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으며 차기 당대표를 노리는 국민의힘 당권주자들의 움직임도 더 빨라지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부터 도입된 결선투표제의 영향으로 인위적 단일화에 대한 압박이 감소하면서 지지세가 낮은 후보들의 완주 가능성은 높아지고, 교통정리 불발로 비윤계 당대표가 당선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與 신년인사회에 당권주자 집결, 여지 둔 나경원
국민의힘 당권주자들은 1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 신년인사회에 대거 집결했다. 공식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음에도 지지층 사이에서 지지율 1위인 나경원 전 의원도 참석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나 전 의원은 "노동개혁과 연금개혁, 교육개혁을 대통령이 꼭 해결하시도록 하고, 우리도 정당개혁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여지를 뒀다.
김기현 의원은 "우리 당이 추구해온 보수당으로서의 가치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뿌리를 든든하게 하면서 외연을 확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의원은 "내년 총선과 다음 지방선거, 그 다음엔 정권 재창출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라며 "제 지역구가 대장동인 만큼 야당과 싸우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고, 조경태 의원도 "우리 국민의힘이 국민께 겸손한 마음으로 정치를 잘해야 한다. 올해 우리 국민의힘이 개혁되고 정치가 개혁돼 국민이 행복하고 잘 사는 정치 개혁의 원년이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행사에 불참한 권성동 의원은 이날 충북을 찾아 당원들에게 특강을 했고, 윤상현 의원도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오는 5일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당대표 출마 선언을 예고하는 등 당권주자들은 오는 3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안전판' 결선투표의 역설 "단일화 압력 줄여, 친윤후보들 완주가능성↑"
이번 전당대회는 당원투표 100%로 당대표를 선출하기로 한 것 외에도 결선투표제가 추가됐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없는 경우, 1·2위 후보 사이 재투표를 실시하는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당원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은 당대표를 뽑아 정당성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지세가 높은 비윤계 후보 당선을 막기 위한 안전 장치를 도입한 것이라는 게 여의도 안팎의 분석이다.
결선투표가 없다면 지지세가 높은 비윤계 후보 당선을 막기 위해 친윤계에서 인위적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압력이 강해질 수 있지만, 결선투표제가 생기면서 지지세가 낮은 친윤 후보들도 완주에 대한 부담을 덜고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챙기기 쉬운 환경이 됐다.
국민의힘의 한 당직자는 "결선투표제가 없다면 특정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는 미명 하에 물밑에서 외압을 행사하고 야합이 벌어지는 등 분란이 생길 수 있다"며 "결선투표제라는 장치가 생기며 그런 점에서는 확실하게 자유로워지고, 각 후보들이 소신있는 행보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2위 안에만 들어 결선투표에서 친윤 후보와 비윤 후보의 일대일 구도가 형성된다면, 현재는 지지율이 낮은 친윤 후보이더라도 승산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끝까지 완주하면서 당원들을 만나는 과정 자체가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실제로 2위 안에 들면, 당대표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니 모든 후보들이 열심히 움직이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나경원 변수까지, 비윤계만 결선투표 진출 가능성도
문제는 2위 안에 들어가기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뉴시스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7~2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조사해 1일 발표한 국민의힘 지지층 대상 당대표 적합도에서 1위는 나경원 전 의원(30.8%), 2위는 안철수 의원(20.3%)이었다.
이어 '김장연대(김기현-장제원 연대)'로 주목도를 올리고 있는 김기현 의원(15.2%), 현 지도부인 주호영 원내대표(8.1%), 비윤의 대표 격인 유승민 전 의원(6.9%) 등이 뒤를 이었다.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무선 100% 자동응답 방식으로 실시. 응답률은 1.0%.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지지율 추이를 보면, 나 전 의원의 출마 여부가 최대 변수다. 전망은 엇갈린다. 윤석열 대통령이 맡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및 기후환경대사직 모두 우리나라의 중요 어젠다를 다루기 때문에 출마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나 전 의원은 "당대표 되세요"라는 말을 최근 가장 많이 듣는다고 언급할 정도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나 전 의원이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지가 출마 여부를 결정지을 만한 조건이다. 한 중진의원은 "윤 대통령의 비공개 만찬 여부를 두고도 당이 요동치는 상황인데, 대통령이 맡긴 중요 직책을 버리고 당대표에 출마할 경우 비판의 중심에 설 것"이라며 "대통령 뜻을 저버렸다는 프레임이 잡힐 경우, 당대표가 되기도 어려울 것이라 본다"고 내다봤다.
이 경우에도 나 전 의원을 지지하는 자체 지분은 존재하겠지만, 이탈표가 완주 의지를 내비치는 친윤 후보군에게 골고루 분산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자칫 비윤 후보만 결선 투표에 진출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소위 친윤으로 분류되는 후보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고려해 명분 없이 무리수를 고집할 경우 비윤 후보들이 어부지리로 당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