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교회와 성당 등 주요 시설에서 코로나19 확산 후 처음으로 참석 인원을 제한하지 않은 가운데 성탄 기념 의식이 진행됐다. 코로나19 이후 한산했던 명동거리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고 3년 만에 맞은 성탄절을 만끽하려는 인파로 북적였다.
인원제한 없는 첫 성탄 예배…"감사", "나눔 실천"
3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성탄절을 맞은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는 "2022 성탄축하 주일예배"가 열렸다.
오전 11시 예배 시작 20여분 전부터 1만 2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성전은 만석이 됐다. 교회 관계자들은 안전사고를 우려해 뒤에 온 교인들을 부속 성전으로 안내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배 시작을 알리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예배에 참석한 신도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기보단 조용히 듣거나 때때로 장단에 맞춰 손뼉을 쳤다. 이 순간을 남기려는 듯 카메라로 촬영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이영훈 담임 목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탄생을 축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을 축복한다"고 인사했다. '예수님 모실 방이 있습니까'를 주제로 설교를 시작한 이 목사는 "쪽방촌 한 평짜리 방 한 달 월세가 25만원"이라면서 "이들은 추운 겨울 전기장판 한 장 깔고 견딘다"며 쪽방촌 주민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또 동대문구 밥퍼나눔운동본부 건물이 불법 증축을 이유로 철거 위기에 놓인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이 목사는 "고개를 돌리면 주변에 어려운 분들이 많다"며 "나 혼자 축복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예수님을 본받아 이웃을 섬기고 돌보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여러분은 예수님 모실 방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설교를 마치며 그저 살기 바빠서 주님 모실 자리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진 않은지, '나'라는 우상이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진 않았는지 돌아볼 것을 권했다.
이날 예배에 가족과 함께 참석한 강미애(67)씨는 "작년 성탄절 예배는 코로나 때문에 제한이 많았는데 점차 완화돼 감사하고 기쁘다"며 잠시 눈물을 글썽였다. 강씨는 "내년에는 마스크까지 벗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인천에서 가족과 함께 왔다는 이지영(52)씨는 "다시 성전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니 사람들 온기를 느낄 수 있고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돼 너무 감사하다"며 "집으로 돌아가 조촐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예배가 끝나고 교회를 나서는 길,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가 성탄절 분위기를 더했다. 기부행렬도 이어졌다.
부모 손을 잡고 함께 교회를 찾은 박시온(9)양은 집에 돌아가는 길 자선냄비에 헌금하고 "어려운 이웃 돕는 데 쓰였으면 좋겠다"며 해맑게 웃었다.
봉광덕(37)씨도 딸 서연(7)양에게 자선냄비에 넣을 지폐를 쥐여줬다. 봉씨는 "아이가 아직 한 번도 기부를 안 해봐서 기부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의 교회·성당 등 종교시설에서는 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참석 인원을 제한하지 않은 가운데 성탄 의식이 거행됐다.
진보 성향의 교회, 기독교 단체, 신자들로 구성된 연합예배 준비위원회는 25일 오후 3시 30분 서울역 광장에서 '2022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절 연합예배'를 열고 헌금과 후원금을 쪽방촌 거주자들을 위해 기부한다.
가족·연인·친구 몰린 명동…"오랜만에 성탄절 분위기 만끽"
'성탄절 명소' 명동도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이날 오후 12시50분쯤 명동역 인근 버스 정류장 앞에는 외국인 관광객 10여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타 모자와 빨간 장갑을 낀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벤치엔 앳된 연인이 앉아 있었다. 사귄 지 일주일 됐다는 연인 편도헌(21)·최희진(21)씨는 다정하게 붕어빵·계란빵 등을 나눠 먹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파와 강풍으로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안팎까지 떨어졌지만,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한 시민들의 발길을 막지 못했다. 오후 2시 무렵 족히 100여명이 명동거리를 거닐었다. 시민들은 대형 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고, 길거리 음식과 따뜻한 음료 등 먹거리를 즐기며 성탄절 분위기를 만끽했다. 이들은 쇼핑몰에서 서로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도 했다.
기대감도 컸다. 친구 4명과 함께 명동을 찾은 한서연(18)씨는 "신세계백화점 조명이 이쁘다고 소문이 나서 감상하려고 찾았다"며 "오랜만에 거리두기가 풀린 만큼 사람이 많아진 명동거리 분위기도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또 한씨는 "(핼러윈 참사 이후 인파 사고가) 조금 두렵기도 한데 오늘 조심하면서 명동거리를 돌아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7살 아들, 남편과 명동성당을 찾은 유설영(42)씨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떠 보이는 분위기가 보기 좋다"며 "최근 이태원 참사 이후로 시민들이 모두 조심하려는 경각심이 느껴져 (인파 사고가) 크게 우려되진 않는다"고 전했다.
어린 자녀뿐 아니라 3대가 함께 가족단위로 명동을 찾은 이들도 꽤 눈에 띄었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온 이경아(42)씨는 "거리두기 해제 이후 처음으로 12명이 모여 크리스마스 가족식사를 했다"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식사 후 구경은 못 하고 그냥 떠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아내와 초등학생 딸 2명과 함께 명동을 찾은 전기철(42)씨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명동성당에 미사 보러 왔다가 명동거리에 쇼핑왔다"며 "사람이 많이 모이는 성당에 들어가서 미사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구나 느꼈다"는 감회를 밝혔다. 또 명동에서 가족과 함께 쇼핑과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라는 전씨는 "(코로나19 이후) 한산했던 명동이 다시 옛날 모습을 찾는 것 같아 보기 좋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과 지자체는 인파 사고를 막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경찰은 이번 주말 서울 명동, 강남역, 홍대, 부산 중구 남포동, 광안리 해수욕장 등 명소 37곳에 50만 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경찰관 656명과 8개 부대를 배치했다. 지자체들도 비상 근무조를 편성하고, 인파와 시민들의 밀집도를 모니터링하는 등 안전관리 활동을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