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기나긴 '예산안 줄다리기'가 극적으로 마무리된 데엔 김진표 국회의장의 적극적인 역할이 주효했다. 당초 법정기한을 가볍게 넘겨가면서 계속돼온 싸움에 김 의장은 2차례 중재안과 3차례 '마감 시한'을 제시하면서 가교 역할을 자처했다.
국회는 23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법인세율 현행 과세표준 4개 구간별 각 1%P 인하 △행정안전부 경찰국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운영경비 예산은 정부가 편성한 약 5억 1천만 원 규모에서 50% 감액(다만 해당 기관은 향후 정부조직법 개정 시 관련 대안 마련해 합의·반영)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 3525억 원 편성 △공공임대주택 관련 전세임대융자사업은 6600억 원 증액, 정부의 공공분양주택융자사업은 기존 정부안 유지 등 내용의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했다.
연말까지 대치가 우려됐던 여야의 극적 합의엔 직전까지 이어진 김 의장의 압박이 동력이 됐다는 분석이다. 김 의장은 지난 21일 입장문을 통해 "2023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23일 개의하겠다"며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교섭단체 간 합의가 이뤄지면 합의안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본회의에 부의된 정부안 또는 민주당 수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선 두 차례 압박에 이은 최후의 통첩이었다.
김 의장의 압박은 예산안이 지난 2일 법정 처리 기한을 넘긴 이후부터 본격화했다.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 날인 9일을 '마감일'로 제시한 게 첫 번째였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예산안 처리가 정기국회 회기를 넘긴 적은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여야는 이 시한을 지키지 못했다. 양당 정책위 의장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가 참여하는 '2+2' 협의체, 나아가 원내대표까지 더한 '3+3' 협의체가 가동됐지만 핼러윈참사와 관련해 민주당이 단독으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상정한 데 따른 파장이 컸다. 예산안과 함께 처리돼야 하는 예산부수법안을 두고 간극을 좁히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특히 법인세 최고세율(현행 25%)을 3%P 낮추는 정부안을 두고는 "공급망 재조정 시기 투자 활성화(국민의힘)" "초부자 감세(민주당)"란 격론이 펼쳐졌다.
이에 김 의장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정부안대로 내리되 시행을 2년간 유예하자는 중재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이에 반발해 김 의장에게 단독 수정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지만 김 의장은 '합의'를 강조하며 끝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김 의장의 두 번째 중재안은 임시국회 본회의 날인 15일 나왔다. 이때까지도 여야가 '원내대표 회동'과 '이견 확인'을 반복하자 법인세 최고세율 1%P 인하와 행안부 경찰국,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관련 문제를 추후 해결하되 우선 예비비를 사용하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당이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며 시한을 넘기자 김 의장은 끝내 '버럭'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튿날인 16일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 모은 김 의장은 "정치하는 사람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야 하는데 취약계층을 도우려는 수레바퀴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 아니냐"며 언성을 높였다.
이후로도 여야의 예산안 대치 국면이 지루한 명분 다툼만 반복하는 모양새로 연말 통과마저 불투명해지자 김 의장은 결국 성탄절을 넘기지 않겠다는 최후의 결론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여야는 이번 합의에 "정부 정책과 철학을 담았다(국민의힘)", "민생예산이 반영됐다(민주당)"고 자평했다. 김 의장의 엄포에 백기를 든 셈이다. 여당 관계자는 "사실상 양당이 각자의 명분 때문에 예산을 갖고 형식적인 싸움을 이어갔던 셈인데, 늦게나마 합의 통과가 된 것은 잘 된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비교섭단체의 반발은 숙제로 남았다. 정의당은 이날 예산안과 부수법안 합의를 두고 '기득권 찰떡 공조'라며 본회의 반대 토론을 펼치는 등 소수 정당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