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월세 2년치 미리주면 전세 더 살게요"…서울도 역전세난 경보

연합뉴스

급격한 금리인상과 집값 하락 기대로 집값은 물론 전세값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2년 전 전세계약 당시보다 전세시세가 내려가면서 집주인이 돈을 추가로 마련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는 '역전세난'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지방과 수도권 외곽에서 역전세난이 대두됐지만 입주 물량이 늘어나는 서울 일부 지역에서도 역전세난이 현실화된 가운데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2년치 역월세를 선지급하는 조건으로 임대차 갱신계약이 체결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역월세 2년치 미리 주면 계속 전세 살게요"

 
6일 업계에 따르면 입주장이 시작된 서울과 마포구와 강서구 등에서 역전세난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10월 30일부터 입주가 시작되는 마포구 아현동 '마포더클래시'는 전체 1149가구 중 절반이 넘는 662가구 전세 매물로 나와 있다. 입주장 초기에는 전세 호가가 59㎡ 8억원, 84㎡ 11억원이었지만 '세입자 품귀' 현상이 이어지면서 최근 전세 호가는 59㎡ 5억원대, 84㎡ 8억원대로 급락했다. 전세 매물은 입주장이 본격화한 지난달 중순 700건을 훌쩍 넘어섰지만 집주인들이 호가를 내리며 계약이 이어져 매물이 다소 소진된 상태다.

입주장은 인근 단지 전세시세도 끌어내리고 있다. 마포더클래시 인근에 위치한 3885세대의 '마포래미안푸르지오'의 전세 호가는 59㎡가 5억원대, 84㎡가 7억원대로 떨어지는 등 입주장에 아현동 일대의 '세입자 모시기'가 심화되는 모양새다.
 
아현동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2년 전 84㎡ 전세시세가 10억5천만원이었는데 3억 넘게 떨어진 것"이라며 "역월세는 일반화됐고, 최근에는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월세 2년치를 선불로 지급하는 조건으로 전세 갱신계약이 이뤄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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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단지 입주가 진행 중인 강서구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지난달부터 입주가 시작된 강서구 화곡동 '우장산숲아이파크' 전세 호가는 전용 59㎡가 4억원, 84㎡가 5억원대다. 해당 단지 호가는 당초 59㎡가 7억원, 84㎡가 8억원에 형성됐지만 입주장이 시작된 뒤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집주인들이 보증금 인하 경쟁에 나서면서 각각 3억원씩 낮아졌다.

인근에 위치한 2603세대 규모 강서힐스테이트와 2517세대 규모 우장산아이파크e편한세상도 한때 전세 계약이 59㎡가 7억원대, 84㎡가 10억원에 체결됐지만 현재는 59㎡가 4억원대, 84㎡가 5억원대로 뚝 떨어졌다.
 
화곡동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입주장 때 전세시장 약세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지만 급격한 금리 인상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집주인들이 다수"라며 "임대차법 시행 직후 84㎡ 전세 시세가 9억~10억원에 달했는데 2년 만에 전세 시세가 2억원 넘게 떨어졌지만 전세 문의는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내년 3월부터 입주가 예정된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3375가구 규모 '개포자이 프레지던스'도 전체 가구 4개 중 1개꼴인 823건의 전세 매물이 쌓여있는 상태다.
 

서울 아파트 전세, 한 달 만에 3천건 늘어…개포동은 62.8% 급증


업계에서는 입주 단지가 위치한 지역을 중심으로 현실화된 역전세난이 서울 전역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입주장에서 발생했던 전세약세 현장은 입주가 마무리되면 일단락됐지만 급격한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세에 따른 전세 기피 현상으로 전세 수요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극심한 거래절벽이 길어지면서 집주인들이 매매 매물을 전세 매물로 돌리는 현상까지 더해져 시장 매물은 더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데이터 업체 아실(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5만2888건으로 한달 전(4만9053건)보다 7.8% 늘었다. 특히 입주장을 앞둔 강남구 개포동의 매물은 2050건으로 한 달 전(1259건)보다 무려 62.8%가 증가했고, 입주장이 진행중인 마포구와 강서구 일대 전세 매물도 20% 이상 급증했다. 서울 자치구별로 살펴보아도 △중구 57.3%(495건→779건) △동작구 20.7%(1546건→1867건) △강남구 17.5%(6807건→8001건) 등 모든 자치구에서 한 달 사이에 전세매물이 적게는 수백건, 많게는 수천건씩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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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법 시행 2주년 직후인 8월 초와 비교하면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무려 68.3%(3만1414건→5만2888건)가 늘었고, 최근 역전세난이 현실화되고 있는 마포구와 강서구는 전세 매물이 각각 144.3%(970건→2370건), 121.8%(1045건→2318건)씩 급증했다.
 
이런 이유로 전셋값은 집값보다 가파르게 내리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주(11월 28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56% 내렸는데 전세가격은 0.89% 내리며 하락폭이 더 컸다. 이는 2012년 5월 관련 통계 집계가 이뤄진 후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
 

전세 쌓여있는데 내년에도 입주 물량 쏟아져…"전세 약세 길어진다"


시장에서는 전세시장 약세에 따른 역전세난이 내년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수도권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임대 포함)은 17만8274가구로 올해(18만397가구)와 비슷한 규모다. 특히 서초구·강남구·송파구·강동구 등 강남권의 내년 입주 예정 물량(1만2402가구)은 올해(3592가구)의 3배를 넘어선다.
 
전셋값 하락세가 계속될 경우 집값 역시 하락세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은 최근 '역전세난과 주택가격 변화의 시사점; 보고서에서 "신규 주택 입주물량이 올해 연말부터 증가할 전망이어서 역전세난과 주택가격 하락을 촉진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KB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내년에도 고금리 여파로 전세나 매매가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임대차계약 만기 때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심화될 것"이라며 "현재 서울 일부지역에서 본격화된 역전세난 역시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NH농협은행 김효선 부동산수석위원도 "입주물량이 많으면 단기적으로 전세물량도 많아질 수 있어서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반하락 하는데 쌓인 전세물량들이 소화되지 못하고 있어서 전세시장 약세는 계속될 것"이라며 "특히 내년에는 서울은 물론 경기와 인천 등 수도권 전반적으로 입주 물량이 많기 때문에 내년 상반기에는 수도권 전반적으로 전세시장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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