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시민구단을 둔 지방자치단체들이 고금리·고환율·고물가 등 '삼중고'의 경제난이 가속화되면서 구단 운영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검찰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성남FC' 의혹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로 압박하면서 기업들의 광고 후원도 위축돼 구단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엄습한 경제난 속 '지자체에만 의존'하는 구단 재정
1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프로축구 K리그 1·2부 소속 25개 팀 가운데 절반이 넘는 15개 팀이 시민구단이다.
지난해까지는 13개 팀이 시민구단이었지만 올해 천안시티FC와 충북청주FC 등 2개 팀이 새롭게 K2리그에 추가되면서 국내 프로축구 리그에서 시민구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로 늘었다.
시민구단의 운영비는 상당 부분 지자체 예산으로 채워진다. 구단주 역할을 맡고 있는 지자체들은 구단 운영비의 50% 안팎을 기금과 보조금 등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해오고 있는데, 많게는 90%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경기 안양시는 FC안양 연간 운영비 100억 원 가운데 60%를 시 기금(50억 원)을 비롯해 경기도와 비율을 나눠 조성한 보조금(10억 원) 등으로 충당하고 있다. 수원FC의 경우 연간 시에서 지원하는 예산 비율이 85%에 달한다.
일부 지자체의 경우 기존 도와 반씩 분담하던 보조금 분담비율이 도의 재정난 등을 이유로 70%까지 올라 시의 부담이 커진 상태다.
이처럼 시민구단은 지자체 예산에 기대어 운영되고 있지만, 국내 경제가 악화되면서 예산 확보가 녹록지 않다. 반도체 불황과 부동산 경기 하락, 법인세 인하 등으로 세수 확보에 빨간불이 켜지면서다. 경기도는 지난해 세수입이 17조 1400여억 원이었지만 올해 1조 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각 시·군도 대체로 감소 추세로 전망되고 있다.
수원시 관계자는 "모든 시민구단들이 태생적으로 기업구단과는 달리 재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추세"라며 "경제난이 지속되는 만큼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피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구단이 지자체 지원금 외에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사실상 홈경기 티켓 판매액과 기업의 광고가 전부인 상황이다. 그마저도 상당수 시민구단들은 상대적으로 팬들의 주목도가 떨어져 평균 관중이 1~2천명에 그친 2부 리그 등에 몰려 있어 자체 수익은 미비한 수준이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아예 구단이 해체된 사례도 있다. 인천 남동구의 세미프로(4부) 팀인 FC남동이다. FC남동은 지난 2019년 창단 후 '남동구민축구단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남동구로부터 운영 예산과 운동장 임대 등을 지원받아오다, 지원 타당성 부족과 재정난 등을 이유로 예산이 삭감되면서 모든 지원이 끊겼다. 결국 창단 3년 만에 해체 수순을 밟았다.
성남FC 수사 '불똥'…움츠러든 기업 광고
공식 수익 채널인 기업 광고를 유치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성남FC의 광고를 유치한 것을 두고 전방위 수사가 이뤄지면서 기업들이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남FC 의혹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구단주)이던 당시 6개 기업들로부터 받은 160억 원 상당의 구단 광고비가 인허가 편의를 위한 대가였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이 대표가 직접 돈을 받진 않았지만 구단에 뇌물이 가도록 해 자신의 정치적 치적을 쌓는 등 '제3자 뇌물공여' 혐의가 있다고 보고 조사 중이다.
이런 사정당국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민구단에 대한 광고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FC안양의 경우 2017~2019년 기업 후원금이 늘면서 14억 원으로 치솟았다가 2020년 코로나19와 이후 성남FC 사태가 불거지면서 3억~4억 원대로 떨어졌다. 기존 12개였던 광고주들도 대부분 이탈해 지난해 광고를 한 업체는 단 1곳뿐이다.
FC안양 구단 관계자는 "시민구단으로서 지자체가 구단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게 당연한데, 일련의 활동이 마치 불법인 것처럼 선입견이 생겨 안타깝다"며 "시민구단 운영은 적자냐 흑자냐를 따지기보다 지역민들의 결속력을 다지고 지역 정체성을 강화함으로써 자부심을 키워주는 등 금전적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무형의 가치가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2021년 1부 리그로 승격해 선전하고 있는 수원FC도 광고 축소를 우려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시민구단에 비해 관람 수익 등은 양호한 편이지만, 성남FC 사태 영향으로 기업들이 후원을 이어가는 데 난색을 표하면서 광고 유치 과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수원FC 구단 관계자는 "성남FC 사태 이후 선수들 유니폼에 붙이는 기업 로고 등에 대한 단가의 최대 금액 기준이 낮아지고 있다"며 "우리 구단은 인기가 올라가면서 자체 수익은 조금씩 늘고 있지만 기업들 표정이 안 좋아서 광고만 놓고 보면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2017년 창단 이래 줄곧 2부 리그에 머물고 있는 안산그리너스FC는 자금 압박으로 인해 1부 리그 승격은 꿈도 꾸지 못하는 처지다.
광고는 대부분 지역 내 기업들이 하고 있는데, 안산시에는 굵직한 대·중견기업이 없어 중소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에 더욱 치명적인 경제 악화로 예전만큼의 광고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안산그리너스FC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광고가 줄었고, 지금 우리 구단의 운영자금은 2부 리그 구단 중 최하위 수준"이라며 "여기서 광고마저 더 줄어들게 되면 좋은 성적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지자체장 역할 규정에도…'뇌물 눈치'에 살얼음판
지자체장들이 시민구단 지원 등을 위해 직접 나서기 힘든 상황이 되면서, 일각에서는 스포츠 활성화를 위해 규정된 지자체장의 법적 규정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각 시민구단을 운영하는 지자체들의 조례를 살펴보면 지자체장은 구단 운영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 등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위법인 국민체육진흥법(제16조)에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레크리에이션 보급과 프로 경기의 건전한 육성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최근 검찰이 성남FC 사태와 관련해 이재명 대표를 '제3자 뇌물 혐의' 등으로 몰아가는 양상을 보이자 지자체장들의 기업 광고 유치 활동도 위축되고 있다. 해당 지자체장 입장에서는 기업 광고 유치 활동을 하지 않으면 시민구단 운영이 어려워지고, 유치 활동을 벌이면 훗날 자신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프로축구 시민구단을 운영하는 한 지자체장은 "지원 예산 확보도 어려운데 기업 자금 유치도 적극적으로 할 수 없게 됐다"며 "운영비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앞으로 선수들 경기력도 저하되고 하면 결국 구단 운영 자체가 마비될 수도 있어 걱정이 크다"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10일 성남FC 제3자 뇌물수수죄 의혹과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전국의 지자체장들에게 공개적으로 주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홍 시장은 "지금은 대구 FC를 운영하는 구단주로서 집행기관(시장)이기 때문에 나는 이런 유형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대구FC 지원금 모금에는 일체 관여 하지 않는다"며 "전국의 지자체 단체장들, 특히 집행기관들은 이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구단 자생력+시장 역할 인정…연맹 '재정안정화' 추진
전문가들은 애초 시민구단이 자립할 만한 수익 창출 모델이 부족한 데다, 지자체의 지원마저 정치적 해석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재정 운용 시스템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한다.
시민구단이 제대로 독립할 수 있는 운영 권한을 확대해 창의적인 마케팅 통로를 열어주는가 하면, 예산 지원도 일정 기간 유지될 수 있도록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뒤따른다.
유재구 중앙대 체육대학 교수는 "시민구단의 인기에 맞춰 (홈경기) 티켓의 객단가가 정상화되고 많이 팔려야 기업 광고도 활성화될 텐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며 "구단 운영권과 수입권 등을 지자체가 갖고 운영비의 부족분을 다 메워주는 식이기 때문에 시민구단의 독립성 확보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초의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 정치적 이슈나 외부 압박으로 지원금이 언제 삭감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다"며 "성남FC 사태 영향으로 법적으로도 보장된 지자체장의 후원 유치 역할이 크게 위축되는 현상도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유 교수는 "법률과 조례에서 국가와 지자체가 스포츠를 장려하도록 한 취지는 근본적으로 공공재이기 때문"이라며 "시민구단에 투입된 광고비도 공공재 성격을 지닌다. 이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거나 범죄시하는 관습이 생기면 스포츠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축구계에서는 부천FC가 선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후원 계좌를 가진 3천여 명의 시민들로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연간 3억 원 정도로 많진 않지만 '자발적 후원 모금'의 통로로서 구단의 자생력을 키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는 유럽의 일부 축구팀 운영 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FC바르셀로나가 대표적이다. 구단이 유료회원인 소시오(socio)들에게 일종의 시즌권을 제공하면서 기업들의 스폰(지원)을 이끌어내고, 지자체는 축구 인프라 구축 등만을 담당한다.
부천FC 구단 관계자는 "어느 구단이든 성남FC 수사로 기업 광고 유치에 눈치를 보는 건 똑같다"면서도 "자발성 강한 조합원 3천 명 정도가 홍보 채널이나 후원 역할을 해주고 있어 여느 구단보다는 위기 속에서도 독립적인 구단 운영이 가능한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시민구단들의 재정난에 대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재정안정화 대책을 추진한다. 구단 운영의 고정 지출을 줄이고, 중계권 판매 확대 등으로 수입 판로를 늘리는 게 핵심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수입을 늘릴 수 없다면 고정 지출을 줄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구단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의미한 지출을 찾는 재정건전성 강화 제도를 시행하는 한편 중계권 판매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