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이 하늘색으로 빽빽하게 찼다. 후드도, 머리띠도, 각종 액세서리도, 응원봉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도 모두 하늘색이었다. 임영웅 공식 팬덤 '영웅시대'는 다양한 하늘색 아이템으로 존재감을 자랑했다. 사전 행사를 진행한 MC배와 팬들이 1분 카운트다운을 외치자, 어두워진 가운데 임영웅이 무대 한가운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1만 8천여 관객이 기다렸다는 듯 환호했다.
경쾌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느낌의 곡 '런던 보이'(London Boy). 오늘의 첫 곡이었다. 영국을 연상케 하는 친숙한 풍경과 인물을 배경으로 그는 힘찬 라이브를 들려줬다. 파스텔색 수트를 입은 댄서들과의 호흡은 두 번째 곡 '무지개'에서도 이어졌다. 이지 리스닝 계열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댄스 브레이크에서 상당히 록적인 밴드 사운드가 나타나 의외의 신선함을 느꼈다.
첫 번째, 두 번째 곡에서도 충분히 안정적이었으나 트로트 곡에서는 한층 더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무조건'의 박상철이 작곡한 '보금자리'가 그 예다. 마술사처럼 보이는 의상을 입은 댄서들이 보여준 화려한 안무도 그렇지만, '한눈팔지 않고 사랑하겠다'라고 맹세하는 곡에서 '당신'을 '영웅시대'로 능숙하게 바꿔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올해 5월 첫 번째 정규앨범 '아임 히어로'(IM HERO)를 낸 임영웅은 동명의 전국 투어로 고양·창원·광주·대전·인천·대구·서울까지 총 7개 도시에서 21회 동안 17만 명을 동원했다. 팬들의 열렬한 요청 끝에 지난 3~4일 부산에서 앙코르 콘서트가 열렸고, 이날(10일)은 서울 첫 공연이었다. 특히 '고척 스카이돔' 첫 입성이라는 점이 임영웅과 영웅시대 모두에게 큰 의미였다.
"드디어 기다리던 고척돔에서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다"라고 인사한 임영웅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신 우리 '영웅시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라며 '고척'으로 2행시에 도전했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이 마음, 척 하면 척 알아주실 거죠? 여러분, 사랑합니다."
이번 콘서트를 두고 임영웅은 "단순히 앙코르 콘서트가 아니고 완전히 새로운 공연"이라고 표현하며 "우리 콘서트가 신흥 콘서트 맛집답게 소문이 많이 났더라"라고 운을 뗐다. 임영웅은 "'런던 보이', 아직 이런 노래로 감탄하기엔 이르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지난달 낸 신곡 '런던보이'와 '폴라로이드'(Polaroid)는 각각 오프닝과 끝 곡을 차지했고, 일부 곡을 편곡해 새 옷을 입히는 등 '변화'에 신경 쓴 티가 났다.
발라드, 트로트, 팝, 힙합, 댄스, 포크 등 여러 가지 장르를 담은 정규 1집 '아임 히어로' 발매를 기념해 출발한 콘서트였기에, 이날 공연에서도 다채로운 음악이 펼쳐졌다. "가수는 본인의 곡이 잘될 때 정말 큰 행복감을 느끼고 에너지를 많이 받는 것 같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정말 큰 사랑받았던 곡 지금 바로 들려드리겠다"라고 소개한 임영웅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와 '사랑은 늘 도망가'로 발라드도 잘 소화한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미스터트롯'을 계기로 무명을 벗어난 임영웅에게 트로트는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장르이자 그의 주특기이기도 하다. 공연 중반부에는 '사랑해요 그대를' '사랑역' '계단말고 엘리베이터' '따라따라'까지 네 곡을 쉴 새 없이 부르는 '트로트 메들리'가 등장해 관객들의 흥을 돋웠다. 잘 들리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가사와 흥겨운 가락이 어우러져 공연장의 열기가 고조됐다.
전반적인 흐름에서 '튀는' 무대도 있었으나, 예상 밖이어서 오히려 더 새롭게 다가왔다. 12분에 걸친 짧은 드라마가 더해진 '아비앙또'(A BIENTOT)가 대표적이다. 시즌 2로 돌아온 이번 버전에서는 건강과 행복을 중시하는 '건행국'의 왕 영종이 백성들을 위해 곡을 준비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러한 '건행국' 세계관은 드라마로 그치지 않고 '아비앙또' 무대로도 연결됐다.
한국의 옛 궁궐 이미지, 북청사자놀음, 한복 입은 댄서들, 전통 악기 등 한국적인 요소를 고루 가져온 무대에서 임영웅은 '하늘이 내린 임금'이라는 콘셉트 아래 윤기가 도는 진하늘색 옷을 입고 위엄 있게 나타났다. EDM 효과를 넣은 듯 기계음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빠르게 쏟아내는 싱잉 랩을 듣게 되리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앙코르 첫 곡이었던 '히어로' EDM 버전도 신나는 분위기를 최대한 끌어올린 무대 중 하나였다.
올해 최고 히트곡 중 하나인 아이브의 '애프터 라이크'(After LIKE)를 선보인다는 것은 공연 전 이미 스포(정보 누출)당했지만, 보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콘서트 게스트로 임영광이라는 친한 동생을 불렀다는 또 다른 설정 아래 화면 속의 임영광이 먼저 춤을 추면, 바통 터치하듯 무대 위 임영웅이 화답하듯 춤추기'. 이렇게 풀어나갈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참고로 임영광은 임영웅이 연기한 '부캐'(부 캐릭터)다.
세트리스트에도 없었을 만큼 즉흥적인 시도였으나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곡은 바로 '데스파시토'(Despacito)였다. 임영웅은 원래 월드컵 응원가를 부르는 부분이었으나 한국 국가대표 남자 축구팀이 16강에서 아쉽게 떨어져 부르지 못하게 됐다며, 댄서 팀과 코러스 팀에게 '생떼를 써서' 만든 무대라고 설명했다.
임영웅은 "저는 여러분들이 처음부터 주신 사랑을 평생 잃지 않도록 하겠다"라며 영웅시대 덕분에 많은 상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록 스포트라이트는 제가 받고 있지만 그 빛 뒤에는 많은 영웅시대 분들의 고생과 수고가 있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라며 "여러분이 만들어주신 거라서 정말 가치 있고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트로피를 들 때마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는데, 앞으로도 그 트로피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콘서트장을 채운 관객들의 연령대를 알아보는 시간, 나이대가 높아질수록 더 긴 박수를 받았다. 10대부터 시작해 80대, 90대, 100세 이상까지 전 연령대가 임영웅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같은 장소에 함께했다. 이에 임영웅은 "아마 모든 나이대가 다 있을 거다. 8살부터 100세까지. 정말 이 순간만큼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이 없는 것 같다"라고 뿌듯해했다.
"정말 언젠가는 영웅시대 모든 분들 모두 모시고 콘서트를 하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한번 차근차근 올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4만 석! 400석에서 4천 석에서 10년 뒤에 4만 석에서 하겠다고 했는데, 근데 이제 될까 모르겠어요. 가득 채울 수 있을까 모르겠다는 생각을 조금 합니다. (웃음) (…) 우리의 꿈이 언젠가는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항상 그 꿈을 놓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임영웅은 11일에도 고척 스카이돔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2023년 2월 11~12일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시어터에서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