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내년 1%대 '경기침체 터널' 진입 …더욱 커지는 R의 공포 ②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신음한 금융시장…내년 전망도 암울 (계속) |
올해 금융시장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고(高) 충격에 신음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의 과잉 유동성 공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마비 여파로 물가는 치솟았고, 주요국들은 이에 대응해 신속하게 기준금리를 올렸다. 시장엔 부채 증가‧자산가격 하락 공포가 단시간에 번졌으며 금융안정성도 크게 흔들렸다. 내년 역시 고금리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 경기침체 우려도 커 위태로운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리 급상승에 차주들 공포…달러는 초강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올해 여덟 차례 열린 기준금리 결정회의(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단 한 차례(2월‧동결)를 제외하고 쉼 없이 기준금리를 올렸다. 한 번도 단행된 적 없었던 '빅스텝'(한 번에 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 조치도 올해 두 차례나 이뤄졌다. 목표치를 한참 벗어난 고물가를 잡기 위해서다. 그 결과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연 0.50%였던 기준금리는 1년 반도 채 안 돼 3.25%까지 빠르게 치솟았다.글로벌 영향력이 막대한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 인상폭을 공격적으로 설정한 점도 한미 금리격차를 관리해야 하는 한은의 선택에 영향을 줬다. 연준은 한은보다 늦은 올해 3월부터 인상을 시작했지만, 보폭을 더 크게 벌여 2월 0.25%였던 기준금리 상단이 이달 4.50%까지 뛰었다. 국제유가 파동으로 물가가 치솟았던 1970년대 말, 80년대 초 이후 가장 빠른 속도의 인상이다. 연준의 고강도 긴축 기조 여파로 달러 가치는 크게 치솟으며 원‧달러 환율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게 올라갔다. 6월 1300원선, 9월 1400원선을 연달아 돌파했고 10월 25일엔 장중 1444.2원까지 오르며 연고점을 찍은 뒤 이달 1200원 중후반에서 1300원 초반 수준으로 오르내리며 안정되는 모양새다.
순식간에 이뤄진 고금리 국면으로의 전환은 코로나19 제로금리 시대에 과도하게 빚을 졌던 이들을 짓누르고 있다. 한은 경제통계시스템상 2020년 1분기에 1522조 4070억 원이었던 가계대출 잔액은 작년 4분기 1757조 650억 원으로 230조 원 이상 불어났다가 올해 들어 미미하게 줄었다. 작년 4분기 잔액을 기준삼아 금융권 대출금리가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폭(2.75%포인트) 만큼만 올랐다고 가정해도 대출자 1인당 연이자 부담 증가액은 179만 3000 원으로 추산된다. 가계대출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주택담보대출(주담)인데, 한은의 12월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주담대 보유차주의 평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60.6%에 달한다. 주담대 원리금을 갚는데 연 소득의 절반 이상이 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자산가격 하락…부동산 불패론마저 흔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빚투(빚 내서 투자)'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뜨거웠던 투자시장은 고금리 공포 속에서 차갑게 식었다. 코스피지수는 올해 마지막 거래일인 29일 44.05포인트(1.93%) 하락한 2236.40에 마감했다. 작년 마지막 거래일 종가(2977.65)와 비교해 한 해 동안 낙폭이 약 25%나 된다. 작년 장중 최고점(3316.08) 대비 낙폭은 32.5%다. 코스피 시장 시가총액은 올해 들어 436조 원 증발했고, 일 평균 거래대금도 40% 이상 감소했다. 개인은 3년 연속 매수세를 지속한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6조 원, 11조 원어치를 매도하며 3년 연속 순매도세를 이어갔다. 고환율 상황도 외국인 투자자의 '셀코리아' 현상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코스닥 지수 낙폭은 더 컸는데, 작년 말 대비 34.3% 하락한 679.29로 올해 장을 마감했다.
초고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가상화폐 가격은 그야말로 추락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현재 개당 2100만 원 선을 간신히 지키고 있다. 호황기 이전인 2020년 말 수준으로 복귀한 것으로, 작년 11월에 기록한 최고점(8270만 원) 대비 70% 이상 폭락했다. 연준 긴축 충격파에 더해 루나‧테라 사태, 거래량 기준 세계 3위 거래소였던 FTX의 초고속 파산 사태까지 줄줄이 이어지며 시장 신뢰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모습이다.
안전자산으로서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불패론'이 지배했던 부동산 시장 심리마저 얼어붙은 점은 눈에 띄는 대목으로 꼽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의 주택종합매매가격(전월 대비)은 올해 6월부터 하락 전환(-0.01%)된 뒤 7월 -0.08%, 8월 -0.29%, 9월 -0.49%, 10월 -0.77%, 11월 -1.37%로 낙폭을 확대하고 있다. 10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수는 4만 7217호로 작년 10월 집계치(1만 4070호)보다 크게 늘었다. 주택매매거래량도 7~10월 중 14만호로, 전년 동기(33만 5천호) 대비 58.2%나 감소했다.
고금리 지속‧경기침체 우려…내년 전망도 암울
이처럼 글로벌 긴축 태풍에 휩쓸렸던 한 해가 저무는 가운데 새해 상황 역시 녹록치 않을 전망이다. 물가 오름세가 둔화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고금리 상황 역시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은 뉴욕사무소의 내년 미국경제 전망 보고서를 보면 월가의 10개 투자은행 대다수는 연준이 내년 3월 또는 5월까지 기준금리 인상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종금리 수준은 5.0~5.25% 전망이 우세했다. 기준금리가 0.75%포인트 더 인상될 거라는 시각으로, 이는 연준 인사 다수가 최근 내놓은 금리전망과도 일치한다. 금리 인하 시기를 3분기로 예상한 투자은행은 1곳, 4분기로 예상한 곳은 5곳이었다. 나머지 4곳은 올해 중엔 금리 인하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고금리 지속 후폭풍으로 내년 중 미국의 경기침체를 예상한 투자은행도 8곳에 달했다.
한국 역시 연준 행보에 맞춘 기준금리의 '추가 인상 후 유지' 예상이 지배적인 데다가, 경기 위축도 본격화 될 것으로 보여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금융시장 분위기 반전은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다수의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코스피 지수가 내년 상반기 바닥을 찍고 하반기 점차 회복하는 상저하고(上低下高) 흐름을 보일 것으로 관측했다. 이들의 내년 코스피 예상 밴드를 종합하면 2000~2800선이다. 그러나 오히려 하반기 상황이 더 안 좋을 수 있다는 시각도 교차한다. 다올투자증권 조병현 연구원은 "향후 실물 지표들의 부진과 경기 침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 신용리스크 발생에 대한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라며 하저(下低) 전망과 함께 코스피 저점을 1940으로 제시했다.
특히 내년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시장의 최대 긴장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차주들의 재무건전성 악화는 물론,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부실화에 따른 건설업계‧금융권 도미노 위기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통화에서 "기준금리 추가인상이 예상되는 상황인 만큼, 내년 부동산 가격 하락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며 "현재 낙폭 추이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은은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조정은 부동산업‧건설업 등 관련 업종 기업의 수익성 등 재무건전성을 크게 저하시킬 수 있다"며 "또한 PF 대출을 상대적으로 많이 취급한 금융기관의 건전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