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사실상 '출마선언'만 제외한 당권행보에 돌입했다. 보수의 심장 대구를 찾아 보폭을 넓히면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성공을 강조하고 '윤핵관'을 향한 반대 메시지를 분명하는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17일 대통령실의 조준 저격에 이어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이 비판 성명을 통해 십자포화를 쏟으면서 나 전 의원의 '비윤' 프레임 탈피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오전 대구 동화사를 찾아 회주스님인 인현스님과 차담을 갖고 "대한민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사명에 대해 깊이 고심하겠다"고 했다. 이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전당대회 출마 여부에 대해 "이제 마음의 결심은 거의 섰다"며 출마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동화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당선인 시절에 찾았던 사찰로, 지난 10일 충북 구인사를 방문한 데 이어 연달아 윤 대통령의 발자취를 따라간 것이다. 친윤계의 '비윤' 프레임에 맞서 자신이 '친윤'임을 강조하는 행보로 풀이된다.
본인의 '친윤' 정체성 강조와 동시에 나 전 의원이 발신하는 메시지는 '반윤핵관'이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자신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해임에 "대통령의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국민과 대통령을 이간하는 당대표가 아닌 국민의 뜻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일부 참모의 왜곡된 보고를 시정하는 당대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대통령실에서 김대기 비서실장 명의로 "해임은 대통령의 정확한 진상 파악에 따른 결정"이라고 반박하고, 초선의원들이 "대통령이 악질적인 참모들에 둘러싸여 옥석구분도 못하는 무능한 지도자로 보이는 거냐"며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면서 나 전 의원의 입지는 좁아지는 모양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윤핵관에게 휘둘리는 듯한 인상을 주는 나 전 의원의 발언에 격노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 전 의원 측은 CBS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계속 두들겨 맞고 그냥 있어야지, 의견을 내면 또 다른 말이 나오고 그러니까 입장을 따로 밝힐 것도 없다"며 출마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의 '반윤핵관' 메시지가 대신 가닿는 곳은 대통령실이 아닌 다른 당권주자들이다. "김기현 후보를 찍으면 장제원 의원이 다 하는 거 아니냐(안철수 캠프 김영우 선거대책위원장)", "윤심, 장심이 아니라 당심과 같이 가겠다(윤상현 의원)"는 당권주자들의 동조가 이어지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도 '장제원 사무총장론'으로 지원사격에 나섰다. 이들의 집중공격을 받고 있는 '윤핵관' 장제원 의원은 이틀째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장 의원과 가까운 박수영 의원이 "대통령을 향한 내부 총질이고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여기는 말"이라며 대신 목소리를 냈을 뿐이다.
장 의원의 침묵과 연동되는 것은 김기현 의원의 '김장연대 지우기'다. 연일 장 의원과의 연대를 강조하며 '윤심'을 내세웠던 김 의원은 최근 "김장연대라는 말은 이미 철 지난 것으로, 그런 용어는 안 써주셨으면 좋겠다"며 관련 언급을 삼가고 있다. 당내에서는 "김 의원이 장 의원에게 직접 자중을 요청했고 장 의원이 불쾌해했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지난 주말 장 의원이 연일 나 의원을 수위 높게 공격하며 계파논란이 다시 불거진 것이 직접 당권주자로 뛰고 있는 김 의원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국민의힘 이재오 상임고문은 이날 인터뷰에서 "김기현은 안 보이고 장제원만 설쳐버리니까, 김기현이 되면 저 사람이 당을 말아먹겠구나 이런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져 버린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도 '윤핵관 리스크'의 현실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밑으로 떨어진 것도 장 의원을 필두로 한 당 내홍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진윤감별사 이야기가 나오는 마당에 장제원 의원이 전면으로 나설수록 김기현 의원은 물론이고 대통령에도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지난해 장 의원이 행정안전위원장 선거에서 다른 위원장 후보를 한참 밑도는 55%를 득표한 것도 사실 당내 이탈표가 상당부분 있었던 것"이라며 "정말 당을 위한다면 자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