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처럼 잘 나가던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에 또 다시 악재가 찾아왔다. 상황은 그때와 다르지만 '배구 여제' 김연경(34)이 돌아와 팀에 인기와 성적을 모두 안겨준 가운데서 생긴 불의의 변수라는 점에서 판박이다.
흥국생명은 2일 "권순찬 감독과 김여일 단장을 동시에 사퇴하게 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감독과 단장이 사실상 경질된 것이다.
보기 드물게 구단주가 직접 배경을 설명했다. 흥국생명 배구단 임형준 구단주는 이번 인사에 대해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권순찬 감독과 헤어지기로 결정했다"면서 "단장도 동반 사퇴하게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단 팀은 이영수 수석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이끈다. 흥국생명은 "권 감독은 고문 형태로 계속 조언 등을 해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연경이 2년 만에 돌아온 흥국생명은 올 시즌 여자부 2위로 선두권 경쟁을 펼치는 중이다. 1강으로 꼽힌 현대건설과 승점 차가 3밖에 되지 않을 만큼 접전이다. 더군다나 흥국생명은 최근 현대건설에 승리를 거두며 사기로 올라 있었다. 이런 가운데 감독과 단장이 동시에 경질되는 악재가 생긴 상황이다.
권 감독은 몇몇 언론 인터뷰를 통해 김 단장과 그룹 수뇌부가 선수 운용에 간섭했다고 폭로했다. 베테랑보다는 젊은 선수들을 기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권 감독이 이를 듣지 않으면서 갈등이 커진 양상이다. 김연경 등 베테랑 선수들이 강하게 불만을 드러내고 있지만 일단 구단은 감독과 단장을 모두 배제하면서 사태를 서둘러 봉합한 모양새다.
2년 전에도 흥국생명은 시즌 중 돌발 악재가 발생한 적이 있다. 당시도 김연경이 12년 만에 복귀한 흥국생명은 1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축이던 이재영, 이다영 쌍둥이 자매의 학교 폭력 사태가 터졌고, 이전부터 불화로 흔들렸던 팀 분위기는 완전히 흐트러졌다.
1위였던 흥국생명은 막판 8경기를 제대로 치르지 못해 결국 정규 시즌 2위로 밀렸다. 흥국생명은 플레이오프에서 IBK기업은행을 눌렀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GS칼텍스에 우승컵을 내주고 말았다. 12년 만의 복귀에서 정상을 노렸던 김연경은 고군분투했지만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올 시즌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김연경이 지난 시즌 중국 상하이에서 뛰다 돌아온 흥국생명은 1위도 바라볼 태세였다. 현대건설은 주포 야스민이 부상으로 3주 결장하는 터라 1위 수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더군다나 흥국생명은 최근 트레이드를 통해 세터 이원정까지 영입하며 우승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다. 이런 상황에 팀을 이끌 감독과 단장이 동시에 물러나는 변수가 발생해버린 것이다.
다만 2년 전과 분명히 다른 점은 있다. 정작 코트에 나설 선수단 전력은 그대로다. 2020-2021시즌 당시에는 정상급 아웃사이드 히터와 세터였던 쌍둥이 자매가 동시에 빠졌지만 올 시즌은 전력 누수는 없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자극을 받은 김연경이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선수들이 똘똘 뭉칠 수 있다. 그나마 다행히 권 감독이 고문을 맡고, 이 수석 코치가 대행으로 팀을 이끌어 팀의 방향성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2년 전에도 흥국생명은 엄청난 전력 공백에도 김연경을 중심으로 포스트 시즌에서 기업은행을 꺾는 등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올 시즌 흥국생명은 돌아온 김연경 효과로 관중 동원 1위와 정규 시즌 2위 등 흥행과 성적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더군다나 오는 29일 올스타전도 흥국생명의 홈인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펼쳐진다. 올 시즌 완전히 명문으로 부활할 호기에서 오히려 위기를 맞은 흥국생명이 남은 시즌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