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일역으로 향하는 열차에 탄 승객 일부는 '하늘색 아이템'과 사진과 명찰 등 임영웅을 연상케 하는 것들을 연결고리로 해 서로가 '영웅시대'임을 금세 알아차렸다.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물음에 "안녕하세요, 부산입니다~"라는 답이 곧바로 나왔다. 목적지에 가까워져 내릴 역을 확인하느라 주변을 둘러보다가, 하늘색 아이템을 한 이들에게도 시선이 갔다.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10일 오후, 서울 고척 스카이돔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줄이 너무 길어 출발점이 어디인지조차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들뜨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공연을 보러온 사람, 티켓은 없지만 가까운 거리에라도 있고 싶어서 공연장을 방문한 사람, 팬들에게 하늘색 아이템을 팔기 위해 목청을 높이는 사람, 좌석별로 나누어진 출입구를 설명하는 사람 등이 한자리에 있었다.
콘서트 시작 시각인 오후 5시를 10여 분 남겨두고 입장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1만 8천여 관객은 공연장 밖에서 만난 풍경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었다. '얼굴이 잘하고 노래가 잘생겼다' '웨이브웅' '웅랑해 웅이 이번 신곡들 찢었다' 등 재치 있는 문구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공연 도중 관객 연령 체크 시간에는 '영웅 오빠 수능 끝나고 드디어 왔어요'라는 손팻말이 전광판에 등장해 응원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초등학생부터 100세에 이르는 고령까지, 오직 임영웅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함께했다.
임영웅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신"이라고 고마움을 표한, 임영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팬덤 영웅시대. 150분가량의 공연이 끝난 후, CBS노컷뉴스는 이날 자리를 빛내준 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피케팅 뚫고 고척돔 입성
전주에서 왔다는 이경화(48)씨는 이번이 몇 번째 콘서트냐는 질문에 "좀 많이 세야 한다"라며 "두 군데 빼고 거진 다 간 것 같다"라고 웃었다. 피 튀길 정도로 치열한 티켓 전쟁을 뜻하는 '피케팅'에 성공한 비결을 묻자 "신랑이 거의 많이 해 줬고, 이래저래 지인들에게도 도움을 받았다"라고 답했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온 썬스, 령공주(모두 공식 팬카페 닉네임, 40대)씨도 주변인들을 동원했다고 밝혔다. 썬스씨는 "애들하고 다 같이, 네 식구가 달려들어서 했다"라며 령공주씨를 바라보며 "여기도 지인 포함해서 한 2~3명이 했고"라고 설명했다. 여러 명이 시도해도 실패할 수 있지 않냐는 물음에 령공주씨는 "진짜 하늘이 도왔다"라며 수긍했다.
썬스씨는 "생각해 보니까 저희가 운이 좋았던 것 같다"라며 티케팅에 얽힌 웃지 못할 사연을 들려줬다. 창원 티케팅에 성공했던 두 사람은 만약 광주 티케팅에 성공하면 창원 티켓을 취소하자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임영웅 콘서트에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던 상황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저희가 그때 정말 순수했다. 너무 (거리가) 멀어가지고 취소를 했다. 자리도 제일 좋았는데…"라고 썬스씨가 운을 떼자, 령공주씨는 "지금 너무 후회한다. 진짜 너무 바보 같은 짓이었다"라고 맞장구쳤다. 썬스씨도 다시 한번 "제일 어리석은 짓이 창원 표 취소한 거였다"라고 강조했다.
딸과 함께 용인시 수지구에서 온 모니카(공식 팬카페 닉네임, 50대)씨는 공연 날짜가 임박해서 표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동안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이번이 벌써 네 번째 콘서트라는 그는, "(공연을) 한 번 보면 더 보고 싶더라"라고 답했다.
임영웅 콘서트, 왜 여러 번 가냐고요?
모니카씨는 "올 때마다 똑같지가 않다. 기본 틀은 있어도 레퍼토리가 매번 다르다. 이번엔 앙코르 콘서트라서 먼저 것과는 완전히 바뀐 것 같다. 편곡도 많이 해서 노래 스타일도 다르고. 저는 연달아서 안 오고 인천, 고양, 서울 이렇게 갔는데 볼 때마다 노래가 조금씩 바뀌었더라. 처음엔 안 보이던 게 나중엔 보이고 해서 그 매력에 오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령공주씨는 "계속 순간순간 느낌이 다 다른 것 같다. 울림도 다른 것 같고, 춤이 계속 바뀌니까 그런 것도 되게 느낌이 달라서 좋다"라고 덧붙였다.
가장 마음에 드는 무대는 무엇일까. 인천에서 온 송명옥(56)씨는 "제일 좋아하는 무대가 어떤 거다, 할 게 없고 다 좋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나온 답은 '아버지'였다. "오래오래 날 지키며/그냥 곁에만 있어 주세요//이제는 내가 지켜줄게//사랑하는 내 아버지/사랑해요 내 아버지"라는 가사의 애절한 곡이다.
이경화씨는 오프닝 곡이자 최신곡인 '런던 보이'(London Boy)를 꼽았다. 이씨는 "너무 좋았다. 울 뻔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따라 부르기 쉽고 경쾌하면서 음악이 좋다. 노래 자체가 너무 세련되고. (임영웅) 나이에도 잘 맞는 느낌이다. 잘 어울리지 않나"라고 말했다.
령공주씨와 썬스씨는 각각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와 '따라 따라'라고 답했다. 령공주씨가 "듣고 울었다. 진짜 너무… 가슴이 아프고 슬펐다"라고 하자, 썬스씨는 "그 노래는 진짜 레전드"라고 거들었다. "다 좋았다"라는 것을 전제로 한 썬스씨는 "'따라 따라'에서 영웅이 눈빛이 변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저희가 40대이다 보니 트로트도 좋지만 요즘 나오는 노래 스타일도 좋아한다. 약간 발라드 느낌 나는 영웅이 노래도 또 되게 좋아서. 근데 그런 걸 듣다가 오늘 트로트를 제대로 부르는데 눈빛도 변하고 분위기가 반전돼 홀딱 반했다.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라고 부연했다.
모니카씨는 "다 좋았는데 마지막 '데스파시토'가 진짜! 그걸 진짜 듣다니…"라고 말했다. 이경화씨도 "'데스파시토', 이거 진짜 유튜브에서 많이 봤는데 실제로 볼 줄은 진짜 생각 못해서 깜짝 놀랐다. 옆에서도 다 소리 지르고 난리 났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썬스, 령공주씨도 예상치 못해 더 반가운 곡으로 '데스파시토'를 들었다.
입덕 계기는 '노래'
이날 만난 영웅시대는 입덕(팬이 됨) 시기는 제각각이었지만 계기는 같았다.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다는 경험담이 이어졌다. 송명옥씨는 "'미스터트롯' 나올 때 '누가 노래로 사람을 저렇게 울릴 수 있을까' 싶어서 계속 보게 됐다. 제가 아들 둘을 혼자 키우면서 힘든 생활을 했는데, 영웅이를 보면서 그동안 힘들었던 걸 많이 덜게 되더라. 저한테 행복을 주는 사람이다. 그걸 보고 우리 아들이 티켓도 사주고 (공연장에) 데려다줬다"라고 밝혔다.'미스터트롯' 때만 해도 '멋지다' '어렵게 자랐다는데 안쓰럽다' 정도의 감정만 가지고 있었다는 이경화씨는 "'완전 찐팬'인 언니가 콘서트 한 번 가 볼래 해서 따라갔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바램' 첫 소절을 듣는데 눈물이 왜 그렇게 나던지… 그때부터 계속 콘서트를 다녔다"라면서 "팬들한테 하는 걸 보면 진심인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좋다"라고 말했다.
'바램'은 모니카씨와 령공주씨가 임영웅에게 반한 노래이기도 하다. 모니카씨는 "주말에 청소하면서 '미스터트롯'을 틀어놨는데 거기서 '바램'을 듣고 머리가 멍해졌다. 그다음부터 챙겨봤고, '사랑의 콜센타'도 보고 지금 2년 넘게 좋아하고 있다. 딸내미가 어떻게 한 사람을 이렇게 좋아할 수 있냐고 하더라"라고 웃었다.
'미스터트롯' 출연 전에도 임영웅을 알았다는 령공주씨는 "'미스터트롯'에서 '바램' 듣고 완전 진짜 '찐팬'이 된 것 같다"라고 답했다. "'미스터트롯' 할 때는 사실 큰 관심이 없었다"라는 썬스씨는 나훈아 노래를 하는 모습에 팬이 되었다. 그는 "정말 가슴 울리도록 노래를 잘하더라. 그때부터 밀린 영상을 한 번에 몰아보느라 고생했다. 계속 돌려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우선은 '건강', 잃지 않길 바라는 '초심'
"초심이라는 게 지키기 힘들어요. 처음에는 그런 마음(초심을 지키는)이 들어도 잘되고 나면 그런 마음이 들기 힘들죠. 그래도 노력한다는 걸 알아요. 구설 안 오르고 그냥 이렇게, 이대로만 나가주면 좋겠어요. 건강하라고 꼭 좀 전해주세요." (송명옥씨)
"아프지 마세요. 아프지 마세요. 건강했으면 좋겠고요. 초심 아까 안 잃는다고 했잖아요. 이대로만 가시면 될 것 같아요. 영원히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영원히." (이경화씨)
"영웅이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니까 끝이 좋았으면 좋겠고 중간도 좋았으면 좋겠어요. 사랑합니다. 영원히 함께해요. 지금처럼 변치 말고요. 정말 잘됐으면 좋겠어요." (썬스씨)
"초심 잃지 않고 지금처럼. 사건 사고 같은 것에 연루 안 되고, 제발 이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쭉 끝까지 갔으면 좋겠어요." (령공주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