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7위에서 올 시즌 2위로 명가의 자존심을 어느 정도 회복한 프로배구 남자부 현대캐피탈. 특히 세터 이현승(22·190cm)이 신인답지 않게 선배들의 공격을 조율하고 있다.
이현승은 '도드람 2022-2023 V리그'에서 세트 순위에서 전체 5위에 올라 있다. 비록 10경기로 출전이 많지 않았지만 세트당 9.18개로 당당히 다른 팀 주전 세터들과 겨루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이현승을 뽑았다. 명세터 출신 최태웅 감독이 팀의 리빌딩 중책을 맡을 적임자로 한양대 3학년 이현승을 선택했다.
이현승은 지난 7일 1위 대한항공과 원정에서 주전 세터로 나와 접전을 이끌었다. 비디오 판독 번복 논란 속에 팀은 2 대 3으로 졌지만 이현승은 41개의 세트를 기록하며 최고 세터 한선수(53세트)와 크게 밀리지 않는 경기를 펼쳤다.
이후 이현승은 12일 충남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KB손해보험과 홈 경기에도 선발 출전했다. 다만 2세트까지 중간에 김명관과 교체된 가운데 3, 4세트에는 나서지 않았다. 이날 이현승이 10개, 김명관이 31개의 세트를 기록한 가운데 현대캐피탈이 3 대 1로 이겼다.
최 감독의 애정이 담긴 조치였다. 경기 후 최 감독은 "경험이 적고 어린 선수들이 시즌 초반 잘할 때가 있는데 상대에 분석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이현승도 상승세를 타다가 (분석돼서) 브레이크가 걸리면 어리다 보니 어려움을 겪고 자신감이 떨어질 수가 있다"고 밝혔다.
"현승이가 약간 그런 거 같기도 했고, 기량 부족이라기보다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 교체했다"는 설명이다. 최 감독은 "경기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면서 "경기를 더 뛰는 것보다 쉬면서 밖에서 팀의 색깔, 형들의 움직임 보면서 다시 팀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덧붙였다.
현대캐피탈은 이날 승리로 승점 40(13승 7패) 고지를 밟았다. 1위 대한항공(승점 52)과는 격차가 상당하다. 최 감독은 "대한항공과 우승 다툰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위치"라면서도 "현승이가 기량은 부족하지 않지만 경험이 적은 21살로 흔들릴 수 있지만 마지막에 승부를 봐야 할 때 힘을 보태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특히 최 감독은 이현승이 조금 더 활발하게 동료들과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최 감독은 "우리 팀 세터들이 저렇게 해도 되나 할 정도로 휠씬 더 까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 시절 나는 막내라서 엄청 까불다 혼나서 못했는데 그때 못 해본 걸 우리 선수들에게 한번 해보게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서 "세터가 그랬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본인이 갖고 있는 능력치를 까불면서도 진지하게 발산하고 뽑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한 일화도 들려줬다. 최 감독은 "지난달 31일 KB손해보험과 경기에서 홍동선이 잘 해서 격려의 의미로 두 손으로 쌍권총을 날려줬다"면서 "그랬더니 동선이가 나한테 주먹 감자를 날리더라"며 웃었다. 홍동선은 지난 시즌 전체 1순위로 입단한 2년차다. 최 감독은 "동선이처럼 현승이나 명관이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다.
까분다는 의미에 대해 최 감독은 "팀에 활력을 주고 분위기가 좋아지는 데다 선수들의 창의력도 나온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도자가 없을 때 선수들끼리 훈련하면서 장난스럽게 하는 것들을 원한다"면서 "물론 혼날 경우가 많고 제재를 당하지만 나는 그런 걸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최 감독은 배구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는 자세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면서도 최근 젊은 선수들과 소통하려 하는 등 변화하는 모습도 보인다. 과연 이현승이 최 감독이 원하는 '창의적인 까불이'로 재탄생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