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무관용' 직면한 박경석 전장연 대표 "지하철 떠날 수 없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인터뷰
22년간 장애인 권리 확보 위한 투쟁 지속, 어느 때보다 절박한 요즘
장애인 권리 문제 해결 관건은 '예산'…특별교통수단 관련 1600억원 요구 중 237억원 배정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 '감사'…극단적인 여론 과대 대표는 '경계'
"잡아먹을 기세로 토끼몰이"…오세훈 서울시장 강경 대응 기조 비판

장애인 권리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장연 사무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

새해가 찾아왔지만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줄어든 가운데 재개된 '지하철 탑승 시위'는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전개됐다. 기획재정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측이 요구한 장애인 권리 예산안 중 0.8%만 반영한 정부안을 내놓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하철은 1분만 늦어도 큰일난다"며 무관용 원칙을 제시했다.

지난 2일 전장연은 오세훈 시장의 '휴전' 제안을 수용해 집회를 잠정 중단한 지 2주만에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했다. 전장연과 경찰·서울교통공사 측은 이틀째 대치하며 여러번 충돌을 빚었다. 지난 2일 서울교통공사는 '집회로 열차 운행이 지연된다'며 이례적으로 13 차례나 무정차 통과 조치를 단행했다. 

4일 CBS노컷뉴스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를 만나 '극한 대치'까지 불사하며 연초부터 '지하털 탑승 시위'를 재개했던 배경, 연말 통과된 장애인 권리 예산안의 문제점, 시민들의 출근길 불편에 대한 전장연의 입장 등을 짚어봤다.  

"장애인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투쟁 시작"

장애인 권리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장연 사무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

2001년 1월 22일, 70대 노부부가 서울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려다 추락해 한 명이 사망했다. 사고 이후 22년이 지났지만 장애인 권리를 위한 투쟁은 현재 진행 중이다.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해 '교통약자법' 등 관련 법안들은 제정됐지만, 법안 이행이 지지부진한 탓이다. 

박 대표는 "(2001년) 1월 22일날 추락 사고가 있었고 그때부터 저희는 이동권을 외쳤다"며 "장애인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의 권리를 통틀어서 장애인 권리라고 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을 보장하기 위한) 예산에 대해서 저희는 1조 3000억원 증액을 요청했고 국회에서 통과된 건 0.8%(106억)"라며 "이 때문에 지금 다시 1월 2일부터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려면 충분한 예산이 확보돼야"

장애인 권리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장연 사무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

전장연 측이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 권리는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 권리 등이다. 이러한 권리는 법령을 통해 보장받는 기본적인 권리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장애인 이동권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을 통해서 보장되고 있다. 교통약자법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를 위해 특별교통수단을 운영할 책임을 진다. 

박 대표는 현행 예산 규모로는 이러한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다 보니 장애인 권리 관련 법령과 정책 이행 속도가 더뎌졌다고 주장했다. 이 와중에 가장 우선 보장되어야 할 장애인 이동권 관련 증액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이번 예산안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저희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운송비의 국가 책임 예산을 1600억원으로 정해야 한다는 건데 정부안에는 237억원만 반영됐다"며 "지금 당장은 특별교통수단 예산이 제일 시급한데 기획재정부는 예산을 보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같은 경우에는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지 장애인콜택시(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고 서울은 빨리 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1시간, 2시간 기다린다"며 "지하철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힘들고 내가 가는 길목에 저상 버스는 없고 시골 산꼭대기에 살면 마을 버스가 없어서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극단적인 여론이 과대 대표되는 사회 문화는 바로 잡아야"

장애인 권리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장연 사무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를 두고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2021년부터 시작된 전장연 집회가 3년차에 접어들다 보니 시민들은 피로감을 호소하는 한편, 일부 시민들은 집회 현장이나 온라인상에서 활동가들을 향해 혐오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전장연을 향해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시민들도 여전하다. 

박 대표는 "지하철 1분 지연이 큰일 나는 세상에 사는 시민들이 안타깝지만, 저희들에게 '지하철에서 나가라'는 말은 '지구를 떠나라'는 소리로 들린다"고 말했다. 혐오표현을 쏟아내는 일부 시민들에 대해서는 과대 대표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진정한 여론인지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는 반응이다.

시민들의 다양한 반응에 대해 박 대표는 "시민들이 저희들에게 몰랐다, 미안하다는 쪽지들도 어마어마게 보내주신다"며 "그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혐오표현 관련 질문에는 "인터넷 사이트에 댓글은 매우 편협하고 혐오를 자랑하는 자리인 것 같다"며 "그런 자리를 여론이라고 해서 과대 대표되는 방식의 사회 문화는 바로 잡아야 한다"고 답했다. 

"불법 집회는 정당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판단하는 주체가 누구냐"며 반문했다. 박 대표는 "집회의 정당성은 헌법에서 나오고 헌법에는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람들은 싸울 수 있는 권리가 명시됐다"며 "저희는 구걸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저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데도 자기가 불편하니까 떨어진다고 말하는 게 정당성이라면 거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지하철 집회로 공사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송치된 전장연 활동가 24명에 대해서는 '권리를 위한 투쟁을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박 대표는 "저희는 기본적인 우리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었고 무죄이고 법정에서 싸울 예정"이라며 "조사하면 조사받고 구속시키면 구속당해야지 특별한 입장이 있겠나"고 말했다. 

"새해는 토끼해, 장애인 '토끼몰이' 멈추기를" 

장애인 권리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장연 사무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며 전장연 측에 강경 대응할 것을 시사했다. 전장연과 오 시장은 서울교통공사 측이 제기한 민사소송에 대해 법원이 조정안을 내린 이후부터 두고 날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전장연은 앞서 '지하철 승하차 시 5분 이상 운행을 지연시키지 말라'는 법원 조정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장연은 지난 1일 논평을 통해 "유감스럽지만 법원의 조정을 수용한다"며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교통공사도 사법부의 조정안을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오세훈 서울시장은 법원 조정안에 대해 '수용불가' 입장을 밝혔다. 오 시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조정안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며 "1분만 늦어도 큰일 나는 지하철을 5분씩이나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내일(2일)부터는 무관용이다"고 말했다.  

이러한 서울시의 기조에 대해 박 대표는 약자에 대한 지나친 탄압이라는 반응이다. 박 대표는 "갑자기 무관용이라고 하시니 마침 토끼해니까 힘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토끼몰이 해가지고 잡아먹을 것 같은 기세로 (지하철에) 안 태우고 어떤 언론 보도는 원칙이 승리했다는데 뭐가 승리인지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 권리 예산은 중앙정부 예산을 가지고 하는데 저희는 어떻게 보면 서울시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기도 하다"며 "특별교통수단 예산은 서울시만 돈 내는 게 아니라 기재부도 돈을 내서 서울시가 독박 쓰고 있는 내용들을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의 '말바꾸기' 태도를 비판하는 지적도 나왔다. 박 대표는 "갑자기 휴전을 제안하더니 바로 그 다음 날 6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하겠다고 나오고 또 무관용하겠다고 나오고 뭘 하자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나한테 인간적인 예의도 없고 너무 자기 마음대로 나오고 상황에 대한 인식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마지막으로 정치권에 시민들을 갈라치는 행태를 멈춰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시국도 정세도 자기 편이 아니면 다 죽여야 될 사람으로 갈라치는 이런 세상은 각박하고 장애인의 문제도 그런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다"며 "이런 전쟁 같은 일상을 멈추시기를 부탁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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