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안' 산다는 비혼…"육아는 가장 가치있는 일"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 저자 백지선 작가 인터뷰
2010년·2013년 두 딸 입양…"내게 필요했던 건 배우자보다 '가족'"
"어려서부터 결혼, 여성에 실익 없다 느껴…경제적 능력 갖추자 생각"
"부부관계가 가족에 미치는 영향 절대적…핵가족만으로 아이 못 키워"
'친정엄마 찬스' 포함 형제자매, 아이돌보미 등 공공인프라 적극 활용
육아휴직은 퇴사 직전 몰아 써…"저출생, 독박육아 여성들의 성 파업"
"육아기 단축근로 적극 활용 필요…인센티브 등 유인책 써야 바뀔 것"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의 저자인 백지선 작가(출판사 또다른우주 대표)가 지난 9일 서울 양천구 목동 CBS 사옥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지난해 기준 대한민국의 열 집 중 세 집(33.4%)은 혼자 사는 '1인 가구'다. 이 중 절반은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이다. 결혼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비중은 전체 4할(44.3%)을 넘겼다. 싱글 라이프를 결혼 전 '과도기적' 삶의 형태라 간주했던 시대는 저물었다. 결혼을 필수과제로 상정해 '아직' 하지 못했다고 보는 미혼(未婚)보다 주체적 선택에 방점을 찍은 '비혼(非婚)'이 조금씩 더 자연스러운 표현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상상되는 '비혼'의 풍경에 아이는 잘 포함되지 않는다. 2인 이상이 동거하는 비혼 가구도(圖)에는 대체로 사실혼 관계의 이성 파트너가 들어간다. 2022년에도 여전히 강력한 이성애 중심의 가족 이데올로기가 나타나는 대목이다. 입양한 두 딸과 사는 백지선 작가는 이 편견에 잔잔한 균열을 내고 있는 '비혼 엄마'다. 출판계에서 20년간 편집자로 잔뼈가 굵은 백 작가는 독립해 차린 출판사에서 올 2월 자전적 성격의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를 펴냈다.  
 
아이 키우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로 정의하는 백 작가는 비혼이 반드시 '1인분의 삶'을 뜻하지 않음을 역설한다. 정부의 인구정책이 단순히 1인 가구를 백안시하는 기존 '저출산 정책'에 얽매이기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 포용, 바람직한 돌봄 환경 조성에 초점을 맞춰야 함을 시사하는 일례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이 직면한 초저출생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책임감이 강해서 (아이를) 안 낳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20대 또는 30대에 만난 이성과 평생을 함께하는 것(결혼)보다 입양의 성공률이 훨씬 높을 거라고 믿는 백 작가를 지난 9일 서울 양천구 목동 CBS 본사에서 만났다.

백 작가가 코로나19 발생 전 딸들과 자주 찾았던 서울 여의도 물빛광장. 백지선씨 제공

-언제 처음 '비혼'을 결심했나. 직접적 계기나 이유는 뭐였을까. 
=사실 제 주변의 또래 부부들을 보면 평등한 40~50대 부부가 많다. (제가 속한) 출판계가 문화적으로 앞서 있는 곳이라 그런 영향도 있을 거다. 일만 하다 보면 이 안에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업계에) 남자 자체가 별로 없기도 하고 여성들 스스로가 자의식이 높다 보니 (동시에) '비혼'이 많은 경향도 있다. 


초등학교 때는 평등한 부부를 별로 못 봤기 때문에 '여성한테는 결혼이 마이너스구나'라고 생각했다. 오직 경제력이 없는 여자가 경제력이 있는 남자와 결혼할 때만 이득이 되는데, 그건 굴욕적인 삶이라고 생각했다. 막연하게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신을 먹여 살릴 정도의 경제력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어려서부터) 확고했다. 제가 대학 다니던 90년대엔 학부 교양강좌에 '페미니즘' 내용도 많았고, 그게 문화담론의 대세였다. (페미니즘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백래시' 관련) 이렇게 사회가 거꾸로 갈 줄은 몰랐다.
 
백 작가는 책에서 어머니가 '무책임한 가장'이었던 아버지를 돌보는 데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바쳤다고 술회했다. "어머니가 진짜 도움이 필요한 불우한 계층에게 박애정신을 발휘했다면 훌륭한 자선가가 되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집 밖에서 온갖 일을 하면서도, 육아와 가사를 전담해야 했던 어머니를 보며 '어떻게든 경제력을 확보하고 결혼은 하지 말자'는 결심을 굳혔다.
 
-원래 남들에 비해 외로움을 덜 타는 편인가. 
=그렇지 않다. 외로움을 엄청 잘 타고 '애정 결핍'이 심했기 때문에 남자를 사귈 때도 항상 그 마음이 있었다. 심리학자들이 얘기하듯 모든 사랑은 부모의 사랑에서 시작되는 거잖나. 그 결핍이 너무 심하면 상대에게 자꾸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되고, 연애도 별로 현명하게 하지 못하는 거다. 이건 꼭 남자를 사귀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나에겐 '가족'이 필요하단 걸 느꼈다. 억지로 결혼을 해서 불행해지느니 아이를 입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백 작가는 철학자 미셸 푸코가 강조한 개념인 '자기 배려'를 언급했다. 외부적 요인들로 억압된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나'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 삶에서 소외된 자신을 들여다보며 '수동적인 나'에서 '주체적이고 이타적인 나'로 거듭나는 실천이 육아와 닿아있다는 자각이다.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다 있잖아요. 그게 사실은 자식을 키우며 치유되는 거예요. 부모님이 나를 대하고 키웠던 방식을 그대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재해석하면서 변화하는 거죠. '아, 나는 그때 어땠고, 그래서 이렇게 반응을 했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됐구나. 우리 아이한테 이렇게 해야겠다'… . '올바른 관계'를 형성할 줄 아는 능력을 제가 갖게 되고, 제 삶이 완성되는 거죠. 그래서 저한테는 자식을 키우는 게 굉장히 중요했어요."
 
-상당히 이상적인 '육아론' 아닌가 싶기도 하다.
=비혼으로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면 (많은 경우) 가족관계가 아주 좋은 사람들이다. 부모님과도 사이가 좋고 형제도 많으니까, 혼자 살아도 전혀 문제가 없는 거다. 원(原) 가족이 무너진 청소년들이 어려서 가출해 동거하다가 아이를 빨리 낳는 것도 (반대 면에서) 비슷한 맥락이다. 연애할 때는 이게 아니란 걸 알아도 관계를 끊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은 애들이 나의 가장 큰 애착 대상이니까 ('아닌 사람'과는) 쉽게 끊을 수 있다. 사람이 자기 둥지가 있으면 이를 기반으로 훨씬 더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 기본적인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으면 이성뿐 아니라 친구 등 특정 한두 명에게 매달리고 불건전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 같다.
 
백 작가에게 '몇 개월간 연락하지 않다가 만나도 자연스럽고 수년간 따로 살다가 살림을 합쳐도 어색하지 않은', 그러면서도 '영구불변한 관계'는 부모-자식 간이었다. 입양특례법 등이 개정되면서 독신자도 입양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정보를 알게 된 순간은 결정적이었다. 그는 미뤄온 수술을 마치자마자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아 입양 준비에 착수했다. 2010년 3개월 된 첫 딸을 입양한 데 이어, 2013년 세 살 터울이 나는 둘째 딸을 생후 10개월에 맞이했다.
 
평생 책을 읽고 만들며 살아온 그는 편집자로 참여한 <어머니의 나라>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싱가포르 최상위 로펌에서 일하던 변호사 추 와이홍은 중국 윈난성의 모쒀족 마을에서 6년 넘게 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본다. 철저한 모계사회인 모쒀족은 가모장인 할머니와 그의 딸·아들, 딸이 낳은 손주들로 가족을 이룬다. 엄마가 남자친구와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은 모두 모친 쪽 가계에 속한다.
 
백 작가는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소위 '정상가족'의 존립이 이성 부부의 관계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는 취약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핵가족만으로 아이를 온전히 양육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환상임도 짚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 그대로다. 아이를 일부러 둘씩 입양한 것도 희로애락을 나눌 수 있는 '동지'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그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형제자매였던 것처럼.
 
"우리 사회를 보면 수많은 이혼이 일어나잖아요. 이혼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그 과정에서 부부가 어마어마한 갈등을 겪고, 아이는 부모랑 생(生)이별을 하게 되죠. 설령 이혼을 하지 않아도 부모가 매일 부부싸움을 하면 아이들이 너무 상처를 받고요. 현재 가족제도 자체가 부부가 서로 계속 사랑하고 아껴야만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데…남녀 간의 사랑이란 게 평생 그렇게 되지 않는 집이 훨씬 많잖아요. 두 사람이 사랑한다 해도 (육아를 하려면) 여성이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렵고, 아이들은 항상 관심과 사랑에 허기진 상태로 살아야 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아이를 키우려면 결혼을 했든 안했든 핵가족이라는 체제 안에서만은 불가능해요."
 
그는 두 딸을 키우면서 여느 기혼여성처럼 '친정엄마 찬스'를 톡톡히 썼다. 처음엔 아이를 돌려주라 펄펄 뛰던 어머니는 딸의 직장생활이 지장을 받을까봐 아기를 돌봐주기 시작했다. 자신에겐 무뚝뚝했던 어머니가 막상 혈연관계가 없는 손녀를 어르고 달래는 모습은 백 작가에게도 놀라움이었다. 입양 단계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형제자매는 든든한 '이모', '삼촌'이 되어줬다. 조카들이 입던 옷이나 책은 고스란히 두 딸의 몫이 됐다.
 
'워킹맘'으로서 받은 공공인프라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여성가족부의 아이돌봄서비스, 구립어린이집, 문화센터 등이 돌봄노동을 분담해 주었다. 백 작가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에 살던 시절, '부피가 큰 장난감'을 좋아하던 첫째를 위해 지자체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미끄럼틀, 경찰차 등을 무료로 대여했던 경험을 책에 적기도 했다.
 
백 작가는 "양육의 동반자들이 많이 필요하다. 가족뿐만이 아니라 어린이집·학교, 아이돌보미 등 우리가 흔히 '이모'라고 부르는 분들이 다 양육의 동반자인 것"이라며 "우리 아이들이 아빠가 없다고 해서 남자를 생전 못 보고 사느냐, 하면 그게 아니다. 외삼촌, 학교 선생님, 방과후아카데미의 남자 대학생 자원봉사자 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와, 바다다!' 신이 나서 점프하는 아이들. 백지선 작가가 담은 두 딸의 즐거운 한때. 백씨 제공

물론 직장을 유지하며 아이를 키우는 일이 녹록지는 않았다. 아이 봐줄 사람이 무단결근해 연차를 쓰느라 중요한 미팅을 놓치기도 했고, 둘째 입양 후 육아기 단축근로를 쓰면서는 포괄임금제로 임금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기도 했다. 육아휴직은 버티고 버티다가 둘째의 초등학교 입학과 맞물려 퇴사 전에야 몰아 썼다.
 
"요즘은 (사업장들에서) 대놓고 법을 어기진 않아요. 단지 그 회사에서는 찬밥 신세가 되는 거죠. 여성이 육아를 병행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고요. 저는 이 사회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지, 애를 키우는 것 자체는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아이를 입양할 때도 제가 직장을 못 다니게 되는 상황이 되면 무조건 육아휴직을 하고 공무원 시험을 봐야겠다고 마지노선을 정해놨어요. 팀장이다 보니 일반 직원들보다 더 눈치가 보이기도 했고…제겐 '최후의 보루'였죠."
 
'육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더 많은 품이 들어가는 고령자 돌봄의 가치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백 작가의 생각이다. 기업들에서 남성들의 육아휴직을 강제하는 것은 물론 육아기 단축근로제 등의 활용을 일반화할 필요가 있다고도 봤다. 매년 최저치를 갈아치우는 출생률을 두고는 '독박 육아'를 짊어진 여성들의 '성(性) 파업'이라고 표현했다.
 
"예를 들어 팀에 5명이 있는데, 한 사람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으로 4시간만 일한다고 쳐봐요. 그럼 팀이 할 수 있는 일이 10분의 9가 되는 거잖아요. 그럼 (업무량) 10분의 1을 줄여줘야 하는데 회사들이 그렇게 안 해요. 단축근로자가 팀에서 미움을 받는 상황을 고치려면 회사들이 업무 성과나 매출 목표 등을 수정해서 합리적으로 운영을 해야죠.
 
중소기업 같은 곳은 정부 조달이나 지원금, 저리 대출 등이 중요하니 남성 육아휴직률이 높고 여성 관리자 비율이 높은 곳은 무조건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가야 해요. 그런 조치 없이 법만 있어서는 여성들만 차별받지, (실질적인) 효과가 없어요."

 
첫 딸을 품에 안자마자 '내 아이'라고 느꼈다는 백 작가는 입양과 육아를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로 꼽는다. 그는 정부와 사회가 입으로만 출산을 장려할 것이 아니라, 그에 합당한 돌봄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에게 '생존'의 문제인 사랑이 이웃과 약자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병에 걸려 아팠다가 치료받고 복귀하는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나요. 우리 사회는 사람의 가치를 '쓸모'로만 생각하잖아요. 육아로 일을 쉬다 오는 사람들이 커리어에 치명적 타격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죠. 그런 것들이 결국 이 저출산 사회를 낳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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