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공소장에서 서 전 실장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은폐하려 했지만, 피격 및 시신 소각 보도가 나오자 '월북 몰이'로 방향을 틀었다고 적시했다. 검찰은 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서해 피격과 관련한 보고를 받지 못했으며, 서 전 실장을 '최종 결재권자'로 봤다.
10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117쪽 분량의 공소장에는 2020년 9월 22일 서해상에서 숨진 고(故) 이대준씨의 실종 및 피격·소각 첩보가 들어온 시점부터 서 전 실장의 지시 상황 등이 시간 순서에 따라 구체적으로 담겼다. 검찰은 기본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서 전 실장 주도로 은폐를 시도했다가, 언론 보도를 통해 관련 내용이 보도되자 '월북 몰이'로 방향을 바꿨다고 보고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씨는 2020년 9월 21일 새벽 1시 36분부터 11시 30분 사이 해상에서 실종됐다. 서 전 실장은 이날 오후부터 이튿날 오전까지 국가안보실 국가위기관리센터장으로부터 수색 상황을 공유 받았다. 그러나 서 전 실장은 이씨가 남측 사람인 것을 인지한 북한 관계자가 이씨를 구조했는지 여부 등 사건 진행 상황에 대한 추가 확인 없이 오후 7시에 그대로 퇴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 전 실장은 같은날 밤 10시 30분경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이씨의 북한군에 의한 피격 및 시신 소각 사실을 전달 받았다.
검찰은 시신 소각 사실을 알고 있던 서 전 실장이 다음날 새벽 1시 안보실장 주재 관계장관회의(1차 회의)에서 사건 은폐를 지시했다고 판단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①구조하지 못한 책임 회피, ②같은 시기 있었던 대통령 UN화상 연설에 대한 비판 방지, ③대북화해정책에 대한 비판 대응 등을 위해서다. 같은 날 오전 열린 비서관 회의에서는 일부 비서관들이 "어차피 공개될 텐데 바로 피격 사실을 공개하는 게 맞지 않냐"고 반대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비서관은 회의 직후 사무실로 돌아와 "이거 미친 것 아니냐", "국민이 알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실장이 그러잖아. 실장들이고 뭐고 다 미쳤어" 등의 발언을 했다고도 한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의 주도의 '보안 유지'에도 불구하고 언론 보도가 나오자 이때부터 서 전 실장이 '월북 몰이'를 했다고 판단했다. 23일 밤 10시 40분쯤 언론 보도를 통해 이씨의 피격·시신 소각 사실이 보도됐다. 서 전 실장은 다음날인 9월 24일 오전 8시 3차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사건 실체를 공개하되, 이대준씨가 자진 월북한 것처럼 발표하도록 서욱 전 국방장관과 이영철 전 합참 정보본부장에게 지시했다.
서 전 실장은 이날 오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에서는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과 차별화를 시도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은 이러한 서 전 실장의 지시에 따라 자진 월북했다고 볼만한 근거가 없음에도 자진 월북 추정 경위를 발표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당시 이를 수사하던 인천해양경찰서 수사팀도 "진행된 수사가 없다"며 결과 발표에 동의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씨가 마치 자진 월북한 것처럼 조작하는 모든 상황을 (서 전 실장이) 주도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서 전 실장을 이 사건 '최종 결정권자'로 판단하면서, 감사원에서 서면 조사 요청까지 받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배경설명 외에는 공소장에 따로 담지 않았다. 서 전 실장의 첫 재판은 오는 20일 열린다. 이날은 공판준비기일로 피고인 참석 의무는 없다. 서 전 실장은 정식 공판이 시작되기 전 보석 심문부터 받게 된다. 법원은 오는 11일 서 전 실장에 대한 보석 심문기일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