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숙원 과제인 복수직급제, 기본급 공안직 수준 인상 등이 도입되면서 조직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 총경급에 복수직급제가 도입되면서 경찰 고위직 승진 적체 현상이 일부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또 기본급이 공안직 수준으로 향상되면서 처우 개선 효과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방안을 두고 일선 경찰관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순경 출신 고위직 진출이 확대되는 길이 열렸다는 평가다. 정부의 비(非)경찰대 기조가 실제 실행으로 이어지면서 '경찰대 개혁' 드라이브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연말 고위직 인사가 임박하면서 조직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오전 경찰 내부망에는 '공안직 수준 기본급 인상 및 복수직급제 도입 등에 대한 기획조정관, 경무인사기획관 공동 서한문'이 게시됐다. 서한문에는 "공안직 기본급 등 숙원 과제들은 그간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답보 상태에 있었으나 현 정부에서 경찰 처우 개선이 국정과제로 선정돼 다시 불씨를 살릴 수 있었다"며 "청장님을 비롯한 지휘부의 강력한 의지와 현장 동료들의 성원 덕분에 기념비적인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라고 밝혔다.
이날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이 발표한 '경찰 조직 및 인사제도 개선방안'에는 △기본급 공안직 수준 인상 △복수직급제 도입 △승진소요 최저근무연수 단축 등이 담겼다. 모두 경찰의 숙원 과제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태원 참사의 책임으로 경찰이 수사를 받고 있는 참담하고 송구한 상황"이라면서도 "경찰 시스템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대부분 경찰관의 처우를 개선해 경찰의 치안역량과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설명했다.
특히 주목되는 건 인사와 연관된 복수직급제다. 복수직급제는 하나의 직위를 복수의 직급이 맡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중앙행정기관에서는 1994년부터 운영돼왔지만 경찰에는 도입되지 않았다. 이번에 도입하는 복수직급제는 총경급이 대상으로, 경정만 맡던 자리를 총경도 맡을 수 있게 되면서 총경 자리 58개가 늘어날 전망이다.
늘어나는 직위는 상황팀장 16개, 경찰청 소속기관 4개, 본청과 시·도 경찰청 38개 등이다. 경찰 관계자는 "총경 자리가 늘어나면서 승진 적체가 일부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며 "경찰 조직이야 말로 고위직이 적은 '압정형 구조'인데 승진 정원을 늘리긴 굉장히 어려웠다. 따로 정원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인사 순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밝혔다.
승진소요 최저근무연수 단축은 순경에서 경무관까지 승진하는 데 걸리는 최저근무연수 16년을 11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경찰공무원 승진임용 규정에 따르면 총경은 4년 이상 재직해야 하고 경정·경감은 3년 이상, 경위·경사는 2년 이상, 경장·순경은 1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 이를 총경 3년 이상, 경정·경감은 2년 이상, 경위·경사는 1년 이상으로 각각 단축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해당 제도들은 순경 출신의 고위직 진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승진소요 최저근무연수가 단축되면 순경에서 출발하더라도 40대 후반, 50대 초반이면 경무관까지 승진할 수 있다. 정부의 비경찰대 기조가 인사 제도 개선으로 실행된 셈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경무관 이상 고위직의 20%를 순경 출신으로 채우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고위직에 순경 출신이 거의 희박하다는 점을 들어 제도 개선에 환영하는 반응이다. 최근 5년간 경무관 승진자는 경찰대 출신이 68.8%, 간부후보와 고시 출신은 각각 21.4%, 6.3%이지만 전체 경찰의 96%를 차지하는 순경 출신은 3.6%에 불과하다. 이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만료 때까지는 적어도 경무관 이상 승진자의 20% 이상을 일반 순경으로 충당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경찰청 역시 "복수직급제로 늘어난 총경 승진 정원 다수를 일반 출신에게 배정할 방침"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정부의 비경찰대 기조가 경찰 안팎에서 '경찰대와 비경찰대 간의 갈라치기'라는 시각이 있는 만큼, 향후 인사에서 내부 갈등이 벌어질 뇌관도 안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행안부 '경찰국' 신설 과정에서 이 장관은 경찰대 출신을 향해 견제구를 날리는 한편, 경찰 개혁을 여러차례 공언하기도 했다.
복수직급제 뿐만 아니라 경찰 기본급 공안직 수준 향상도 관심 거리다. 경찰공무원은 소방·해경과 함께 공안직군으로 분류됐다가 1970년대에 별도의 경찰직으로 보수 규정을 적용받았다. 하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공안직보다 보수가 낮아졌다.
이번 기본급 향상은 내년 1월 1일부터 경정 이하 경찰관을 대상으로 우선 추진된다. 경정 이하 경찰공무원의 기본급이 평균 1.7%(평균 6만여원) 인상되며 총경 이상은 내후년에 적용될 예정이다.
경찰과 해경, 소방을 통틀어 공안직화에 필요한 총 예산은 연간 2천억원 정도 예상된다. 윤희근 청장은 "경정 이하 경찰공무원 기본급의 공안직 수준 인상에는 연간 1천억원 정도의 예산이 든다면서 현재 인건비 총액 범위에서 운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본급 상승은 복지 향상과 연관된 만큼 내부에선 반기고 있다. 이날 경찰 내부망에는 "공안직 수준 보수 인상, 모두가 바라던 소원이 이뤄졌다"며 "윤희근 청장님과 관계자 분들 너무 고생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경찰의 처우 개선을 위해 설득하고 노력해 주신 고마운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하다" 등의 댓글이 게시됐다.
다만 일각에선 조기 승진을 희망하면서 근무 평가와 승진에만 집착하는 등 격무 부서를 기피할 수 있다는 우려와 총경 복수직급 도입으로 경정 승진 정원이 줄어들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이에 경찰청은 "일각에서 총경 복수직급 도입으로 경정 승진 정원이 줄어들 수 있다고 걱정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기본적으로 승진 정원은 새로운 보직이 신설돼 정원이 늘거나 퇴직 등으로 현원이 감소하는 경우에 발생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다소 늦어졌던 경찰 정기인사는 빠르면 오는 20일부터 진행될 예정이다. 이 장관은 "경찰 정기인사 시기가 상당히 지연됐다"며 "이태원 참사에 대한 수사가 종료된 다음에 다소 늦더라도 인사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연말이 불과 열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수사가 생각보다 다소 지연되는 측면이 있어서 더 이상은 도저히 인사를 미룰 수 없는 마지막 끝까지 왔다"고 밝혔다.
통상 경찰은 11월 말에 치안정감 등 고위직 승진 인사를 한 뒤 12월 중순께 전보 인사를 단행해왔다는 점에서 현재 승진 인사는 늦어진 편이다.
치안정감은 국가수사본부장과 경찰청 차장, 서울·부산·경기남부·인천경찰청장, 경찰대학장 등 7개 자리가 있다. 이 중 내년 2월까지 임기가 보장된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을 제외한 6개 자리는 지난 6월과 8월 교체 인사가 있었다. 서울청장의 경우 참사와 관련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경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