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 듣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견해였다. "우리의 형제 국가인 UAE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말이다. 윤 대통령은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라고 덧붙였다.
UAE의 안보가 바로 우리 안보문제라고 생각했던 국민이 단 한명이라도 있었을까. UAE와 사우디아리아가 석유부국이라 돈이 많고 우리 기업들이 중동특수를 누려야 한다는 소망과 기대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중동의 한 국가 안보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안보"라는 말을 '뜨악하다'라는 표현 말고 달리 무슨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얼마전 전 세계 부호 1위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살만 지도자가 내한해서 우리 대기업 회장들을 한꺼번에 불렀다. 언론은 거의 '면접장' 같았다고 기사를 여럿 쏟아냈다. 몇 시간 전에 코로나 사전 검사하고, 휴대폰 반납하고, 빈 살만 지도자 앞에 이재용 회장을 필두로 대기업 회장들이 오른편으로 정렬해 앉아 있는 사진이 공개됐다. 빈 살만은 차례로 대기업 회장들에게 물어봤다. "그래서 당신들은 (사우디에서) 무슨 사업을 하고 싶나?"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우리에게 특수 이해관계 국가라는 사실은 양해하겠다.
윤 대통령은 왜 우리 군 특수부대 앞에서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얘기했을까. 이것이 "UAE가 한국과 형제국가"라는 말과 겹치면 대통령 발언은 대단히 폭발적이다. 취지에 따라서는 한국과 이란은 '적'이라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이란이 '대적 관계"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 국민 중 이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발언은 실언 중의 실언이라 할 수 밖에 없다.
한국과 UAE의 관계가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국가관계 틀에 있지 않다는 점은 여러 번 논란이 되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초기, 송영무 당시 국방장관이 UAE를 방문했다가 사달이 터졌다. 송 장관이 비공개 군사협약을 바꾸자고 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UAE 왕실은 대노(?)해서 한국과 모든 관계를 끊겠다고 위협해왔다. 문재인 정부 외교실에서는 난리가 났다. 긴급히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UAE로 날아가고 사태를 수습하느라 혼돈이 일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UAE와 우리나라 간 '비밀 군사협정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MB정부 때 체결한 것이었다.
비밀 군사협정 내용은 아직까지 모조리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가 바라카 원전을 프랑스를 물리치고 수주하는 대신, 'UAE에 군사적 어려움이 있을 때 한국군이 UAE에 와 주는 거였다. 평소엔 한국 특수부대가 UAE군의 훈련을 돕거나 무기를 관리하는 역할도 맡는다. 만약 UAE가 전쟁 상황에 빠진다면 한국군을 사막의 모래바람 국가에 우리 군을 파견하는 충격적 내용이었다. 한미동맹과 같은 수준의 것이다. 이런 중대한 협정을 맺고도 국방의 의무를 짊어진 우리 국민들은 전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문제는 UAE 유사시 한국군의 자동개입은 국회의 비준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파병이기 때문에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 조약을 비밀리에 맺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지만, 실질적으로 'UAE에서 설마 전쟁이 나겠느냐'라는 생각과 '오일 달러'가 우선이라 생각하는지 더 이상 논란은 커지지 않았다.
UAE와 비밀군사협약 체결 얘기는 황당한 것이었다. 원전 수출을 하면서 이면 계약이라 하지만,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할 '비밀 동맹'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 외교가에서는 '한국군이 UAE에서 사실상 왕실 친위대 역할을 하기로 했다'는 해석까지 나돌았다.
UAE와의 이런 불투명한 특수 관계는 MB정부 때부터 십 수년간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파문을 국제사회에 또 던진 것이다. 이란이 대한민국의 적이라는 십상 오해를 줄 수 있는 크나 큰 실언이다. 장삼이사들조차 개인 간 관계에서 제 3자를 거론하는 일을 무척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에 대한민국의 안전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란이라는 국가를 '적'처럼 떠올리도록 한 것은 중대한 실수이고 유감 표명을 해야 할 사안이다. 또 대통령실은 '바이든, 날리면~' 사건 때처럼 유야무야 식으로 넘기고 있다.
외교관들은 외교무대에서 제 3국을 거론할 수 있는 국가는 지구상 단 한 나라만 존재한다는 얘기를 농반진반처럼 한다. 미국 말고 그런 얘기를 함부로 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대통령의 신중치 못한 언행이 불러올 파장이 염려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