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연금 개혁 논의가 발 빠르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달 말 안에 재정 추계를 발표하면 국회는 4월까지 개혁 초안을, 정부는 10월까지 국회안을 보강해 종합안을 내놓을 예정인데요. 연금개혁의 시간표부터 개혁의 범위, 한계까지 알기 쉽게 정리했습니다.
연금개혁, 언제 시작되나요
국민연금 논의를 앞당긴 건 관련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당초 올해 3월 발표 예정이던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두 달 빠른 시점인 이달 말 발표하기로 하면서입니다. 재정추계란 국민연금의 재정 상태가 어떤지 추정해 점검하는 작업인데요. 국민연금법에 따라 2003년부터 5년 단위로 복지부가 실시하도록 의무화돼있고 현재는 5차 재정추계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본래 3월로 예정됐던 재정추계 발표 시점이 당겨진 이유를 복지부는 국회에서 마련할 개혁안 논의와 발을 맞추고 또 지원하고자 하는 차원으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국민연금이 언제쯤 고갈될 지 현 '곳간 상태'에 대한 수치가 나와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 입장에서는 이에 기반해 개혁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위해 지난해 7월 출범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 특위)의 임기는 올해 4월 말까지입니다. 물론 연장은 가능하다지만 원칙적으로 임기 안에 성과를 내야 하는 만큼 큰 변수가 없는 한 임기 마지막 달인 4월까지는 개혁안 초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국민 여론수렴 절차도 개혁안 발표 전 거쳐야 하는 만큼 늦어도 1월 말까지는 재정추계가 발표돼야 한다는 게 국회 특위, 그리고 복지부의 입장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복지부는 국회 논의와 별개로 국민연금법에 따라 재정추계를 기반으로 재정 전망과 연금보험료 조정 등 내용이 포함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수립해 10월 말까지 대통령 승인을 거쳐 국회에 제출해야 합니다. 국회와 정부(복지부)의 상호 협조 아래 논의가 이뤄지는 만큼 국회의 개혁안이 초안격이 될 것이고, 여기서 논의가 미처 이뤄지지 못한 부분과 세부 수치 등을 정부가 보완하는 방식으로 종합운영계획이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계획된 주요 일정을 시간표로 정리하면 1월 재정추계 발표(복지부)→4월 개혁안 발표(국회)→10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 발표(복지부) 및 국회 보고와 대통령 승인 순이 되겠습니다. 올해 안에 최소한의 개혁 결과 발표가 이뤄진다는 뜻인데요. 이 과정 중간 중간 여론조사를 비롯해, 전문가 포럼, 청년‧기업인 심층면접 등 국민연금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도 있습니다.
연금개혁, 무엇이 바뀌나요
타임 테이블보다 더 궁금한 건 국민연금 개혁의 내용과 방향인데요. 아직 재정추계 결과가 나오지 않아 정확한 방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지난 3일 연금 특위 소속 민간자문위원회가 국회에 보고한 '연금개혁 방향과 과제'에서 어느 정도 큰 흐름은 엿볼 수 있겠습니다.
우선 국회 차원에서 먼저 추진되는 개혁은 모수개혁으로 방향이 잡히는 모습입니다. 연금개혁은 크게 '모수개혁'과 '구조개혁' 이렇게 개념적으로 구분하는데요. 모수개혁은 국민연금의 체제를 유지하며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쉽게 말하면 얼마나 내고 얼마나 받을 지 결정하는 개혁을 뜻합니다.
이중에서 보험료율 인상, 즉 '더 내는' 개혁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입니다. 김연명 자문위 공동위원장의 말에서 알 수 있는데요. 그는 "급여수준을 그대로 두되 보험료를 인상하자는 측과 소득대체율을 인상하고 그에 맞는 보험료율을 인상하자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이 두 안을 병렬적으로 제시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됐던 보험료율은 인상하겠다는 뜻인데요. 그 원인은 매년 극심해지고 있는 저출산 그리고 고령화로 인한 연금 재정의 악화에 있습니다.
앞선 재정추계, 즉 2018년 4차 재정추계 때는 현행 보험료율 등을 기준으로 하면 국민연금 재정이 2057년 무렵 고갈될 것으로 나왔는데 곧 발표될 재정추계는 소진 시기가 이보다도 1년 당겨진 2056년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출산율 증대를 위해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당분간 저출산 기조가 예상돼 현행 보험료율 수준으로는 재정 감당이 어렵다는 게 연금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18.2%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얼마나 올릴지, 속도는 어떨지는 여전히 미지수인데요. 이기일 복지부 제1차관이 연금개혁을 진행한 일본을 방문한 뒤 시사점 중 하나로 '점진적인 보험료율 인상'을 꼽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비슷한 흐름을 따라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일본의 경우는 2004년 무렵까지 연금 보험률이 약 14%였다가 해마다 0.354%씩 13년간 인상하며 2017년에는 18.3%까지 올린 상황입니다.
반면 위의 김 위원장의 언급처럼 소득대체율 인상, 즉 '더 내는 개혁'을 두고는 여전히 의견 차이가 있어 방향조차 쉽게 잡히지 않는 모양새인데요. 자문위 소속 한 위원은 취재진에게 "보험료 인상은 공감대가 모두 있지만 소득대체율 인상은 양쪽 서로 다른 의견이 병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밖에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연령과 국민연금에 의무 가입하는 연령 상한 또한, 기대수명이 올라가는 만큼 맞춰 높일 필요도 언급됩니다.
연금개혁,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이처럼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지만 한계로 언급되는 사안도 적지 않은데요. 대표적으로 '더 낼 게 뻔한데 소득대체율 인상을 비롯한 '더 받는' 개혁 논의는 소극적이라는 비판입니다. 국민연금 제도의 본질이 국민 노후 보장에 있는데 현재 국민연금 수급자의 60%는 고작 월 40만원 미만의 급여를 수령하고 있는데다 평균 연금 수급액도 48만원 수준에 그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죠.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명목 상 올해 기준 42.5%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의 미성숙 등으로 지난해 기준 31.2% 수준에 머물고 있어 OECD 평균인 51.8%에 한참 못 미치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2007년 국회 합의로 명목 상 소득대체율은 매년 0.5%씩 낮아져 5년 뒤인 2028년에는 40%까지 떨어질 예정입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자문위의 특위 보고 후 보도자료를 통해 "2030년~2050년 사이 연금을 받게 되는 미래 신규 수급자의 경우, 기존 수급자보다 소득대체율이 낮은 최초의 세대가 된다"며 "이처럼 삭감된 소득대체율의 영향을 받는 청년층에게 국민연금은 용돈연금도 아닌 푼돈연금이 될 우려가 크기때문에 청년세대의 존엄한 노후를 위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소득대체율 인상보다는 차라리 현재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보편지급하는 등 방식 도입이 효과적이라는 의견부터 국민연금 대상 폭을 더욱 확대하자는 의견 등도 이러한 노후소득보장 차원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또한, 연금개혁 논의가 현재로서는 '모수개혁'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구조개혁은 더 넓은 차원의 개혁으로 말 그대로 연금체계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별정우체국연금 등 4대 직역연금의 통합입니다.
우선 자문위는 4월까지 개혁안을 마련해야 하는 만큼 연금통합 등 구조개혁을 당장 논의 테이블에 올리기는 어렵다는 입장인데요. 당장 직역연금 일부는 이미 기금이 고갈돼 국고로 지원받고 있어 하루빨리 통합 논의 등 대안 마련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물론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 수치를 조정하는 구조개혁보다 더 어려운 개혁이지만 그만큼 논의와 공론화가 필요한 데 발조차 떼지 못한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