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검사출신 처장님, 분란은 누가 일으켰나요?

평통, 국회 외통위 현안질의 대상에 올라
석동현 처장의 평통 운영 놓고 여야공방
석동현 "미주 부의장의 분란 때문" 이라지만…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왼쪽부터), 조현동 외교부 1차관, 김기웅 통일부 차관이 지난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본말전도(本末顚倒).
 
17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질의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이날 4시간 넘게 이어진 전체회의에서는 외교부, 통일부 차관 외에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 사무처장에 대한 질의가 쏟아졌다.
 
평통 처장이 국회 상임위에서 이렇게 질의 공세를 받은 일은 매우 드물다. 
 
이날 여야 의원 7명(우상호, 황희, 김석기, 윤재옥, 김경협, 태영호, 김상희)이 평통 미주지역 최광철 부의장의 직무정지의 적절성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석 처장은 최 부의장의 직무를 정지시킨 이후 최 부의장 및 많은 미주동포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최 부의장은 석 처장에 대해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형사 고소한다는 계획이다.
 
다른 미주동포들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18일 대한민국 사법기관에 고발장을 제출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이날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석 처장은 최 부의장이 미주지역 평통협의회 내부에서 분란과 갈등을 일으켜 직무를 정지시켰다고 반복적으로 해명했다.
 
그러나 기자가 지난 3년간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미주지역 평통을 취재해온 바로는 석 처장이 말한 분란과 갈등은 적어도 석 처장이 취임하기 전에는 없었다.
 
대부분의 미주지역 협의회장들, 운영위원들, 자문위원들은 적극적이고 왕성하게 활동한 최 부의장을 높이 평가했다. 
 
평통 안팎의 여론은 역대 부의장 가운데 최 부의장만큼 조국의 평화를 위해 헌신적이고 열성적으로 활동한 사람을 보지를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석동현 민주평통 사무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대통령실 제공

그러나 검사 출신 석 처장이 취임한 이후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먼저 평통 '내부 물갈이' 소문이 돌았다.
 
석 처장 본인도 "그런 일은 없다"며 통일부 출입기자들에게 공언도 했지만 어느 지역 협의회장이 누구로 교체될 거라는 등 구체적인 이름까지 현지에 나돌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워싱턴DC에서 대규모 '평화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 행사는 최 부의장이 별도로 대표를 맡고 있는 한인유권자 단체인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이 주최한 것으로, 정권이 바뀌기 전인 작년 초부터 준비돼 왔다.
 
미국 유권자들인 한국계 미국인들이 그들의 지역구 대표인 연방 의원들에게 한반도 평화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유권자 운동이었다. 
 
우리 국회의원 3명이 국회의장 승인을 얻어 공식참여하고, 미국 의회 의원 12명이 함께한 이 행사가 끝나자 평통 사무처가 참석자들의 뒷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이 아닌 종전선언을 '평화 컨퍼런스'에서 주장했다는 이유에서다.
 
최광철 민주평통 미주역회의 부의장. 민주평통 제공

최 부의장이 거칠게 항의했다.
 
최 부의장과 석 처장 간에 갈등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부 미주지역 평통 협회장들이 주도해 입장문을 냈다.
 
주도자들 가운데는 문재인 정부시절 미주지역 부의장 자리를 놓고 최 부의장과 경쟁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도 포함됐다.
 
협회장들은 입장문에서 두 사람간 갈등이 '평화 컨퍼런스' 때문이라고 명확하게 적시했다.
 
다만 '양자간의 갈등으로 협회장들이 불편하다, 앞으로 KAPAC 행사에 협회장들이 관여하지 않도록 해 달라, KAPAC 대표와 평통 부의장 가운데 하나만 맡아라'고 최 부의장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이들 협회장 자신들 역시 대부분 특정 단체 대표를 겸직중이다.
 
특히 일부 협회장들은 다름아닌 KAPAC 지역 대표도 겸직해왔다.
 
물론 최 부의장이 평통 관계자들에게 '평화 컨퍼런스' 참여를 독려한 것은 맞다.
 
그러나 평통 부의장으로서 민간이 주최한 '평화통일'행사에 '평화통일' 관련 활동을 하도록 한 평통 관계자들의 참여를 독려하지 않았다면 그 것이야말로 직무유기일 수 있다.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연합뉴스

석 처장도 이날 "윤석열 대통령이 평화통일에 반대해서 평화 컨퍼런스 참석을 문제 삼았냐"는 민주당 김경협 의원의 지적에 대해 "아니다"고 인정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석 처장이 행사를 문제 삼은 것은 평화 컨퍼런스 행사에 대해 미주지역 한인 단체들이 집단 탄원을 제기한 때문"이라고 엄호했다.
 
사무처에 접수된 당시 탄원에는 112개 보수 단체들이 이름을 올렸다고한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255만명이 살고 있는 미국에는 수 천개의 한인 단체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112개를 제외한 수 천개의 단체들은 평화 컨퍼런스를 문제 삼지 않았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더욱이 그들 보수 단체들의 문제제기는 논리적으로도 근거가 없다. 
 
해당 행사는 평통이 '주관'도 '주최'도 '후원'도 하지 않은 명백히 평통과 무관한 민간 행사였다. 
 
이 행사가 평통과 무관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은 미주지역 평통협의회의 지난해 5월 공식 회의에서도 명확히 한 바 있다.
 
다시말해 탄원 자체가 사실관계를 모르고 제기된 것이다
 
그런데도 석 처장은 이날 보수 단체의 탄원까지도 마치 평통 '내부' 분란인 것처럼 대답했다.
 
이날 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평통은 대통령의 정책을 홍보하는 조직이 아니고, 생각이 다른 국민들의 의견을 모아 대통령에게 평화통일 관련 자문을 하는 기관인데, 석 처장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찍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 동안 국회에서 평통 운영과 관련해 수 차례 약속을 했지만 지키지 않고 오히려 거짓말까지 해 온 만큼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석 처장의 논리대로라면 평통을 외통위의 전체 회의 현안 질의 대상으로 만들 정도로 분란을 일으킨 석 처장이야말로 직무 정지를 당해야하지 않을까?

미주지역 20개 협의회장이 12월 11일 채택한 입장문. 최광철 미주부의장 직무정지 근거로 제시됐지만 입장문 어디에도 직무정지 건의 내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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