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정수 > <착하기만 한 줄 알았던 너… 종이테이프의 배신> 이런 제목을 잡아봤습니다. 읽어보니 좀 섬뜩한 느낌도 드네요.
◇조태임 > 종이테이프가 무슨 배신을 했다는 거죠?
◆ 선정수 > 이런 저런 이유로 택배 많이 받으실 것 같은데요. 소비자들의 환경 의식이 높아지면서 종이테이프로 마감된 택배 상자도 많이 보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 흔히 생각하기로 종이테이프는 종이니까 택배 상자에 붙은 채로 종이로 분리 배출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조태임 >사실 택배 받아서 귀찮은 일 중 하나가 비닐 테이프 다 제거하고 분리수거 하는거였는데…종이테이프는 종이니까 괜찮겠지 했었는데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말씀이죠?
◆ 선정수 > 네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2022년 12월27일 한국소비자원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보도자료를 하나 내놨습니다. <종이테이프도 상자에서 제거한 후 분리배출 해야>라는 제목입니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종이테이프 25개 제품을 수거해 시험해봤더니 22개 제품이 재활용이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입니다.
이들 종이테이프 업체들은 명확한 근거 없이 '친환경', '인체 무해' 등의 표현을 사용해 온라인으로 광고하고 있었습니다.
◇조태임 > 시중에 팔리는 종이테이프를 시험해봤더니 재활용이 어렵더라.. 그런데도 친환경이라고 광고하면서 팔더라.. 이런 내용이네요.
◆ 선정수 > 그렇습니다. 잠깐 저희 집 얘기를 좀 드리면 저를 포함한 식구들은 쇼핑에 큰 취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꼭 필요한 것 아니면 거의 사지 않습니다. 그런데 환경 보호에는 꽤 민감한 편입니다. 온라인 장보기 업체 중에 종이로 모든 포장을 대체하겠다. 이렇게 선언한 업체가 있어서 사용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좀 심한 배신감을 느낍니다.
◇조태임 > 그런데 어쨌든 종이테이프를 사용하는 게 비닐 테이프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환경에 좋은 것 아닌가요?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종이테이프가 더 비싼걸로 알고 있는데요.
◆ 선정수 > 비닐을 포함한 플라스틱의 가장 큰 문제점이 잘 분해되지 않는다. 즉 썩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미세 플라스틱이 돼서 우리 몸으로 들어오고 자연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이런 부분인데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종이테이프가 비닐테이프보다 환경에 악영향을 덜 준다고 볼 수 있죠.
◇조태임 > 그럼 어쨌든 비닐보다는 좋은 것 아닌가요?
◆ 선정수 > 그런데 세상만사가 그렇지만 이것도 한쪽 면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게 함정이죠. 이 종이테이프를 떼어내지 않고 상자에 붙은 채로 종이로 분리 배출하면 오히려 재활용을 방해한다고 합니다.
◇조태임 > 비닐보다는 분해도 잘 되고…환경에 좋을 것 같은데 오히려 재활용을 방해한다고 하니..그건 왜 그런가요?
◆ 선정수 > 쉽게 말씀드리면 종이테이프에는 종이 말고도 점착제 등 많은 다른 물질이 포함되는데 이 종이가 아닌 성분들이 재활용을 방해하는 겁니다. 그래서 종이로 된 테이프이지만 종이 상자의 재활용을 방해하기 때문에 떼어서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하는 것이죠.
◇조태임 > 종이 테이프가 어쨌든 테이프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점착제 등이 섞여야 하기 때문인데…그것을 붙인 채로 종이로 분리하면 안 되는 거군요.
◆ 선정수 > 테이프의 구조는 몸통에 해당하는 지지체와 박리지, 점착제 등으로 구성됩니다. 테이프를 떼지 않은 상태로 종이상자를 재활용 공장에 보내면 재활용 공정을 방해합니다. 불순물이 많이 섞일수록 재생용지의 강도와 품질을 떨어뜨립니다. 종이테이프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이테이프가 택배 상자의 재활용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알칼리 용액(수산화나트륨: 양잿물이라고 부름)에서 완전히 풀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소비자원과 환경산업기술원의 시험 결과에선 종이테이프 25종 중 22종이 완전히 풀어지지 않은 것(해리성 없음)으로 조사됐습니다.
◇조태임 > 25종 가운데 22종이면 대부분 문제가 있다는 것이네요.
◆ 선정수 > 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원과 환경산업기술원은 종이테이프는 떼어내 종량제 봉투에 버리라고 권고하는 것이죠
◇조태임 >가끔씩 택배 상자에 종이테이프가 붙어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이게 그냥 종이로 버려서는 안 되는 건지는 몰랐네요.
◆ 선정수 > 몰라서 그런 건지 알면서도 그런 건지는 확실치 않지만 종이테이프 회사 25곳 중 19곳은 "분리수거시 분리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잘못된 분리배출 정보를 표시·광고했다고 하네요. 소비자원과 환경산업기술원은 "근거 없이 친환경을 표방하는 제품의 구매를 지양할 것과 재활용 공정에 이물질 혼입이 최소화되도록 재질이나 인증 여부와 관계없이 현행 지침에 따라 종이테이프를 분리 배출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조태임 >요즘 착한 소비에 관심 있는 분들 많으시잖아요. 저도…그래서 가격 좀 더 줘도 종이테이프를 쓰거나 썩는 비닐에 포장된 제품들을 사려고 하는데…선 기자도 그렇지 않나요?
◆ 선정수 > 네. 저도 살림하는 사람으로서 친환경이 물건 사는데 굉장히 큰 기준이거든요. 새벽 배송 처음 나왔을 때 너무 신통해서 많이 썼었는데요. 종이 상자가 너무 쌓여서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비닐 테이프 붙어있는 것 일일이 떼기도 힘들고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포장재를 모두 종이로 바꾸고 테이프도 종이테이프를 사용한다는 업체가 있어서 그 업체를 쓰고 있었죠.
◇조태임 > 그 업체의 종이테이프는 어떻습니까? 종이 상자에 붙은 채로 종이로 분리 배출해도 되는 건가요?
◆ 선정수 > 제가 그 업체에 연락해봤는데요. 답은 '안 알려줌'이었습니다. 그 업체 박스에 보면 스티커로 붙어있는 운송장에는 '원활한 재활용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분리배출시 송장을 제거해 주세요'라고 써있거든요. 그런데 종이테이프에는 아무 말도 안 써 있습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아 종이테이프니까 종이로 분리배출 해도 되나보다… 이렇게 생각하겠죠.
◇조태임 > 그런데 그 종이테이프가 양잿물에 완전히 풀어지지 않는다면 떼어내서 따로 종량제봉투에 넣어 버리는 것이 종이상자의 재활용을 돕는 길이다. 이런 말인거죠?
◆ 선정수 >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업체에다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종이테이프는 양잿물에 잘 풀어지는지 시험해봤냐', '시험성적서를 좀 제시해줘라' 라고 요청했는데. 그 업체는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조태임 > 뭐 업체는 업체대로 할 말이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업체는 비닐 테이프를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종이로 된 것 쓰지 않냐' 뭐 이렇게요.
◆ 선정수 > 해당 업체가 모든 포장재를 종이로 바꾸다는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플라스틱, 스티로폼, 비닐 포장재 사용을 줄이는 건 환경을 위해 좋은 일이니까요. 그러나 종이상자의 원활한 재활용을 위해 "종이테이프는 따로 떼서 버리십시오"라는 안내가 필요해 보입니다.
물론 해당업체가 사용하는 종이테이프가 알칼리 용액에 잘 녹아 재활용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최선이겠죠. 그러나 업체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한 제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소비자의 알 권리도 좀 존중해주면 좋지 않겠나 싶습니다.
◇조태임 > 무엇보다 종이테이프 업체들의 잘못된 홍보가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제가 알기로는 종이테이프가 더 비싸요.
◆ 선정수 > 이번 조사대상 25개 제품 모두 일부 환경성을 개선한 것을 근거로 '친환경', '인체무해', '최초', '인증', '생분해' 등을 주장하여 부당한 환경성 표시·광고에 해당됐다고 합니다. "분리수거시 분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친환경 크라프트 종이테이프로 박스를 버릴 때 테이프를 분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PE재질이 없어 박스에 붙인 상태로 재활용", "친환경 소재로 박스와 같이 분리수거" 이런 문구들이 해당되는데요.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조태임 > 여러분들 잘 들으셨죠. 택배 상자에 붙어오는 종이테이프도 꼭 떼어내서 종량제 봉투에 버리시고, 종이 상자에 붙어있는 운송장 스티커나 테이프 꼭 떼어내고 분리배출 해야된다는 점 명심하시면 좋겠습니다.
◆ 선정수 > 소비자들은 사실 제조업체의 홍보를 믿을 수밖에 없거든요. 제공되는 정보 외에 따로 검증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소비자단체 또는 정부 공공기관과 언론이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감시해야 하는 겁니다. 개별 소비자들도 '우리 이렇게 환경에 민감해'라고 업체에 알려줘야 기업들도 변화에 동참할 것 같습니다.
◇조태임 > 친환경의 탈을 쓰고 더 비싼 값을 받으면서 소비자를 기만하는 그린워싱 제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할 것 같네요. 지금까지 모아모아팩트체크 선정수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