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랬던 노옥희 울산광역시교육감이 영면에 들어갔다.
12일 오전 10시 울산교육청 중앙광장에서 고(故) 노 교육감의 영결식이 눈물 속에 엄수됐다.
노 교육감 별세 닷새 만에 치러진 영결식은 약력 보고, 영결사, 추모사, 헌화와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유가족과 기관 단체장,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시민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울산교육청 이용균 부교육감이 영결사를, 박종훈 경남교육감·다전초 최미순 교장·남목고 3학년 정윤서 학생이 추모사를 각각 읽었다.
이용균 부교육감은 "교육감님은 언제나 아이들만 바라보며 아이들의 행복에 모든 힘을 쏟고 미래 교육으로 나아가고자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울산교육이 대한민국 공교육의 표준이 되고 미래 교육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박종훈 경남교육감은 추모사에서 "교육감님은 척박한 여건 속에서 울산교육을 우뚝 세워 주셨다"면서 "교육감님 곁에서 위로 받고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또 "늘 한결같이 소박한 모습으로 교육에 임하셨고 학생을 사랑하셨다"며 "하지만 정도를 벗어난 일에는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싸워나가셨다"고 했다.
다전초 최미순 교장은 추모사에서 1989년 전교조 결성부터 33년간 교육 운동을 함께 해 온 오랜 교육 동지이자 영원한 선생님으로 기억했다.
최 교장은 "지난 4년 6개월 동안 교육감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울산 전체 학교에 학생 신발장을 선물해 주셔서 아이들의 삶이 달라졌고 초등 1학년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으로 줄여 교육의 질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남목고 3학년 정윤서 학생은 "교육감님은 청바지기획단이라는 울산 최대의 학생자치단을 함께 하며 단장이라는 큰 직책을 맡아 많은 학생과 함께 여러 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권도 없는 학생들을 진정한 교육의 주체로 생각해주신 분"이라며 "어른들이 정해진 울타리가 아닌 학생이 주인이 되어 책임지고 학생자치단을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장례위원회는 영결식을 마친 이후, 전교조 울산지부 사무실에서 노제를 지낸 뒤 노 교육감의 시신을 울주군 하늘공원에서 화장하고 양산 솥발산 공원묘원에 매장한다.
울산 전역에는 노 교육감을 추모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시민 개인 명의의 펼침막도 걸렸다.
앞서 영결식을 하루 앞둔 11일은 노 교육감의 65번째 생일이었다.
주민등록상 생일이 아닌 음력(1957년 11월 18일) 생일로, 생전에 미리 주문해 놓았던 수제 케이크를 찾아 빈소에서 생일을 치렀다.
노 교육감이 평소 좋아했던 단감과 홍시를 올리고 한 시민이 집에서 준비해 온 찰밥과 미역국으로 상을 차렸다.
한 시민은 항상 낡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교육감의 모습이 안쓰러워 새 신발 한 켤레를 샀다. 언젠가 만나면 직접 드려야지 하고 갖고 있었던 신발은 빈소에 마련된 생일상에 올려졌다.
노 교육감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울산지역 첫 진보·여성 교육감으로 당선됐다. 이후 올해 6월 지방선거에서 재선에도 성공했다.
2018년 취임 이후 4년 임기 동안 전국 최하위권이었던 청렴도와 교육복지를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고교 전면 무상급식을 시작으로 고교 무상교육을 조기 실현, 공사립유치원 무상급식, 중고 신입생 교복비 지원, 초·중·고 수학여행비 지원 등 교육복지를 전국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국민권익위원회 공공기관 부패방지 시책평가에서 3년 연속으로 최우수 1등급을 달성했으며 2021년에는 전국 264개 공공기관 가운데 유일하게 부패방지 부문 유공기관으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재선에 성공한 노 교육감은 교육 공공성을 더욱 강화하고 빈틈없는 맞춤형 지원으로 울산교육을 우리나라 공교육의 표준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은 울산교육'을 내걸고 울산의 첫 진보·여성 교육감으로 당선된 노 교육감은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한 명의 아이는 마을 공동체가 관심을 기울어야 할 우리 모두의 아이라고 했던 노 교육감은 그 아이들이 더 행복하길 바라며 영면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