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초에 부동산 규제 지역 추가 해제에 나서는 것과 동시에 취득세 중과 폐지, 규제 지역내 다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허용 등 대대적인 규제 완화에 나선 배경에는 현재의 부동산 시장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판단이 깔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정부는 지난 21일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제시하며 "주택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규제지역을 연초에 추가로 해제하고, 지난 6월 개편안을 내놓았던 분양가상한제에 대해서도 민간택지의 적용 지역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달에도 제3차 부동산관계장관회의에서 경기도와 인천, 세종 등 전국의 부동산 규제지역을 대거 해제했다.
정부는 현재 시행중인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세 유예 조치도 1년 더 연장하는 등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실제로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 크게 올랐던 집값이 최근 큰 폭으로 하락 조정을 받으면서 '거래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이같은 '매물 잠김'이 또다시 집값 추가 하락을 부추키는 등의 악순환이 진행 중이다.
가파른 시중금리 인상으로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의 이자부담이 가뜩이나 커지고 있는데, 급격한 집값 하락은 대출 부실화와 이에 따른 금융권 전반의 건전성까지 해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22일 발표한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집값이 20% 더 떨어지면 대출자 100명 가운데 5명은 집을 포함한 자산을 다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존 보유 자산을 매각해도 부채 상환도 어려운 '고위험' 가구(자산대비부채비율·DTA 100% 초과) 비중이 3.3%에서 4.9%로 증가한 것이다.
최근 집값 급락에 따라 전세가격 하락세도 두드러지는 가운데, 전세가격이 단기간에 급락할 경우 임대인 일부가 보증금을 제대로 반환하지 못할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한은이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활용해 전세가격 하락 시나리오별 보증금 반환능력을 점검한 결과, 전세보증금이 10% 하락하면 기존 집주인(전세임대가구)의 85.1%는 금융자산 처분을 통해 보증금 하락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11.2%는 금융자산 처분과 함께 금융기관 차입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는데, 집중인 10명 중 1명 이상은 빚을 내 전세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얘기다.
심지어 집주인 100명 중 4명 가까이는 금융자산을 처분하고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더라도 보증금 하락분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됐다.
더 큰 문제는 최근 부동산 관련 기업 대출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크게 늘어나면서, 집값이 조정 수준을 넘어 더 큰 폭으로 하락하고 경기 둔화세가 지속되면 상당수 금융회사의 자본비율도 크게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은의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부동산 금융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2696조6000억원으로 추산됐는데, 이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25.9%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히 건설·부동산 관련 기업 대출과 PF 등을 포함한 '부동산 기업 금융'이 1074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보다 17.3%나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 위축이 3년 이상 이어져 주택가격이 30% 떨어지면 대부분의 금융업권 자본 비율이 큰 폭으로 하락하고, 규제 기준을 밑도는 금융기관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한국은행은 예상했다.
한국부동산원의 전국주택가격동향 조사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까지 전국 아파트값은 누적으로 4.8% 내렸다. 11월 한 달 동안에만 전국 아파트값은 2% 하락했고, 12월 들어서도 매주 사상 최대 하락폭을 경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올해 아파트 누적 하락폭은 7%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금리인상과 이자부담에 따른 부동산 시장 '거래절벽'도 가격 하락을 부추키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2023년 주택시장 전망'에 따르면, 올해 1월~10월 주택 매매 거래량은 45만 건으로 전년 동기(89만4000건) 대비 50% 수준에 그쳤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의 집값 하락 폭은 금융회사들 입장에서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집값 추가 하락에 고금리 기조 유지, 여기에 경기 침체까지 시작되면 대규모 대출 부실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