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조용필의 단독 콘서트 '2022 조용필 & 위대한 탄생 콘서트' 마지막 날이었던 4일 저녁,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빠르게 전 회차 매진돼 시야제한석까지 추가로 판매했을 만큼,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무대의 주인공을 보고 싶은 마음을 누군가가 크게 외쳤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관객들은 "조용필!"이라는 세 글자를 연호했다.
6시 7분이 되자 조명이 완전히 꺼졌다. 형광 보라색, 노란색, 연두색, 빨간색, 분홍색 등 색색깔의 응원봉과 리본, 왕관 머리띠가 반짝이는 가운데 공중에 있던 구조물이 올라가면서 공연이 시작됐다.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선글라스를 쓴 조용필이 무대 중앙에 등장했고, 첫 곡으로 '꿈'이 흘렀다. 관객석에서는 "몇 년 만이고!" 하는 탄성이 나왔고, 무대 앞쪽에 가까운 플로어석 관객들은 신남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응원봉을 흔들며 열광했다.
고향을 떠나온 이의 마음을 노래한 '꿈'에 이어 두 번째 곡은 대표 히트곡 중 하나인 '단발머리'였다. 워낙 널리 사랑받았던 곡이어서인지 저절로 떼창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경쾌한 기타 소리로 시작해 코러스와의 조화로 풍성한 화음을 쌓아 올린 '그대를 사랑해'까지 세 곡을 마치고 나니 6시 24분. 조용필은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발매한 정규앨범만 19장에 달하는 '국민가수'이자 '가왕'인 조용필은 올해 한국 나이로 73세가 됐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라이브는 여전히 강력했다. 평소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조용필의 높은 기준, 그에 따른 치열한 자기관리의 결과물이 바로 이날 공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관객들이 몰입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조용필은 오프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오실 때 또는 오시기 전에 티켓을 구매했을 때 '조용필 저 사람 어떻게 변했을까' 그렇게 생각하셨죠? 내 모를 줄 알고! '전보다 늙었을 텐데' '근데 그 사람 혼자 다 할 수 있을까' '게스트는 없나, 지금 나이가 몇인데' 그런 생각 하셨잖아요, 솔직히."
관객석을 메운 이들은 조용필과 그의 곡을 좋아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도 조용필은 사람들이 으레 가지게 되는 우려 섞인 궁금증을 본인이 먼저 언급했다. 그러고는 증명했다. 4년 전보다 네 살 더 먹은 지금도, 게스트 한 명 없이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연주 면에서는 현란하고 난폭하다가도 서정적이기도 한, 자유자재로 곡에 맞춘 기타 소리가 인상 깊었다. 조용필도 '그대여' '모나리자' 등 일부 곡에서 직접 기타를 메고 연주에 나섰다. 'Q'와 '바람의 노래'에서는 아름다운 건반 소리가,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는 희망찬 분위기의 드럼이 등장했다. 훌륭한 세션 연주는 공연의 완성도를 책임지는 중심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13년 정규 19집 '헬로'(Hello) 이후 9년 만에 낸 신곡 '세렝게티처럼'의 무대도 공개했다.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점차 좁아진 시각을 다시 넓혀 무한의 기회가 펼쳐진 세상을 거침없이 살아가자는 응원 메시지를 담은 곡이다. '세렝게티처럼' 무대를 마치고 조용필은 "이 노래 들어보셨는지?"라고 물으며 관객 반응을 살폈다. "네!" 하는 우렁찬 외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또 다른 신곡인 '찰나'는 앙코르 무대 첫 번째 곡으로 나왔다. '찰나'는 모든 것이 바뀌는 운명적인 순간을 포착한 가사와 스타일리시한 사운드, 조용필의 감각적인 코러스가 어우러진 팝 록 장르다. '세렝게티처럼'과 '찰나' 모두 작사가 김이나가 가사를 담당했다.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한 건 노래였다. 세 번째 멘트가 끝나고 나서 '여와 남' '고추잠자리' '바람의 노래' '자존심' '태양의 눈' '킬리만자로의 표범' '어제 오늘 그리고' '못 찾겠다 꾀꼬리' '모나리자'까지 9곡을 연이어 불렀다. 그룹이 아니라 파트 분배를 따로 하는 것도 아닌데, 이미 많은 노래를 불러서 지칠 법도 할 텐데, 오히려 공연 막바지로 갈수록 라이브는 더 힘차고 더 편안했다. 관객석에서 "갈수록 더 잘하는 거 안 같나?" "에너지가 장난 아니제" 하는 감탄이 나온 이유다.
토크는 길지 않았지만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한 방이 있었다. 노래하다가 코드가 약간 틀렸다며 죄송하다고 고백해 "귀여워! "귀엽다!"라는 반응을 받았고, 몰입하다 보면 왠지 모르게 콧물이 난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남성 팬들에게는 아직 '형님' 아닌 '형'으로 불리고 싶다고 강조했고, 여성 팬들에게는 "아직은 오빠지?"라고 되물었다. 16강 진출 당시 사람들의 응원 소리 들었냐며 오늘 관객석에서도 그만한 응원이 나올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사랑했던, 혹은 지금도 사랑하는 노래를 관객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관객들이 따라 부를 수 있게 전광판에 가사를 띄우거나, '못 찾겠다 꾀꼬리'나 '여와 남' 등 관객들의 참여가 중요한 곡도 세트리스트에 포함돼 있었다. 박수, 떼창, 환호, 일어서기, 응원 도구 흔들기 등 팬들이 하는 모든 행동을 막지 않고 격려했다.
4년 전 연 전국 투어와 달리 서울에서만 진행한 이번 공연은 여러 지역과 나라에서 관객들이 찾아주었다. 조용필은 공연 중간 이를 언급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경북 영천에서 온 정혜영(62)씨는 "이번이 5번째 공연"이라며 "4년 전 대구에서 할 때도 너무 신나게 들었는데 오늘 공연도 무척 만족스럽다"라고 말했다. 가장 좋았던 무대로 '친구여'를 꼽은 정씨는 "'허공'을 못 들어서 아쉽다. 다음에는 전국 투어를 해서 대구에서도 공연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찰나' '바운스'(Bounce) '여행을 떠나요' 등 앙코르 3곡까지 총 24곡을 부르며 2시간 15분여 동안 관객과 함께한 조용필은 무대 처음부터 끝까지 가 인사한 후 퇴장했다. 지난달 18일 '로드 투 트웬티 - 프렐류드 원'(Road to 20 - Prelude 1)이란 싱글을 내 9년 만에 신곡을 공개한 조용필은 내년을 목표로 정규 20집 앨범을 준비할 예정이다.