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년전 사형제 폐지를 목표로 한 UN의 '사형집행 모라토리엄'(일시적 유예)에 찬성하고도 사형제의 위헌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우리 헌법재판소에는 UN 결의가 '구속력이 없다'며 폐지 반대 입장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면서 정부는 사형집행 모라토리엄이 사형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며, 사형제를 합헌이라고 본 헌재의 이전 결정과도 되레 배치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3일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정부법무공단의 헌재 보충서면을 보면, 법무부는 UN의 사형집행 모라토리엄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이와 사형제 폐지는 사실상 별개의 문제라며 폐지에 보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정부법무공단은 사형제 위헌소원 재판에서 법무부 장관 측 대리인이다. 헌재는 올해 초 12년 만에 사형제를 다시 심판대에 올렸다.
법무부는 2020년 11월 제75차 UN 총회 제3위원회에서 사형집행 모라토리엄 결의안에 처음으로 찬성했다. UN은 2007년부터 2018년까지 7차례 걸쳐 사형제 폐지를 목표로 한 사형집행 중단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우리 정부는 매번 기권표를 던졌다.
그랬던 정부가 10여년 만에 찬성으로 돌아선 것을 두고, 사형제 폐지에 한발 다가갔다는 평가도 나왔다. 당시 법무부는 "대한민국이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라는 국제사회 인식 등을 감안했다"며 "이번 찬성 표결은 정부가 절대적 기본권인 생명권을 보호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하지만 법무부는 최근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UN 결의안에 찬성했더라도 사형제 폐지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법무부는 "찬성 표결은 사형 집행을 유예하는 현 상태를 인정한 것으로, 국제사회의 인권 옹호 노력에 동참한다는 의의다. 결의안 찬성으로 사형제 폐지나 형법 체계 변경 등에 책임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어 "UN 총회 결의는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않고, 이러한 연성규범적 효력이 정부 입장에 따라 달라지지도 않는다"며 "사형제 폐지 등은 국가형벌권의 근본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이므로 사형의 형사정책적 기능, 국민 여론과 법 감정 등을 종합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고, 결의안 찬성으로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법무부는 UN의 사형집행 모라토리엄 결의안이 되레 사형을 인정한 우리 헌재의 결정과도 배치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결의안 내용을 보면 '사형을 폐지하지 않은 국가에서는 가장 심각한 범죄에만 사형이 부과될 수 있다'고 적혀 있는데, 이에 비춰 UN 결의안도 사형제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법무부는 "결의안이 사형제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심각한 범죄에 사형을 부과하도록 하며 최소 침해를 보장하기 위한 점진적 조치를 각국에 요구하는 것"이라며 "선례인 헌재 결정에서 '사형이 극악한 범죄에 한해 한정적으로 선고되는 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설시한 것과 모순되지 않는 측면이 상당 부분 존재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 이후 단 한번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사회에서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법무부는 의견서에서 국내 사형 집행이 중단된 배경으로 "본인이 사형을 선고받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형제 폐지 공약에 따라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집행은 멈췄지만 법률상 사형제가 존재해 지속적인 사형 선고로 올해 8월 기준 59명의 사형수가 구금돼 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법적으로 사형제가 없는 폐지국은 108개국이며, 한국과 같은 실질적 사형폐지국은 36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