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기]위상 추락한 골든글로브의 선택, '다양성'

지난해 보이콧으로 파행됐던 골든글로브, 올해 배우들 참석하고 NBC도 다시 생중계
아시아계·아프리카계 등 '비(非)백인' 배우·영화인 대거 수상
비영어권 작품상에 독재 다룬 작품에게 수여…우크라이나 대통령 영상 메시지도 중계
인종차별 등 오랜 보수성·폐쇄성에 부패까지 드러나며 할리우드로부터 외면받아
대대적인 비판 이후 흑인 등 유색인종 끌어안으며 '개혁' 의지 보여
외신들, 골든글로브의 '다양성' 주목
여우주연상 수상 홍콩 배우 양자경 "모든 소수 인종 배우에 영광 바치겠다"

UPI-연합뉴스·AP-연합뉴스·HFPA 제공/제작=최영주 기자
'그들만의 리그'로 불리며 할리우드 내 대대적인 비판과 보이콧을 불러일으켰던 골든글로브가 추락한 위상을 다시 세우기 위해 한 선택의 결과는 '다양성'이었다.
 
지난 10일(현지 시간) 제8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아시아계와 흑인 등은 '비(非)백인' 배우와 영화인이 영화와 TV 부문에서 주요 상을 대거 휩쓸었다.
 
지난해 중계 방송사 및 대형 미디어사와 배우들의 보이콧으로 파행을 겪은 후 재개된 시상식에서 골든글로브는 달라진 면을 보였다. 바로 '다양성'을 선택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할리우드는 물론 전 세계 영화인들은 지난 과오에 대한 골든글로브의 책임이자 진짜 개혁의 시작점이 되길 바라고 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제80회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은 베트남계 미국 배우 키 호이 콴. 로이터-연합뉴스
 

비백인 배우들 대거 수상…사회적인 이슈까지 끌어안는 행보 보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열연을 펼친 홍콩 배우 양자경과 베트남계 미국 배우 키 호이 콴은 나란히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주·조연상을 받았다. 또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라몬다 여왕 역 안젤라 바셋은 생애 두 번째 골든글로브이자 MCU(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비영어권 작품상 후보로도 올랐던 'RRR-라이즈 로어 리볼트'의 음악 '나투나투'(Naatu Naatu)의 작곡가 MM 키라바니는 주제가상을 받는 등 비백인 영화인들이 골든글로브를 들어 올렸다.
 
이 밖에도 올해 비백인 배우들이 호스트로 무대에 오르는가 하면, 골든글로브의 인종차별적인 행태를 꼬집는 발언들을 하며 우회적으로 지난날의 골든글로브를 비판했다. 또한 비영어권 작품상은 군부 독재 정권 단죄의 역사를 그린 '아르헨티나, 1985'에 주어졌고, 해당 부문 수상 직후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영상으로 등장시키며 골든글로브가 사회적인 이슈까지 끌어안고 갈 것임을 암시했다.

HFPA 제공
 

보수성·폐쇄성에 부패까지 드러나며 추락했던 '골든글로브'

 
보수성과 폐쇄성으로 꾸준히 비판받으며 '그들만의 리그'라는 조롱 섞인 수식어를 달았던 골든글로브가 본격적인 추락을 시작한 건 다양성을 찾아보기 힘든 회원 구성과 내부 부패가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드러난 후부터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HFPA에 흑인 회원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비난이 쇄도한 가운데, HFPA가 2019년부터 2020년까지 회원들에게 약 200만 달러(한화 약 24억 원)를 전달하고 파라마운트사 협찬을 받아 호화 여행을 떠났던 사실이 밝혀지며 대대적인 비난에 직면했다.
 
이러한 행태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보수성과 폐쇄성을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대대적인 보이콧으로 이어졌다. 당장 지난해까지만 해도 골든글로브는 할리우드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으며 끝없는 추락을 거듭했고, 여론의 질타를 한 몸에 받았다. 이에 79회 시상식은 초라하게 막을 내리기도 했다.
 
HFPA 제공
올해는 생중계가 이뤄졌지만, 지난해만 해도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중계해 온 NBC는 중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이에 골든글로브 후보 발표 역시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100개 이상 홍보사가 골든글로브와의 협력을 철회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은 물론, 넷플릭스를 비롯한 아마존 스튜디오, 워너 미디어 등 대형 미디어사들은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가 혁신하기 전까지 시상식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등 골든글로브와 철저하게 선을 그었다.
 
이러한 보이콧 움직임은 배우들로도 이어졌다. 톰 크루즈는 '7월 4일생' '제리 맥과이어' '매그놀리아'로 받은 3개의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HFPA에 반납했고, 스칼렛 요한슨과 마크 러팔로는 HFPA의 차별적인 모습을 비판하며 HFPA에 변화를 촉구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제80회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홍콩 배우 양자경. AFP-연합뉴스
 

'다양성'·'사회성' 선택한 HFPA…앞으로의 개혁 움직임 주목해야

 
이처럼 80여 년 역사를 자랑하던 골든글로브가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며 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고 존폐 위기까지 거론되며 결국 모두가 외쳤던 '혁신'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보이콧이 이어진 후 HFPA는 6명의 흑인 회원을 포함한 다양한 인종 구성의 새 회원을 추가했다. 그리고 혁신의 증거로 이번 80회 시상식에서 비백인 배우 및 영화인에게 골든글로브를 안겨주며 '다양성'을 안고 갈 것임을 천명했다.
 
이번 시상식을 두고 외신들은 HFPA가 다양성을 가져가며 '개혁'을 말하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CNN은 "HFPA는 2021년 문제가 터졌을 때 대중의 비판에 다양한 개혁을 시행함으로써 대응했다"며 "할리우드는 골든글로브가 오스카 레이스에 이점이 되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시상식을 다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BBC 역시 "HFPA가 다양성 부족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며 지난해 시상식을 쉰 후 다시 TV 황금시간대로 돌아왔다"며 "올해 HFPA는 다양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선된 형식을 선보였다"고 했다.
 
80여 년간 쌓아온 그들만의 리그 역사는 80회 시상식 단 한 차례로 허물 수는 없다. 그렇기에 할리우드는 앞으로 HFPA의 행보를 예의주시할 것이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양자경은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놀라운 여정이자 엄청난 투쟁이었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수상 소감과 함께 할리우드 유색 인종 동료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그의 수상 소감에는 골든글로브의 지난날 과오와 앞으로의 길이 담겼다. 양자경은 골든글로브 차별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처음 할리우드에 왔을 때를 기억합니다. 그때는 꿈이 이뤄진 것 같았지만, 전 이곳에 와서 '넌 소수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를 이 자리에 있게끔 해 준 모든 분, 저처럼 소수 인종으로 할리우드에 온 선배 배우들과 앞으로 저와 함께 이 여정을 함께할 모든 이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_배우 양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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