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故김문기 모른다'는 이재명…유동규가 진실 밝힐까

윤창원·황진환 기자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 파문이 일자 김 전 처장의 사망 사실이 알려진 다음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한 방송 인터뷰(지난해 12월22일)에서 그를 몰랐다는 취지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에 유족 측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시절부터 김 전 처장과 알고 지냈다는 정황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그 유명한 호주·뉴질랜드 해외 출장 사진과 골프 사진도 이때 공개됐습니다. 이 대표 말대로 하위 직원이라 몰랐을 수 있고, 정치인 특성상 수많은 사람들과 사진을 찍으니 같이 한두번 해외출장을 같이 간 직원이라고 해서 바로 기억 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대표와 가까이 지내던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은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  "모를 리가 없다. 김문기(전 처장)를 모르나. (자신과 김 처장) 셋이 호주에서 같이 골프 치고 카트까지 타고 다녔으면서"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고인과 같이 근무했고, 이 대표와는 측근 논란까지 불거졌던 사람이니 고인과 이 대표의 관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대장동 공판에서도 이 대표 측근에게로 자금이 흘러갔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습니다. 그런 유 전 본부장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됐습니다.

지난 20일 세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과 변호인은 유씨에 대한 증인 채택, 방대한 증거 목록 등을 놓고 날을 세우다 마무리 짓지 못하고 내년 2월 한번 더 준비기일을 갖기로 했는데요, 혐의가 인정된다면 이 대표의 의원직 상실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이번주 법정B컷에서는 지난 세번의 준비기일 동안 양측이 어떻게 다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언론기사는 증거능력이 없나요?


세 번의 공판준비기일 동안 양측은 줄곧 비슷한 논쟁을 되풀이해 왔습니다. 이 대표에 대해 불리한 발언을 내놓고 있는 유 전 본부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여부도 쟁점이었습니다만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지점은 △김 전 처장에 대한 이 대표의 어떠한 발언과 행위가 문제인지 △언론 기사가 증거가 될 수 있는지 등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재판부는 첫번째 공판준비기일 때부터 "증인신문 전에 절차를 다 마치고 공판에 들어가겠다. 괜히 나중에 문제 소지 있으니 확실히 매듭 짓고 넘어가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증거기록을 등사·열람하는 피고인의 기본적인 권리를 놓고도 양측이 대립하고 있는 만큼 문제의 소지를 두지 않겠다는 재판부의 의지가 엿보였던 부분입니다.

검찰과 피고인 간 본격적인 다툼은 두번째 준비기일부터 펼쳐졌습니다. 1만쪽에 이르는 검찰 증거 중 기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큰 데다 본질적으로 기사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변호인의 주장입니다.
2022. 11. 22 제2차 공판준비기일
변호인: 신문기사가 왜 증거가 되는지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그 기사는 검찰에서 한 이야기를 들어서 쓴 것일 수도 있고, 기자가 자기 생각을 썼을 수도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상 증거에 해당한다고 보기 대단히 어렵습니다.

재판부: 경제 사건에서는 어느 시점에 어느 상황인지 알려주는 보도도 많이 나오는데요. 이 사건은 국민의 관심이 높은 사안이라 '어느날 이런 기사가 있었다'는 부분만 입증하는 증거로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듭니다.

흔히 말하는 논평 기사와 육하원칙에 맞게 쓴 스트레이트 기사는 다릅니다. 검찰은 줄곧 논평은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변호인 측의 논리는 이른바 법조기자들이 검찰의 받아쓰기를 한 기사만 쓴다는 민주당 특유의 편견을 체화한 데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추측컨대 검찰 측에서 증거로 낸 기사는, 이 대표가 언제, 어디서, 김 전 처장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는지 등에 대한 기사일 것 같습니다. 기자들이 특정한 형식에 맞춰 쓰는 대동소이한 기사들일 테지만, 양측은 세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도 이 주제로 옥신각신했습니다.

2022. 12. 20 제3차 공판준비기일
검찰: 보도된 내용 다 신청한게 아닙니다. (중략) 여론의 관심을 받은 사안이라 많이 보도된 것이고, 정황 파악할 수 있는 자료라 볼 수 있습니다.

재판부: 기자 한 사람의 생각이 노출되면 유죄 심증이 갈 수 있다는 것이 피고인의 우려잖아요. 발언의 배경은 재판부도 알 필요가 있는 사건이지만 이 부분은 충분히 해소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검찰: 관련 기사에 의견이 녹아있다고 하는데, 팩트를 기반으로 한 기사를 증거로 신청하겠다는 것이지, 관이 개입된 논평 위주의 기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문사항을 미리 알려달라고? 피고인 방어권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할까


류영주 기자

이 대표 말대로 유 전 본부장은 그의 '최측근'은 아니지만 두 사람이 오랜 기간 알고 지내왔던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변호인은 그런 유 전 본부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에 깊은 우려를 드러냈습니다. 간단한 언론기사보다 유 전 본부장의 한마디가 훨씬 더 파급력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2. 12. 20 제3차 공판준비기일
변호인: 유동규를 따로 증인 신청하는 것은 진술 조서에서 나온 이상의 무언가를 신문하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중략) 조서를 넘어서는 내용이 나올 수 있을까 염려가 됩니다. 방어하려면 그 내용을 보고 하거나 미리 어떤 신문이 있는지 예상하고 준비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검찰: 유동규는 이 사건 공소제기 후에 언론 인터뷰를 해서 관련 내용에 대해 발언을 했고 다수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주신문 내용은 그 내용이고 관련 자료를 추가적으로 제출하겠습니다.

재판부: 피고인 측은 증인신문 중 예측할 수 없는 질문을 우려하는 것 같은데요.

검찰: 당연히 그런 질문 나올 수 있는데, 숨겨놓고 다른 질문을 하려는게 아니라 공개된 범위에서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변호인:  민사소송에서는 주신문사항을 미리 제출하게 합니다. 그런데 형사사건은 사실상 검찰이 신청 증인들의 진술내용을 미리 예상할 수 있고, 검찰의 증거자료를 검토해 예상할 수도 있습니다. (※형사소송에서 주신문사항을 미리 제출할 의무가 없는 이유)

재판부: 신문 사항을 검찰이 미리 줄 것은 아니고 주신문과 반대신문을 따로 할게요.

양측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요, 우선 변호인들은 아직 증거기록을 열람·등사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주요 증인들의 진술 내용이 바뀌었다면 피고인은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에 처한 것이죠. 이같은 상황에서 이 대표를 잘 알지만 최근 불리한 발언을 내놓은 유 전 본부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검찰 입장에서는 주신문사항을 상대방에게 미리 알려줄 의무가 없습니다. 재판부는 검찰에 미리 주신문사항을 변호인 측에 알려주라고 명령을 할 수는 있지만 보통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실효성이 없거든요. 민사소송에서는 사안이 훨씬 복잡한 경우가 많아 미리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만, 형사소송에서 민사소송의 예를 끌어오는 것은 해군에게 육군의 관례를 따르라고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일 겁니다.

검찰이 함정을 파놓았을 거라는 이 대표 측 변호인의 의심은 타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변호인은 이 대표가 김 전 처장과 골프를 쳤는데 안 쳤다고 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하는 것인지, 이 대표가 한 방송 인터뷰에서 김 전 처장을 모른다고 한 것을 문제삼는 것인지 모호하다고 여기고 있거든요.

그런 데다 이 대표 측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됐습니다. 대선 기간 중 경기도 출신인 이 대표 캠프 측 인사가 유족 측을 만나려고 했다는 내용의 보도입니다. 유족과의 통화에서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몰랐다고 말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도와달라고 회유·요청하는 캠프 인사의 육성 녹음이 공개되기도 했죠. 변호인은  이 녹취파일의 육성이 누구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따졌습니다.

2022. 11. 22 제2차 공판준비기일
검찰: 기소된 이후 언론보도에 유족과 경기도 산하기관 출신인 이모씨가 만나서 대화를 나눈 녹취내용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저희들이 유족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이씨가 유족에게 말하기를, (대선) 캠프에서 상의하고 온 것처럼 말했고 유족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이씨가 실제 캠프와 상의하고 와서 얘기한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에 유족을 만나서 (화해를) 도모하려고 한 것인지 알 수 없기에, 유족을 만나기 전 통화내역을 확인해보겠다는 취지입니다.

재판부: 그러면 통화 상대방이 캠프 관련자인지 (증명하는 것도) 보강하셔야죠?

변호인:  그런 것은 통화 기록만 남지 않습니까. 내용은 알 수 없고요.

검찰: 통화기록에 이른바 캠프 내 핵심관계자였던 정진상이나 김용이 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요. 나오지 않으면 피고인한테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확인의 이익이 있습니다.

변호인이 아직 열람·등사를 하지 못했다고 하니 이같은 의심을 품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만, 지난 20일 준비기일에서는 유 전 본부장부터 유족까지 일단 증인으로 채택됐습니다. 재판부는 내년 2월2일, 법원 정기인사 직전에 마지막 준비기일을 열 계획입니다. 부장판사는 그대로 남더라도 배석판사는 바뀔 수 있고, 그에 따른 공판절차 갱신을 최소화하기 위한 뜻으로도 풀이됩니다.

준비기일이 마무리되면 이 대표가 직접 법정에 출석하는 등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될텐데요. 이 대표는 하위직원이라 잠깐 기억나지 않았을 수 있고, 당황한 나머지 습관적으로 '모른다'는 말부터 먼저 나왔을 수 있다는 취지로 방어에 나설 것 같습니다. 물론 김 전 처장을 모른다고 하는 이 대표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대장동 개발 비리와 관련한 진술을 결심했다는 유 전 본부장에 대한 증인신문도 이뤄질 것이고요. 법정 밖에서는 이런 일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고 해서 이 대표가 의원직을 잃을 만한 양형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호사가들의 말들이 떠돌지만, 재판 결과란 나올때까지 예단을 삼가고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법정B컷: 뉴스가 놓친 법정의 하이라이트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 CBS노컷뉴스 법조팀 기자들이 전하는 살아 숨 쉬는 법정 이야기 '법정 B컷'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법정B컷: 뉴스가 놓친 법정의 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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