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청년도 노인도 불행한 '인구 디스토피아' ②놀이터엔 노인들만…"애 한 명도 안 태어난 마을도"[영상] ③"마을 하나씩 매년 사라지는 셈…20년 후가 두려워요" ④20여년 간 41개 학교 문닫은 신안…"공공인프라 길게 보고 심어야"[영상] ⑤지역 특색 살린 '살아보기'로 인구 유치…"가장 큰 걸림돌은 주거 문제" ⑥'과밀한' 경기도마저 인구위기 '빨간불'…"80대도 안아프면 일해야" ⑦가평 이사 간 목동엄마의 분투기 "주3일은 서울行" ⑧MZ세대 남녀 '동상이몽' 심화…멀어지는 결혼·출산 ⑨현실판 '82년생 김지영' 도처에…"이기적이란 말이 이기적" ⑩'비혼 1세대'가 바라본 저출생…"'삼중 노동' 여성들의 파업" ⑪"육아대디 되니 아내와 '동질감'…평일 회식도 눈치 안 봐" ⑫"젠더 갈등, 연애에도 영향…여성 고용문제 풀어야 저출생 개선" ⑬3년 만에 산모 44% 감소…장애인에 더 가혹한 '출산정책' ⑭"분유 탈때마다 몇번씩 반복"…장애母에겐 일상이 전쟁인 '출산‧육아' ⑮장애부모는 쓸수 없는 산모수첩…출산·돌봄 '사각지대' ⑯'전국 꼴찌' 서울 출산율…일극화가 낳은 필연이다 (계속) |
지방의 인구가 줄면서 대도시로 몰리는 쏠림 현상은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세계 각 도시들은 시차를 두고 노동력을 빨아들이면서 팽창했고, 또 그에 걸맞은 각종 인프라를 갖추면서 다시 인구를 유인하기를 반복해 왔다.
하지만 모든 국가에서 '지역소멸'이라는 극단적인 우려 섞인 전망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대도시와 중소도시, 농어촌 지역이 적절히 어우러져 공존하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대도시에 인구와 사회 자원이 과도하게 몰리면서 과밀화에 따른 각종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는 국가가 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후자의 대표 사례다. 주택·교통·환경 문제 외에 과도한 생존 경쟁은 사회적 스트레스 지수를 끌어 올려 심각한 갈등과 분열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들은 생존을 위해 생식을 포기하게끔 하면서 결국 인구감소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서울로 수도권으로…해외보다 압도적인 집중도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인구 가운데 절반이 넘는 50.3%(2605만명)가 수도권에 모여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수도권 집중화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영국(12.5%), 프랑스(18%), 일본(28%)에 비해서도 압도적인 수치다.
이런 인구 쏠림 현상은 각종 지표를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우선 일자리다. 부산상공회의소가 분석한 지난해 전국 1천대 기업 분포를 보면, 서울은 과반인 529곳을 차지했다.
매출 비중은 이보다 더 편중돼 서울의 비중은 65.4%에 달한다. 다음은 경기가 182곳(19.7%)이며 4위인 인천(40곳·2.6%)를 합치면 1천대 기업 중 751곳(87.7%)가 수도권에 밀집해있는 셈이다.
제 2도시인 부산은 인천보다 인구가 40만명 정도 많지만, 기업 수는 27곳에 불과하고 매출 비중은 1.2%로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17개 시도 가운데 수도권을 뺀 14곳에서 49곳(12.3%)의 적은 파이를 쪼개서 나누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실이 공개한 '광역자치단체별 상위 1% 근로소득자 현황' 자료를 보면, 2020년 귀속 근로소득 연말정산 결과 기준 상위 1% 근로소득자가 19만 4953명 중 75%인 14만 5322명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은 너무나 명확하다.교육 문제도 사정을 다르지 않다. 민주당 서동용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서울대 신입생 중 수도권 출신 비중은 64.6%로 전년보다 1.2%p 증가했다.
특히 이 가운데서도 강남, 서초 출신 비중이 지난해 처음으로 10%를 넘어섰다.
전남 출신으로 세종에 살고 있는 이모(30)씨는 "신안군에서 태어나고 공부했는데 꼭 신안군이 아니라 전라남도로 확장해도 교육 인프라와 정보가 너무 떨어진다"면서 "통상 나쁘지 않은 직장이라고 하는 정규직 형태인 사무직은 지방에 잔류했을 때는 공무원 외에 떠올리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도서관·박물관·미술관·생활문화센터·문화예술회관 등 여가생활에 중요한 문화시설 역시 3분의 1이 이상이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지방 소멸과 인구 감소의 상관관계
사회 대부분 자원이 몰려 있는 수도권은 사실상 지방과의 양극화를 지나 일극화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인구위기 문제와도 직접 닿아 있다.겉으로 보기에 서울에 인구가 늘거나 감소 폭이 완만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합계출산율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합계출산율은 가임연령기 여성(15~49세)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를 말한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저서를 통해 "성글게 표현하면 '지방이 힘들수록 출산은 줄어든다'로 요약된다"면서 "도시 거주는 출산환경을 악화시킨다.
교육.취업 등 미래형 자원.기회를 독점한 수도권이지만 정착 대부분의 미래주자에겐 그림의 떡인 까닭"이라고 진단했다. 전 교수는 이 과정을 '지방소멸→청년전출→도시진입→경쟁심화→자원부족→결혼연기→출산포기'로 도식화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주택 등 생활 비용이 늘면서 많은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혼 6년 차로 서울에 사는 박모씨(42)는 자녀를 낳지 않기로 한 이유에 대해 "지금 너무 경쟁이 치열하고 급증한 노인층 부양 문제도 있고 해서 아이가 자라서 행복한 삶을 살지 모르겠다"고 했다.
태생적으로 집중·과밀화할 수밖에 없는 도시국가나 비슷한 성격을 띤 지역들의 출산율이 낮은 것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세계은행(WB)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중국의 특별행정구인 홍콩(0.9명)과 마카오(1.2명), 제주도 면적 3분의 1 크기의 도시국가인 싱가포르(1.1명) 등이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낮다. 한국은 0.8명으로 집계됐다.
대만 역시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89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조영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들 국가나 지역의 특징은 한국의 수도권처럼 청년이 갈 곳이 한 곳 밖에 없다는 점"이라며 "이 때문에 그만큼 생존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령 섬나라인 푸에르토리코(0.9명)는 대규모 인구유출, 자연재해 등 특수한 상황이 있지만, 한국보다는 출산율이 높다.
수도권 과밀화는 비단 수도권 출산율 문제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사회적 자원을 모두 흡수하면서 지방을 황폐화시켜 비(非)수도권의 출산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모든 사회적 자원이 수도권에 몰리면서 지역의 넓은 지역이 고립된다"면서 "고령화와 함께 교육 여건이 바빠져 중산층이 떠나고 지역의 빈곤화와 저출산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