트팜 사업 지원' 비용을 대신하면서 이뤄진 점을 고려하면 당시 경기도와 쌍방울, 그리고 아태협 사이에서 이뤄진 대규모 남북 교류 협력 사업이 도지사인 이 대표와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아태협과 경기도가 공동 주최한 1회 국제대회에 직접 참여해 리종혁 부위원장 등을 만났고, 2019년 이화영 전 부지사의 중국 출장 계획을 직접 보고받고 결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전 부지사는 이 대표가 결재한 바로 그 출장에서 쌍방울과 북측이 경협 합의서를 작성하는 자리에 동석했고 축하 인사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