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해 연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8기 6차 전원회의에서 남한을 '적'으로 명확히 규정했다. 그러면서 전원회의 결과 보도 내용 가운데 이른바 '국방력 강화'에 상당한 비중을 쏟았다.
사실상 신년사인 이날 전원회의 결과 발표에서 북한은 "우리의 핵무력은 전쟁 억제와 평화안정 수호를 제1의 임무로 간주하지만 억제 실패시 제2의 사명도 결행하게 될 것"이라며 "제2의 사명은 분명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신속한 핵반격 능력을 기본 사명으로 하는 또다른 대륙간탄도미사일 체계', '전술핵무기 다량생산', '군사위성'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지난해 취임한 윤석열 정부 또한 '힘에 의한 평화', 즉 '억제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고 있어, 남북 강대강 구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2023년 한반도 정세는 매우 긴장되는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다.
김정은 "국제관계는 신냉전, 한미는 군사블럭 형성…억제 실패시 핵무기는 '제2의 사명' 실행"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전원회의 기간 보고에서 군사안보 분야에 대해 "북남(남북)관계의 현 상황과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엄중히 위협하는 외부적 도전들에 대한 분석에 기초하여 자위적 국방력 강화에 박차를 가할 데 대한 중대한 정책적 결단"과 함께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는 데 맞게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가 국위제고, 국권수호, 국익사수를 위하여,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철저히 견지해야 할 대외사업원칙"을 강조했다고 북한 관영매체는 보도했다.
그는 "최근 미국과 적대세력들은 우리 군사력의 급속한 고도화와 세계유일무이의 핵법령 반포로 심대한 타격을 받은 데 이어 우리의 초강경 대응의지에 부딪친 후 공포와 불안 속에 전전긍긍하면서도 그 악착성과 발악상에 있어서 인류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극도의 대조선(대북) 고립 압살 책동에 매달리고 있다"며 "미국은 2022년에 들어와 각종 핵타격 수단(전략자산)들을 남조선(한국)에 상시적인 배치 수준으로 자주 들이밀면서 우리 공화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 수위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한편 일본, 남조선과의 3각 공조 실현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동맹 강화'의 간판 밑에 '아시아판 나토'와 같은 새로운 군사블럭을 형성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남한에 대해서도 "그 무슨 '위협'에 대처한다는 간판 밑에 무분별하고 위험천만한 군비증강 책동에 광분하는 한편 적대적 군사활동들을 활발히 하며 대결적 자세로 도전해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해 우리 군의 포병사격훈련을 '도발적 행동'이라 주장하며 그 핑계로 9.19 군사합의를 위반했던 논리의 연장선상, 즉 책임전가다. 한미가 먼저 자극했으니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핵무력은 전쟁 억제와 평화안정 수호를 제1의 임무로 간주하지만 억제 실패시 제2의 사명도 결행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으며 제2의 사명은 분명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것'이란 당연히 선제 핵공격을 말한다.
북한은 지난해 9월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라는 '핵 독트린'을 채택했다. 쉽게 이야기해 어떤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할지 규정한 대내외적 선언이다. 여기엔 핵무기 또는 대량살상무기 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될 시, 국가지도부가 공격받거나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될 시,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막기 위해 등의 각종 요건을 언급했다. 범위도 상당히 넓고 공격적이어서, 북한 자신들이 규정하는 임의의 상황에서 선제 핵공격이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북한대학원대 김동엽 교수(예비역 해군중령)는 "억제의 3대 조건인 △ 의사전달(Communication, 금지행위와 위협 존재를 상대국에 명확히 알림) △ 역량(Capability, 위협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능력) △ 신뢰성(Credibility, 위협을 실행할 수 있다는 분명한 의지와 확신) 가운데 지난해 발표한 새로운 핵 독트린이 단순히 말이 아니라 실행에 옮길 분명한 의지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미국의 위협을 주로 강조하던 이전의 전원회의 결과 보도들과 달리 이번은 남한의 도전을 강조하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국방력 강화와 군사적 대응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며 "지난해 하반기 우리 정부가 북한의 도발에 대해 강력한 비판과 대응을 한 것에 대한 재대응 성격이 있다"고 분석했다.
"남조선은 우리의 명백한 적"이라며 "전술핵무기 다량생산, 핵탄보유량 증가"
대외적 상황을 평가한 뒤엔 거기에 어떻게 대처할지가 거론됐다.
김 총비서는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핵무력 강화 전략과 기도에 따라 신속한 핵반격능력을 기본사명으로 하는 또다른 대륙간탄도미사일 체계를 개발할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면서 "우리 국가를 '주적'으로 규제하고 '전쟁준비'에 대해서까지 공공연히 줴치는 남조선 괴뢰들이 의심할 바 없는 우리의 명백한 적으로 다가선 현 상황은 전술핵무기 다량생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각시켜주고 나라의 핵탄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먼저, '남조선 괴뢰들이 의심할 바 없는 우리의 명백한 적'이고 거기에 대처하기 위해 전술핵무기를 다수 생산'한다는 얘기는 한국을 목표로 했다. 사실 2020년 6월 9일 탈북민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회선을 단절할 때부터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당시 김영철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對敵)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죄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고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밝힌 바 있다.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에 탑재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의 표적은 남한이다. 북한은 2019년부터 기존의 스커드 계열을 대체할 수 있는 고체연료 계열 SRBM을 시험발사해 왔다. 1일 보도에서는 아예 600mm 초대형 방사포 증정식을 하면서 김 총비서가 "남조선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전술핵 탑재까지 가능한 것으로 하여 전망적으로 우리 무력의 핵심적인 공격형 무기로서 적들을 압도적으로 제압해야 할 자기의 전투적 사명을 수행하게 된다"고 강조한 바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이번 전원회의의 결정 내용과 김정은 발언은 대남 초강경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으로, 남북관계의 파탄을 넘어 실제적 전쟁 가능성을 대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올 한 해 안보불안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윤석열 정부를 압박, 굴복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전망하며 올해 상반기 한미연합훈련이 역대급 수준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남북간 강대강 대치도 역대급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시험 성공한 고체연료 엔진 통해 ICBM 개발 추진, 정찰위성 올해 4월 전 발사 예상
남한뿐만 아니라 미국을 노린 부분도 있다. 먼저, '신속한 핵반격능력을 기본 사명으로 하는 또다른 대륙간탄도미사일 체계를 개발'한다는 얘기는 고체연료 ICBM을 뜻한다. '신속한 핵반격능력'이라는 내용이 들어가서다.
북한은 전원회의 직전인 12월 15일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북한이 140tf(톤포스, 중량당 추력)급 추진력을 지닌 대출력 고체연료발동기(고체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연소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히면서 '최단기간 내 또다른 신형 전략무기의 출현'을 예고한 바 있다. 고체연료 탄도미사일은 기존의 화성 계열처럼 연료를 발사 직전에 주입할 필요가 없는 만큼 대응 시간이 짧다. 그렇기에 발사 직전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한다는 한미의 킬 체인(Kill Chain)을 회피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나라의 핵탄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내용은, 이런 무기를 개발한 뒤 대량생산하겠다는 뜻을 의미한다. 김동엽 교수는 "핵무력의 사용을 전략적인 응징적 억제(미국 본토 타격) 뿐만 아니라 전술적 차원의 거부적 억제(한반도와 역내)에도 배분해 사용하기에 충분한 양을 가지겠다는 점"이라며 "핵분열물질 보유량 증가는 비핵화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향후 북한이 핵군축을 요구하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총비서는 또 "국가우주개발국은 마감단계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찰위성과 운반발사체 준비사업을 빈틈없이 내밀어 최단기간 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첫 군사위성을 발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18일 '정찰위성개발을 위한 최종단계의 중요시험'을 했다고 밝힌 지 2주만이다.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올해 4월 최종 발사를 예고한 만큼 발사 전 여러 점검을 위한 유사 발사를 선행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보다 먼저 개발 성공을 과시하려고 일정을 압축적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우리도 연말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비행시험…탄도미사일? 정찰위성?
전원회의 결과가 발표되기 이틀 전인 12월 30일 한국 국방당국은 "독자적 우주기반 감시정찰 분야의 국방력 강화를 위해 오늘 고체연료 추진 방식의 우주발사체를 비행시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우주발사체는 탄도미사일과 일정 부분 기술을 공유한다. 이를 토대로 기존의 현무 미사일과 같은 SRBM뿐만 아니라 더 먼 사거리를 가진 탄도미사일은 물론, 아직 독자적인 정찰위성이 없는 우리나라가 곧 위성을 발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시험은 두 번째다. 지난해 3월 30일 첫 시험에 성공한 뒤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목표로 하는 발사체는 당장은 지구 저궤도(200~2천킬로미터), 즉 고도 500km에 500kg 수준의 위성을 쏴올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의 발달로, 이런 위성을 여러 개 쏴올리고 군집(swarming)시키면 중대형 위성처럼 통신이나 감시정찰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다.
군 소식통은 "이번에 발사한 것은 1단 없이 2, 3, 4단과 모사위성을 넣어서 발사한 것으로 안다"며 2, 3, 4단과 페어링(덮개) 분리, 모사위성 자세제어 시험을 했다고 전했다. 이럴 경우 4단, 즉 위성을 곧장 궤도까지 몰고 가는 최상단(upper stage)은 고체가 아닌 액체연료를 쓰는 경우가 많다. 정밀한 추력 조절이 필요해서인데, 고체연료는 추력 조절이 불가능하다.
한국항공대 장영근 교수는 "군의 목표처럼 500kg 위성을 올리려면 1단 발사체가 최소 150톤포스, 1톤 이상 위성을 올리려면 최소 200톤포스 이상 추력이 필요하다"며 "문제는 1단 고체연료 로켓 모터를 만들기가 국내에서도 매우 어렵다는 점인데, 만약 이번 발사에 1단이 없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우주발사체'라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장 교수는 "이번처럼 단을 따로 떼서 시험하게 되면, 예를 들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선 '시험발사체'라고 하지 '우주발사체'라고 하지 않는다"며 "국방당국이 이를 개발하는 것 자체가 북한에 이른바 '이중기준', 즉 '너희(남한)는 해도 되고 우리(북한)는 왜 안 되느냐'는 주장을 할 명분을 주기 때문에 부적절하다. 항우연 또는 민간 회사에서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시험비행 당시 국방부는 "우리 군은 우주를 포함한 국방력 강화에 계속 매진하겠다"고만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대해 북한도 일종의 '응답'을 한 셈이다.
전문가들 "상호 오인시 국지전 가까운 상황도", "대북 압박 얼마나 실효성 있나"
남북의 '말폭탄'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2023년 한반도 정세는 매우 심각해질 전망이라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중 패권경쟁을 계기로 북한이 이와 같은 상황을 남북미 vs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포인트다. 몇 년 전에는 형식적으로나마 제재에 동참하던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에서 거의 대놓고 북한 편을 들고 있다.
여기에 더해 2022년 취임한 윤석열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 즉 '억제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면서 북한군과 북한 정권을 '적'으로 규정하고, 연대급 이상 규모 한미연합 기동훈련(FTX)을 부활시켰으며 을지태극연습과 한미연합훈련을 다시 통합해 을지 프리덤 실드(UFS)라는 이름으로 실시했다. 올해 상반기 한미연합훈련에서도 한미 해병대의 연합상륙훈련인 쌍룡훈련과 함께, 대규모 FTX인 독수리(Foal Eagle) 연습을 사실상 부활시키겠다고 예고했다.
이러한 기조는 계속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1일 김승겸 합동참모의장과 통화하면서 "북한은 앞으로도 핵·미사일 위협을 고도화하면서 다양한 대칭·비대칭 수단을 동원해 지속적인 도발에 나설 것"이라며 "우리 군은 일전을 불사한다는 결기로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확실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밝힌 바다.
여기에 더해 국방부는 "북한은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 발표와 방사포 전력화 행사를 통해 핵능력 증강과 우리에 대한 핵공격 위협을 자행한 바,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해치는 도발적 언사"라며 "우리 군은 미 확장억제 실행력을 실질적으로 제고하고 한국형 3축 체계를 획기적으로 강화하여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억제 및 대응할 것이며, 북한이 만일 핵 사용을 기도한다면 김정은 정권은 종말에 처하게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3~4월 북한이 극도로 민감해 하는 훈련이 연이어 열리고 북한이 여기에 전술핵무기 실전운용 차원에서 공세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이 연이어 발생할 수 있다"며 "북한의 강대강, 정면투쟁(비례적·맞춤형 대응), 공세적 무기개발과 한미의 연합훈련·비례적 대응으로 순식간에 긴장이 올라가고 자칫 상호 오인 상황이 발생할 경우 국지전에 가까운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김동엽 교수는 "현재 미중 대결 상황과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명확히 진영화된 국제관계 구도를 활용해 전략적 자율성을 확장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이나 북미대화에 기대를 버리고 강대강, 정면승부의 대미·대적 대응방향이 보다 구체화된 행동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신냉전 구조 속에서 북한은 이미 정권 생존과 체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핀을 보장받았고 미국 주도 대북제재의 틀이 유명무실화됐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바탕으로 서구 중심의 대북 압박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임을출 교수도 "새해 새 아침을 전쟁 걱정부터 해야 하는 이례적이고 기이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남북간 군비경쟁과 지도자 간 주도권 싸움이 일상의 평화를 뒤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연 압도적이고 우월한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최선일까, 현대전에서 무고한 병사와 국민들의 희생 없이 승리가 가능할까, 소중한 생명과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이긴 전쟁이 무슨 의미가 있나"며 "진영을 떠나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지성을 발휘하지 못하면 올 한 해는 그야말로 상상조차 하기 싫은 비극적인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