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빌라왕 섭외 '토스실장'의 비밀…직접 취업해보니

[검은 미로, 전세사기①]
컨설팅업체, '바지사장' 사냥꾼 토스실장
바지사장 명의 사냥하는 '토스실장'…건당 100만 원 안팎 리베이트
토스실장으로 일해봤더니…10분 만에 넘어온 명의대여자들
"당장 수수료 달라", "나중 일은 생각하지도 않아"
신용불량자, 노숙인, 사채 채무자 등 표적
"전세사기 공동정범…부동산 실명법 위반"

서울 남구로역 인근 새벽인력시장. 민소운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단독]빌라왕 섭외 '토스실장'의 비밀…직접 취업해보니
(계속)

전세사기의 대명사가 된 '빌라왕'. 알고 보면 '바지사장'인 이들을 섭외하는 배후 조직으로는 부동산 컨설팅 업체들이 지목되곤 한다. 컨설팅 업체들은 '깡통전세' 매물을 내놓은 뒤 세입자가 구해지면 리베이트를 챙기고 명의를 바지사장으로 돌린다. 바지사장들은 명의를 빌려준 대가로 한 건당 100만 원 안팎의 수수료를 받는다. 애초 전세금을 돌려줄 의사가 없는 바지사장들은 당장의 수수료를 챙기는데 여념이 없다. 이에 신용불량자, 노숙자 등이 바지사장으로 동원되는 경우가 상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바지사장을 업체는 어떻게 섭외할까. CBS노컷뉴스는 바지사장, 즉 명의대여자들을 섭외하는 컨설팅 업체 담당자들의 정체를 최초로 확인했다. '토스실장'으로 불리는 이들은 음지에서 치밀하게 바지사장을 구한 뒤, 명의를 업체에 '토스'해주고 건당 수수료를 챙겼다. 토스실장에게 사람의 이름이란 돈을 버는 '수단'에 불과했다. 전세사기의 핵심 고리라고도 할 수 있는 토스실장으로 직접 취업해 어둠의 세계를 깊숙이 들여다봤다.

"무주택자 명의는 한 건당 150만 원이야. 손님한테 80만 원 주고 나머지는 본인이 가져가면 돼."

수도권에 위치한 A 부동산컨설팅 업체. 이준호(가명) 팀장의 목소리는 자신만만했다. 말끔한 정장을 갖춰 입은 그는 30대 초반의 나이에도 '토스실장'을 이미 여럿 거느리고 있다고 했다. 토스실장을 해보고 싶다는 기자에게 이 팀장은 "부동산 일을 해봤느냐"고 물은 뒤 몇 가지를 당부했다.

"명의자는 우리의 '손님'이다", "토스실장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불법 같으니까", "명의자 연락 잘 되게 만들어놓고, 업무용 휴대폰도 하나 만들라" 토스실장은 처음엔 프리랜서지만 업무를 잘하면 업체의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면접은 20분만에 일사천리로 끝났다. 근로계약서도 없이 채용은 확정됐다. 이후에는 간단한 직무 교육이 진행됐다. '투자자 모집 커리큘럼'이라는 그럴듯한 제목의 교육자료는 제법 체계적이었다. 바지사장을 구할 때 확인해야 할 조건도 하나하나 짚어줬다. 신용불량자도 가능하며, 국세나 지방세 체납 여부도 확인해야 하는데 많지 않으면 업체에서 미납금을 대납해준다고도 설명했다.


"저희 업체에서 무주택자 분들과 파트너쉽 계약을 맺고 무주택자 세금감면과 각종혜택을 이용해 HUG 전세안심보증보험에 가입된 빌라를 대상으로 투자하실 수 있게 도와드립니다. 무갭투자는 2년 후 시세차액을 노리고 하는 투자입니다. 본인비용은 단 1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80만 원 지급해드립니다"

바지사장을 섭외하거나 상담할 때 쓰는 예시 문구는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을 충분히 홀릴만 했다. 이 밖에도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정부에서 무료로 주택을 지원해준다'고 제안하거나, 채무를 탕감해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한다.

토스실장의 수입은 자신의 실적에 달려있다. A 업체는 바지사장 1명을 데려올 경우 150만 원 안팎의 리베이트를 지급한다. 이 리베이트는 토스실장 70만 원, 바지사장 80만 원 정도로 나눠 가진다. 업체 별로 다르긴 하지만 이전엔 토스실장과 바지사장에게 200만 원을 웃도는 리베이트가 지급됐다. 하지만 명의를 건네주겠다는 사람이 워낙 많아지다 보니 시세가 떨어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토스실장은 바지사장을 많이 데려오거나, 한 명의 바지사장에게 명의를 계속해서 넘기라고 제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추후 발생할 부작용을 염두에 두지 않고 신용불량자든, 노숙인이든, 기초생활수급자든, 장애인이든 닥치는 대로 바지사장을 '사냥' 해온다. 사실상 토스실장이 바지사장을 '빌라왕'으로 키우는 실무자인 셈이다.

하지만 이 팀장은 면접과 교육 과정에서 "전혀 불법이 아니다"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다른 컨설팅업체와 다르다", "합법이 아니면 어떻게 사업자 내고 하겠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도 "우린 문제가 없긴 하지만 경찰이 전세사기 단속을 하고 있어서, 귀찮고 짜증나서 설 전에는 웬만하면 계약 안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상한 흔적들은 곳곳에 있었다. 면접 당일 오전까지만 해도 지도앱에서 '부동산컨설팅' 업체라고 조회되던 해당 업체는 반나절 만에 폐업됐다며 지도에서 사라졌다. 실제 해당 업체는 간판조차 달지 않았고, 온라인 상으로도 기업정보를 조회할 수 없었다. 업체명은 1~2년 새 C부동산에서 B하우징을 거쳐 A하우징주택으로 계속 바뀌었다. 업체 주소도 서울 D구에서 경기도 E시로 옮겨져 있었다.


이 팀장은 자신을 A하우징주택 팀장으로 소개했지만, 직원 교육자료에선 B하우징 CEO로 등장했다. CEO 경력 란에는 '○○대학교 출강', 주요 강의 분야에는 '영 앤 리치'가 적혀 있었다. 면접 자리에 동석한 신현기(가명) 토스실장도 자신만만하긴 마찬가지였다. 신 실장은 "달에 1000만 원도 번다"며 "나는 손님(바지사장)이 너무 많아서 버리고 있다"고 과시했다.

토스실장으로 일해봤다…바지사장이 10분 만에 넘어왔다


토스실장들이 모인 SNS 단체 대화방이 만들어졌다. 대화방을 통해 현재 검토 중인 바지사장 명단과 각종 매뉴얼을 전달 받았다. 투자자 모집글을 올릴 SNS 주소를 담은 텍스트 파일도,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려 글을 올리면 편하다는 팁도 전수받았다.

본격적으로 바지사장을 구해보기 시작했다. 이 팀장에게 전달받은 바지사장 구인공고 양식을 조금 다듬어 '급전, 대출, 투자'와 관련된 각종 SNS에 셀 수 없이 올렸다.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10분도 채 안돼서 39살 남성에게 "돈이 급하다"며 연락이 왔다. 직업은 없었고, 대출이 천만 원 가량 있다고 했다. 집은 없다고 했는데 명의를 건네는 것이 벌써 3번째라고 털어놨다.


"신용불량자도 가능하나요?" 28살 남성에게도 연락이 왔다. 직업이 없고 한 번씩 일용직으로 일하러 나간다는 이 남성은 "돈이 너무 급하다"며 수수료 지급을 독촉했다. 그 또한 명의대여가 3번째라고 밝혔다.

상담 이후 동료 토스실장 신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명의 대여를 몇차례씩 하는 사람들은 대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 거냐"고 묻자,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애들은 주로 토토, 도박하는 애들이고 갈 때까지 간 애들이야. 나중 일은 생각하지 않는 애들이지"

서울역 지하철 역사 안에 자리 잡은 노숙인들. 민소운 기자

기자는 직접 오프라인으로도 바지사장을 구하러 나섰다. 새벽 시간대 서울역 지하철 역사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소주를 마시던 3명의 노숙인 무리에게 전단지를 주며 투자를 제안했다. 처음엔 미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보던 이들은 이내 관심을 보였다. "오늘 당장 할게", "오늘 당장 돈 줘요?"라고 솔깃해 했다. 어떤 서류들이 필요한 지 물으며 쉽게 설명해달라고 했다. 무리 중 한명은 "그럼 우리 따뜻한 집에서 잘 수 있는 거냐"며 혹 하는 눈치였다.

'무자본 갭투자자 모집 홍보' 전단지. 민소운 기자

"오프라인에서 정 구하기 어려우면 사채업자들에게 가봐"

오프라인에서의 노하우는 따로 있었다. 이 팀장은 "사채업자들에게 '바지사장을 연결해주면 소개비를 준다'고 말해보라"고 조언했다. 빚을 진 사람에게 어떻게든 돈을 받아야 하니, 돈 빌린 사람들을 바지사장으로 잘 넘겨준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한 군데만 뚫으면 꾸준하게 바지사장이 들어올 것"이라고도 했다.


바지사장은 '사람'이 아닌 '물건'…"사기 공동정범, 부동산 실명법 위반"


A 업체는 바지사장, 즉 명의대여자를 '손님'으로 부르지만 업계에서 일반적으로는 '명자' 혹은 '물건'으로 지칭되곤 했다. B 컨설팅 업체에서 토스실장을 관리하는 한 담당자는 "확실하게 '명자'만 넘겨줘도 달에 1000만 원은 번다"며 "한 명만 걸려도 몇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토스실장은 '물건'만 토스하면 전혀 다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명의를 주고받는 이들은 대부분 '합법적인 투자'였다는 논리를 펼치곤 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명의를 넘긴 사람이 부동산 투자를 원해서 도움을 준 것이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도움을 준 것이고 거기에 대한 대가를 받은 거라고 말한다"고 밝혔다. 사기죄의 성립 요건인 '기망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내세우며 법망을 피해가려는 셈이다. 하지만 경찰은 "명의를 주고 받고 리베이트를 받는 것은 전세사기의 일종으로 '사기의 공동정범'으로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명의를 주고 받는 행위는 부동산실명법 위반에도 해당된다. 서울시복지재단 전가영 변호사는 "부동산실명법상 실권리자 명의 등기 의무 위반"이라고 밝혔다. 부동산실명법에 따르면 명의를 빌려준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 명의를 받은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전 변호사는 또 "전체적인 전세사기 범죄에 대해서 용인을 한 것이었다면 공범으로 들어가게 될 경우 굉장히 큰 처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 및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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