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16년 뒤. 한국 프로야구는 새로운 기대로 들떠 있다. ''제2의 이종범''이라 불리는 선수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삼성 김상수(19)와 KIA 안치홍(19). 2009년 한국 프로야구엔 빠르고 날카로운 타격 솜씨에 녹록치 않은 수비 실력까지 지닌, 신인 시절의 이종범을 떠올리게 하는 젊은 싹이 움트고 있다.
그래서 이종범(39)에게 물었다. "''제2의 이종범''이 꺾이지 않고 ''이종범처럼''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성적표는 접어둬라
김상수와 안치홍의 18일 현재 타율은 각각 2할5푼6리와 2할5푼4리에 불과하다. 간혹 깜짝 놀랄 한방씩을 쳐내고는 있지만 인상적인 수치는 아니다. 우리의 기대가 너무 높았던 것일까.
이종범의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숫자로 평가받을 단계가 아니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벌써부터 타율 같은데 신경쓰고 하다보면 지레 꺾여버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따지고 보면 이종범의 신인 시절 타율은 2할8푼에 불과(?)했다. 16개의 홈런과 73개의 도루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이종범이 신인시절엔 3할타자가 아니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종범은 "신인 때는 정말 성적은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 스타팅으로 뛴다는 것도 영광이었다. 정말 프로야구에서 필요한 선수가 되려면 그저 기회가 주어졌을 때 죽어라고 뛰는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김상수나 안치홍은 이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선수들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즌 내내 최선을 다해 플레이하는 것이다. 3할보타 패기와 열정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 지치면 더 뛰어라
4월까지만 해도 펄펄 날던 김상수와 안치홍에게도 체력적인 부담은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이종범이 내놓은 해답은 간단했다. "힘든 것은 당연하다. 입단했을 때 생각했던 것과 1년이 지난 후에 느끼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럴 수록 더 뛰어야 한다. 시행착오도 겪어봐야 나중에 더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한창 나이 아닌가. 힘들어도 참고 뛰어 봐야 요령이 생긴다. 좀 지쳤다고 쉬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때론 지나친 부담감이 몸에서 힘을 빼놓기도 한다. 기대치가 높은 만큼 그에 걸맞는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비판의 강도도 세진다. 그 역시 신인 선수들에겐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다.
이종범은 그 또한 정면 돌파만이 해법이라 했다.
"신인 시절 성적이 욕심만큼 나온 것은 아니지만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은 없다. 다시 말하지만 경기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관중이 많으면 더했다. ''여기서 못하면 어쩌지''라고 걱정하기 보다 ''내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어떤 감독 코치가 그들에게 3할타율이나 20홈런 같은 걸 기대하겠나. 실수하더라도 주눅들지 않고 씩씩하게 덤비는 것. 그런 선수가 크게 될 수 있다."
▲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6월 부터는 다르다. 치열한 순위 싸움 속에서 옥석이 가려지고 살아남는 자와 사라지는 자로 나뉘어지게 된다. 감독들의 기다림도 경쟁 속에서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유망주들이 소리없이 사라지는 걸 지켜봐왔다. 모든 유망주다 모두 살아남는 것은 절대 아니다. 김상수와 안치홍에게도 예외일 순 없다.
이종범은 긴 호흡을 강조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중요한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오늘 잘했다고 내일 또 잘한다고 보장 없는 것이 야구다. 당장 성적 좀 나왔다고 기고만장 했다가 사라진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일희일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1년 잘 하는 것 보다 앞으로 오랜 기간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못했다고 기죽지 말고 잘했다고 방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이만큼 지나고 보니 후회되는 일이 많다. 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다 보면,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아 내가 그때 정말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만족은 그때가서 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