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대장동 개발 수익 275억원을 은닉하는 과정에서 변호인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김씨는 교도관 감시를 피하기 위해 변호인 접견을 통해 측근들에게 은닉 재산의 현황과 용처, 보관장소 등을 보고받고 부동산과 사채에 투자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이렇듯 변호인들이 사실상 범죄 행위의 '조력자' 역할을 한 셈인데, 검찰은 김씨 측근들의 공소사실에 이런 사실 관계를 담았다.
13일 CBS노컷뉴스가 확보한 화천대유 이한성 공동대표와 최우향 이사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 공소장을 보면, 김씨는 대장동 비리 혐의로 2021년 11월 구속된 이후에도 변호인을 통해 은닉한 범죄수익 관련 내용들을 지속적으로 보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두 사람은 김씨 지시를 받아 2021년 11월~2022년 11월 총 5차례에 걸쳐 대장동 범죄 수익 275억원을 빼돌려 숨긴 혐의로 지난 2일 구속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와 최씨 등은 변호인을 통해 김씨에게 자신들이 은닉한 범죄수익의 현황을 보고하고, 다시 김씨의 지시를 받아 숨긴 돈을 관리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은 김씨가 2021년 11월 14일 구속된 이후에는 접견 내용이 녹음되지 않고 서류 열람이나 필기가 가능한 변호인 접견을 이용해 자금관리 내용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씨와 최씨 등은 범죄수익을 빼돌리면서 김씨의 형사 변호인이나 화천대유 자문 변호사 등으로부터 자문을 받아 이사회 의사록이나 주주총회 의사록 등 관련 서류를 구비했다. 화천대유나 천화동인 법인자금을 인출한 것이 회계적으로 문제 없이 적법한 자금 집행처럼 보이도록 꾸민 것이다.
특히 김씨는 2021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형사 변호인을 통해 이씨 등에게 범죄수익을 이용해 부동산과 사채에 투자해 추가 수익을 창출하라고 수차례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이씨는 추후 형사처벌을 염려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추가 수익 창출 방안을 모색했다고 한다. 최씨는 자신이 은닉한 자금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고리로 빌려주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김씨는 범죄수익의 잔고와 사용처, 보관 주체, 관리 방법 등이 담긴 '자금관련 보고서'를 변호인을 통해 전달받기도 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김씨가 은닉한 재산을 마지막까지 철저히 지키겠다'는 취지의 말이 담겼다. 측근들은 김씨의 은닉 자금을 '마지막 생명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렇듯 김씨가 옥중에서 범죄수익 은닉뿐 아니라 나아가 자금 운용까지 세세히 개입하고 지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간에서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낸 변호인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지난달 13일 김씨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의 사무실과 변호사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했었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수익 은닉과 관련해 필요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태평양 압수수색 진행했고, (그와 관련된) 필요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대장동 일당이 거둔 범죄 수익이 총 7886억원에 이르고, 이중 화천대유자산관리와 천화동인 1~3호의 수익금 2386억원을 김씨 몫으로 보고 그가 보유한 경기도 판교 타운하우스 등 1천억원 규모의 자산을 동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