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주도했다고"…계약 해지 화물기사의 절규, 원청은 SPC

파업 복귀 직후 사실상 해고 통보
A씨 "노조 활동 주도했단 이유로"
운송사는 하청사, 원청은 대기업
화물기사 노조 탈퇴 압박 되풀이
사측 "계약 기간 만료된 것일 뿐"
전문가 "부당거래거절 해당될 수도"

A씨가 운송업체인 B사로부터 내용증명으로 받은 계약해지 사전 통보문이다. 이달 8일 접수된 해당 문서는 화물연대 총파업 종료 및 업무복귀 시일인 9일 A씨에게 전달됐다. A씨 제공

"귀하와의 계약을 종료할 것을 미리 서면으로 통지드립니다."
 
10년째 경기지역에서 제빵 제품을 운송해온 화물기사 A(43)씨.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 총파업을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지난 9일, 한 통의 우편물을 받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과 계약 관계에 있는 운송업체 B사가 보낸 해지 통보문이었다. 두 달 뒤 종료되는 계약을 끝으로 더는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것. 수십 명의 동료들 중 그에게만 통보가 왔다고 한다.
 
개인사업자인 A씨는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며 B사에서 운송을 해왔지만, 이번엔 달랐다.
 
"문자가 왔습니다. '1~2년 사이 사건들을 감안하면 재계약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래서 전화했더니 '총파업 참여 때문'이라고 대놓고 얘기하더군요. 진짜 너무한 거 아닙니까?"
 
A씨가 B사 관계자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 A씨 제공

A씨는 화물연대 서울경기지부 소속 간부다. 그는 자신이 파업을 주도하는 등 노조 활동을 주도해온 인물이라는 사유로 해고를 당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운송사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A씨는 "원청 기업의 의사가 반영된 것 같다"는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원청 기업은 평택공장 끼임 사망사고로 논란이 됐던 SPC의 계열사(GFS)다.
 
23일 A씨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작년 총파업 때 전 차량이 멈춰 SPC가 피해를 본 적이 있어 이번 기회에 주도 세력을 정리하려고 하는 것 같다"며 "업무복귀 하자마자 확인 사살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조합원 타깃 '보복' 되풀이…"생계 불안"

지난달 민주노총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추위 속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던 모습. 박창주 기자

유례없는 업무개시명령으로 화물연대 총파업이 종료된 직후, 화물기사들이 고용주격인 운송사들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받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보복성' 처사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A씨처럼 통상 1년 단위로 운송계약을 갱신해오다 일방적으로 해지통보를 받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같은 날 충남 대전지역에서는 일부 운송사가 차주들에게 화물연대를 탈퇴하지 않으면 업무에 복귀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가, 화물연대의 법적 대응 경고에 철회한 사례도 있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강경 기조에 맞춰, 화물연대가 위축된 틈을 타 기사들의 단체교섭 행위를 원천 차단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대기업 아래 여러 운송사들이 위수탁 계약으로 엮여있는 화물운송업의 구조상, 조합원인 기사들과의 계약이나 처우에도 대기업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지난달 24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앞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A씨가 소속된 운송사 내에서는 차주들의 화물연대 탈퇴를 종용하거나 조합원 여부에 따라 일감에 차등을 두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관련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해 화물연대 SPC 지부 전국 6개 본부의 총파업 후 복귀 때도 차주들과 직접 계약 관계인 운수사가 아닌, SPC 측 본부장과 사업부장 등 임직원 여러 명이 화물차량 출입을 통제해 부당한 개입 아니냐는 논란이 인 바 있다.
 
이에 조합원들은 노조활동을 하면서도 고용불안을 호소하는 처지다. A씨의 경우, 영업용 번호판 취득 명목 등으로 운송사에 2천만 원의 웃돈을 얹어 화물트럭을 구입, 새벽 1~2시에 출근해 하루 11시간씩 일해왔다. 기름값과 번호판 대여료, 위치 확인용 GPS 통신료 등을 빼면 한 달 손에 쥐는 돈은 300만 원 정도. 이마저도 계약 종료로 생계부터가 걱정이다.
 
A씨는 "과거에도 민주노총에 속한 조합원들은 계약 연장이 안 되거나 운송물량에 차별받는 일이 많았다"며 "몇 년 전부터 간부를 맡으면서 벼랑 끝에 몰리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운송사 "계약 만료 절차", 원청 SPC "우리와 무관"

 
이에 대해 운송업체인 B사는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사전 통보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B사 관계자는 "전체 차량이 파업에 참여한 것도 아닌 것으로 안다. 이번 파업과 우리 회사는 전혀 무관하다"며 "계약 기간이 있어서 조치했고, 이런 취재에 응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SPC 측은 운송업체를 통해 화물차주들이 자사 제품들을 운송하는 재하청 구조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개별 운송사들과 기사들의 계약 관계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SPC GFS 관계자는 "우리가 직접 화물기사와 거래하는 게 아니고 10여개 운송사와 계약을 맺는 방식"이라며 "운송사별 경영과 업무에 관여해서는 안 되고, 이번에 파업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기 때문에 (특정 차주에게) 계약해지 통보를 지시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사실상 근로-고용 관계, 노동권 보장해야"

지난달 29일 평택항 동부두 일대에 민주노총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들이 총파업 관련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 박창주 기자

전문가들은 화물기사들의 지위가 운송사업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특정 운송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지속적으로 일하는 만큼,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참여연대 김남근 정책자문위원장(변호사)은 "화물차주를 노동자로 본다면, 사용자에게 귀속된 성격이 강하고 계약 관계를 연장하면서 사실상 근로와 고용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갱신기대권'이 생길 수 있다"며 "이를 침해하면 해고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의 상생교섭권리 등 경제적 약자에게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게 국가경제에도 효용이 있다고 보는 추세"라며 "한 치킨 가맹점주들 단체 행동에 대한 본사의 조치에 '부당거래거절' 판결도 내려진 만큼, 화물차주들을 노동자가 아닌 사업자로 보더라도 불공정행위로 볼 수 있는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대기업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화물운송 산업의 근본적 한계에 대한 비판도 뒤따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권오인 경제정책국장은 "최상단에 있는 대기업이 시장 점유율을 압도하면서도 운송인력 관리 등에 대한 부담은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며 "운송사나 소속 기사들은 대기업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보니 '갑질'을 당해도 구제받을 대책이 없고, 직고용은 요원해 보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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