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전당대회 출마를 고심 중인 나경원 전 의원에 대한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친윤주류의 최근 십자포화 과정 중 하이라이트는 초선의원들의 규탄 연판장이었다. 17일 오후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의 나 전 의원 비판에 이어 2시간 만에 돌기 시작한 성명은 45명으로 시작해 다음 날인 18일 오전까지 50명을 채웠다. 관망하던 의원들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본의'를 언급한 나 전 의원의 발언을 참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끝까지 이름을 올리지 않은 의원들 명단이 '살생부'가 될 거란 살벌한 평가에, "이런 줄세우기는 처음 봤다"는 한탄 섞인 비판도 당 내에서 제기된다.
"대통령을 무능한 리더라고 모욕"했다며 나 전 의원을 규탄하고 대통령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초선의원 연판장에는 18일 오전까지 50명이 연서했다. 전날 오후 45명 참여로 시작된 연판장에는 장동혁·엄태영 선거관리위원도 있었다. 친한 의원들끼리 "여기 이름이 빠지면 안된다"고 연락해서 챙겨주는가 하면 "미처 연락을 못 받았다"며 추가로 연서한 의원들도 있다.
지지도 선두권을 잃지 않았던 나 전 의원이 전당대회 최대 변수다보니 의원들도 그동안 '너무 티 나는' 줄 서기는 지양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나 전 의원이 전날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직·기후환경 대사직 해임 결정을 두고 '대통령 본의가 아니'라고 한 부분이 상황을 바꿨다. "윤 대통령에 대한 존중 태도를 유지하면서 장제원 의원을 저격하는 '반윤핵관'까지는 의원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부분이 있었는데, 윤 대통령의 '본의'를 운운한 것은 나 전 의원이 지나쳤다는 판단이 있었다(국민의힘 관계자)"는 것이다.
이름을 올리지 않은 의원들은 초선 63명 중 13명뿐이다. 전당대회 선관위원이거나 지역 시당위원장이라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이 있거나 "이런 움직임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짐을 지우는 것"이라며 거부한 경우다. 김웅·허은아 의원처럼 일찌감치 '친이준석계'로 찍혀 연락조차 못받은 사례도 있다. 이들 의원들은 주위에서 "살생부나 마찬가진인데 괜찮겠냐"고 걱정하는 얘기를 듣고 있다고 한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도 "나 전 의원이 조금 원만한 처신을 해줘서 그런 집단 문제 제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초선의원들 손을 들어줬다.
연서하지 않은 한 초선의원은 "나 전 의원의 발언에 문제가 있었다는 건 알지만, 이런 식으로 줄세우기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 참여하지 않았다"며 "다른 의원들도 관망만 하다가는 나 전 의원을 편드는 것으로 보일까 연서한 것이라 생각해,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름을 올린 의원들 중에서는 "공천을 앞두고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어떻게 보일지 알지 않냐"며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 연판장이 내년 총선 공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말이 돌 정도다.
원내대표를 지낸 4선 중진의 여당 의원에게 '정치적 사기', '위선' 등의 단어를 동원한 비난을 쏟아낸 것이 "선수와 예절을 중시하는 보수정당에서는 매우 드문 사례"라는 얘기도 당내에서 조심스럽게 나온다. 무엇보다 100% 당원투표로 진행되는 전당대회만 생각하고 차기 총선은 고려하지 않는 처사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의원은 "대통령을 건드렸다는 게 초선들 80%가 들고 일어날 일인가. 국민들이 어떻게 볼 지, 내년 총선은 어떻게 치를지는 왜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도부부터 초선의원들까지 국민의힘 전체가 십자포화에 나서는 상황에서, 나 전 의원은 당분간 침묵모드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나 전 의원은 이날 공식일정은 없었지만 '국민특보단 포럼 신년교례회'에 보낸 축사를 통해 "국민의힘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공정하고 정의로운 공천 방향에 대해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앞으로도 구심점이 되어 당과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힘써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밝히는 등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지 않겠다는 점을 거듭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