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역사가 평가하는 2022년 한반도 정세의 최대 변곡점은 북한의 역대급 미사일 위협이나 미중 패권경쟁이 아니라 일본의 재무장이 될지 모른다.
일본은 최근 안보전략 변경을 통해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의 숙원을 이루게 됐다. 공격능력을 갖추고 방위비 족쇄가 풀린 일본은 더 이상 과거의 일본이 아니다.
일본의 막강한 경제와 공업력이 군산복합으로 전환한다면 그 후과는 자못 우려스럽다. 태평양 전쟁 때와 같은 '전쟁 괴물'이 또 다시 탄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 일본 탄생에 美 극찬…정부는 복잡한 속내
일본의 역주행에 그나마 제동을 걸었던 이른바 평화헌법 9조도 해외파병과 집단자위권 같은 빈번한 '해석개헌'으로 빛이 바래고 이젠 거의 유명무실해졌다.
일본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1%인 국방예산을 향후 5년간 무려 2배 늘린다. 재정 여건이 변수지만 실현된다면 국방비 기준 세계 3위의 군사대국이다. 중국을 충분히 압박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담대하고 역사적인 조치"라고 극찬했다. 반면 중국은 "결연한 반대'를 표명한 뒤 러시아와 합동해상훈련을 벌였다. 북한도 "침략노선 공식화"라고 반발하면서 벌써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재무장을 사실상 용인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미국이 일본을 적극 지지하는 판에 반대도 찬성도 어렵다. 외교부가 "이번 (안보전략) 문서에 전수방위 개념을 변경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표명된 것으로 알고있다"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 것이 단적으로 말해준다.
여기에는 일본의 뚜렷한 확답을 받지 못한 정황도 묻어난다. 실제로 일본은 한반도(북한) 대상 공격능력 행사와 관련해 "자체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밝혀 벌써부터 우리를 놀라게 했다.
군비경쟁 촉발, 신냉전 강화로 평화 흔들…과거사 청산 없는 재무장 위험
일본 재무장에 따른 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훨씬 더 복합적이다. 군비경쟁을 촉발하고 신냉전을 강화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협한다. 그리고 이는 다시 군비확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부른다.
GDP의 2.8%를 국방비로 쓰고도 일본(1%)에 뒤쳐지는 한국의 경제력으로는 무한 경쟁이 버겁다. 중국마저 1%대 국방비를 2%로 늘린다면 한국은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다. 하물며 북한은 가장 취약한 고리이기 때문에 예측불허의 발화점이 될 수 있다.
군사대국 일본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이미 일본 해상초계기 저공 위협비행 사건도 겪은 바 있다. 중국과 북한을 견제하는 긍정적 측면이 전혀 없진 않지만 과거사 청산 없는 일본의 재무장은 본질적으로 위험하다.
물론 미국의 통제력이 작동하는 한 일본이 당장 한반도에 위협이 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이 쇠퇴하는 먼 미래까지 내다보고 있다.
일본이 원저작권자인 인도태평양전략도 이런 큰 그림 속에 고안됐다.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을 붙잡아두되 미국이 퇴조할 경우 그 공백을 차지하려는 포석이다.
중국 포위망에도 더 깊이 개입…"평화 프로세스 없이는 대결의 악순환"
정부가 일본 재무장을 용인한 것은 중국 포위 전략에 더 깊숙이 개입하는 결과도 된다. 정부는 북한 위협론을 강조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열도 머리 위로 (북한)미사일이 날아가는데 (일본이) 국방비를 증액 안 하고 그냥 방치할 수는 없지 않나"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번 안보전략에서 중국을 제1타깃으로 삼았다. 북한은 한국까지 끌어들이기 위한 그저 명분상의 공통분모일 뿐 일본의 진짜 전략 목표는 중국 견제다.
결국 한국은 인태전략 참여를 선언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한데 이어 일본 재무장까지 순순히 동의해줌으로써 좋든 싫든 중국 봉쇄 대열의 맨 앞에서 서게 됐다.
이영채 일본 게이센 여학원대 교수는 "실질적인 평화 정착을 하기 위한 남북한 평화 프로세스라든지 이런 것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한 지금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6일 북한 무인기 침투 사건은 한반도 안보의 취약성을 재확인시켜준 계기다. 이런 '틈새 도발'까지 완벽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27일 '드론 부대' 조기 창설 계획을 밝히며 강수로 맞섰다. 하지만 대결 일변도 전략으로는 문제 해결은커녕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분단 70여년 역사는 한반도 평화가 멈춘 순간 강대국의 개입이 시작됐음은 증언한다. 한국전 여파로 생긴 자위대가 신냉전을 틈타 정규 일본군으로 부상하는 것이 한반도의 지정학이다.
日 재무장 빌미 된 北 위협론…"이제라도 국익 지키는 레드라인 필요"
일각에선 진보정부라 해도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북한 위협은 커지고 미국의 압력이 가해지는 속에서 일본에 마냥 제동을 걸기는 힘들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를 망라하고 역대 어느 정부도 한일 안보협력에 관한 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도 마련해가며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일본의 선의에 기대는 것 외에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졌다.
조성렬 전 오사카 총영사는 "이번에 최소한 독도와 북한에 대한 임의적 군사행동 같은 우리 헌법상의 영토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일본의 확답을 받았어야 했다"며 "지금이라도 우리 주권과 국익을 훼손시키지 않는 레드라인 설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